『아히도벨 책략록 - 혈통』 · 11 / 13
『아히도벨 책략록 - 혈통』
아히도벨의 밀서 中
(밤. 왕궁의 동편 회랑에 드리워진 어둠 속.
아히도벨은 오래된 파피루스에 조용히 붓을 적신다.)
왕은 감정으로 움직인다.
왕은 외로운 자이다.
밤이면 뜰을 거닐고,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눈은 혼탁하지 않다.
그러나 단호하지도 않다.
나는 보았다.
전쟁이 시작되어 군사들이 성을 떠나면,
다윗은 홀로 남는다.
그 밤의 왕은 전쟁의 지도자가 아니라
한 남자였다.
그 순간이 시작점이었다.
—
우리 집안에는 여인이 하나 있다.
이름은 밧세바.
맑은 눈과 조용한 걸음,
그러나 누구보다도 단단한 심지를 가진 아이.
나는 그녀를 ‘왕의 뒤를 이을 자의 어머니’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왕비가 되는 길은 허락되지 않는다.
왕비는 정치를 위해 주어지는 자리다.
밧세바는 혈통도, 지파도 없고, 혼인도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방법은 달라야 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다윗은 밤이면 옥상에 선다.
나는 그가 거닐 때의 걸음과 시선을 알고 있다.
밧세바는 그 동선 위에 있어야 한다.
우연처럼,
일부러가 아닌 듯,
실수처럼,
그러나 놓칠 수 없는 모습으로.
그가 그녀를 보게 된다면,
왕의 마음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그 이후는 순서만 남는다.
그녀는 부름을 거절하지 않는다.
왕의 명을 어기지 않은 것.
관계는 이루어진다.
그리고… 아이는 생겨야 한다. 아니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한다.
아이가 생긴다면,
왕은 책임을 느낄 것이다.
왕은 그 여인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이 하나 있다.
그 아이는 지금…
다른 남자의 아내다.
그 남자, 우리아는 충직한 군사다.
명령을 거절하지 않는다.
상소를 올리지 않는다.
분노도, 의심도, 질문도 없다.
나는 이 충직함을… 걸림돌이 아니라,
도구로 삼기로 했다.
그는 다윗의 계획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그를 처리하게 되는 순간,
밧세바는 미망인이 되고,
왕은 죄책감을 품은 채 그녀를 궁으로 맞이할 것이다.
그 죄책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아이는 단지 후궁의 자식이 아닐 것이다.
왕이 자신의 손으로 지킨 생명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내가 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