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히도벨 책략록 - 압살롬』 · 12 / 13
『아히도벨 책략록 - 압살롬』
“이것은 나의 책략이었다. 그러나 왕은 절반만 실행에 옮겼다.” – 아히도벨의 회고
(문체 톤: 담담하고 단호함. 전략가로서의 냉정함과, 최후의 오판에 대한 자인.
서술자는 아히도벨이지만, 신에게 말하듯 기록한다.)
다윗은 더는 결단하지 않았다.
딸이 짓밟힌 날도, 아들이 칼을 든 날도, 그는 침묵했다.
왕의 침묵은 곧 국가의 무력이다.
압살롬은, 달랐다.
그는 복수했고, 도피했고, 돌아왔다.
그리고 문 앞에 섰다.
청원의 자리에 앉아, 백성들의 입을 들어주었다.
마치 왕처럼.
나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 눈에는 불꽃이 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내가 왕이라면 이렇게 하겠다, 라는 의지를 가진 자였다.
다윗이 놓은 자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다윗 이후를 생각해야 했다.
내가 만든 첫 번째 왕은 이제 늙었고, 기운이 빠졌다.
그의 이름으로 명령은 내려오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궁 안의 바닥 어디에 잠들어 있었다.
압살롬은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민심은 기울고 있었고, 다윗은 의심받고 있었다.
노쇠한 왕, 우는 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비.
그에 비해, 칼을 뽑은 왕자는 신선하고, 단호하고, 새로웠다.
그러나 왕좌는 그저 단호함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두 개의 칼을 쥐여주었다.
하나는 민심을 위한 과시,
다른 하나는 권력 찬탈을 위한 결단.
첫째, 후궁들과 공개된 동침.
왕의 여인을 차지한 자만이 새로운 왕이 된다는 구약의 오래된 문법을 따른 것이다.
누구든 그 광경을 본 자는, 왕이 바뀌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둘째, 도망친 다윗의 참수.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칼로 그 숨을 끊는 것.
왕이란 이름은 살아있는 한, 그를 두고는 누구도 왕관을 차지할 수 없다.
다윗이 살아있는 한, 왕은 다윗이다.
나는 이 두 책략을 내밀었다.
하나는 실행되었고,
하나는 무시되었다.
압살롬은 나의 말 중,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택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허영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그는 왕이 아니었다.
그는 다윗이 아니었다.
그는 ‘가장 위에 서는 법’은 알았으나,
‘아래를 어떻게 견디는가’를 배우지 못했다.
다윗은 광야를 견디며 왕이 되었다.
압살롬은 성문 앞에서만 왕이 되기를 원했다.
속전속결의 칼을 쥐지 못한 그는,
결국 기다리는 자와 싸울 수 없었다.
압살롬이 그를 상대하려면,
더 빠르게, 더 치명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나는 그것을 알았고,
그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새가 왔다.
나는 후새를 알았다.
다윗의 오랜 사람이며, 언어의 달인이자,
판단을 흐리는 데 능한 계략가.
그가 예루살렘에 남는다는 건,
이미 승부는 시작되었고,
다윗은 돌아올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압살롬에게 경고했다.
후새는 그대의 편이 아니다.
그의 말은 달콤하고, 논리는 정교하지만,
그 안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
그 칼은 시간을 끌고,
그 시간은 다윗에게 간다.
그러나 압살롬은 고개를 끄덕일 뿐,
나를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스스로 아비 다윗을 치고 왕이 된 모습을 상상하느라 바빴다.
자신의 말투, 자신의 의복,
성문 앞에 줄 선 이들의 얼굴만을 생각했다.
후새의 말에 판단이 기운 그 순간,
이미 졌다.
그는 준비되지 않았다.
이제, 전세는 바뀔 것이다.
지파들은 돌아설 것이다.
군사들은 요압을 따라 움직일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누구의 편인지 오래전에 밝히셨다.
나는 더는 버틸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제 밧세바와 아이들의 짐이 될 수 없다.
내가 가진 가장 마지막 책략은,
살아남게 하는 것이다.
기름 없는 왕은,
하룻밤이면 사라진다.
그러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은,
한 세대를 이끈다.
그 기름을 받게 하라.
눈물로, 죄책감으로,
그리고 유일한 말로.
그 길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그리고, 살아남는 자만이 계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