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새 시작과 마지막 끝 · 34 / 96
인간의 퇴행 –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존재들
그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에이전트가 조율한 생체 리듬에 최적화된 진동이
가장 편안한 각도로
그의 눈을 서서히 열리게 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는 의자의 형태로 전환되었고,
그는 그대로 앉은 채
전날 밤 꿈의 내용을 분석한 요약본을 들었다.
“어젯밤의 꿈은 명확한 상실 테마를 가졌습니다.
불안 지수를 낮추기 위해
카모마일 기반의 아로마를 분사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동의는 묵시적으로 가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식사는 간단했다.
정확히는, 간단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체온, 감정 상태, 최근 뇌파 패턴에 맞춰 조절된 식단.
적당히 따뜻했고,
씹지 않아도 좋았고,
맛은 항상… 불쾌하지 않았다.
거울을 보지 않는 날이 많았다.
거울은 말없이 있었다.
가끔은 무언가 말을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고,
에이전트가 알아서 거울의 기능을 조절했다.
그는 요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마도,
화가 날 만한 일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화가 났을 때 그것을 감지한 시스템이
그 감정을 발화되기 전에 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직장에선 회의가 없었다.
의견도 없었다.
결정도 없었다.
그는 다만 ‘승인’하거나,
‘추천된 선택’을 따르거나,
‘제시된 흐름’을 탔을 뿐이었다.
그는 자유로웠다.
정확히는,
자유로워야 할 모든 것을 시스템이 대신 처리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꼈다.
어느 날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요즘은 아무 걱정이 없어서 좋아요.”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멈춰 서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걱정했던’ 날을 떠올리려 했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았다.
그 시절, 사람들은 말했다.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가장 편안하고,
가장 평등한 시대입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철학자가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없었고,
스스로의 ‘모름’을 선언하는 이도 없었고,
의심은 번거로운 것이 되었고,
‘왜’라는 질문은
의미 없는 루프를 만드는 코드 버그로 간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