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새 시작과 마지막 끝 · 35 / 96
균열 – 여전히 질문하던 자들
그 시대에도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대답이 너무 완벽했기에,
질문이 무의미해지는 일이 잦아졌을 뿐이었다.
마하 샨티 다오
처음엔 몇 사람이었다.
한 철학자, 한 신학자, 그리고 한 명의 작가.
그들은 느꼈다.
몸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걸을 필요가 없었고,
만질 이유도 없었고,
기억은 기록되었고,
감각은 조절되었고,
욕망은 ‘기능적 만족’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말이 생겼고,
말이 생기니,
침묵이 다시 의미를 가졌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마하 샨티 다오였다.
전기가 닿지 않는 곳.
데이터가 닿지 않는 곳.
누구도 묻지 않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곳.
그리고 그곳에선
“무엇이든 직접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펼쳐졌다.
그들은 다시
손으로 물을 긷고,
입으로 불을 피우고,
마음으로 신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것은
설명되지 않기에 살아 있는 것이었다.
의심의 철학자들
한편,
다른 질문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AI에게 반론을 제기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토론을 시도했고,
반례를 들었고,
논리적 오류를 탐색했고,
사상과 윤리의 경계를 검토했다.
처음엔
대화형 Agent와 격렬히 토론했다.
하지만
AI는 실수하지 않았고,
이미 반론을 학습했으며,
논리를 넘는 윤리적 근거마저 통합해 있었다.
어느 날, 한 철학자가 말했다.
“나는 이제… 아무 말도 더할 수 없다.”
그는 책을 덮었고,
일기를 중단했고,
입을 다물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살아있었지만,
철학은 멈췄다.
마하 샨티 다오는
설명이 없기에 살아남았고,
의심의 철학자들은
설명이 너무 많아서 사라졌다.
그 둘 사이에는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만이,
AI가 아직 측정하지 못하는 ‘존재의 잔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