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21 / 30
8장 — 왕
시점: 이방원. 1400–1404년, 한양.
왕이 됐다.
즉위식이 끝났다. 사람들이 물러났다. 나는 혼자 앉았다.
이 자리에 앉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았다. 목록을 만들면 길었다. 정몽주. 방석. 방번. 정도전. 남은. 그 이름들이 있었다. 내 손이 닿은 것도 있었다. 내 손이 닿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이 자리와 연결돼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목록으로 세지 않았다.
세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끝이 없는 것을 세는 것은 이 자리에서 할 일이 아니었다.
할 일이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은 단순했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정도전의 나라가 있었다. 설계도가 있었다. 조선경국전이 있었다. 재상이 중심인 나라. 왕은 덕으로 임하고 실무는 재상이 한다. 그 설계도는 틀리지 않았다. 정도전이 죽었어도 설계도는 살아있었다. 그것을 내가 부수면 무엇이 남는가.
부수지 않기로 했다.
부수는 것이 어리석었다. 정도전이 만든 것들이 이 나라의 뼈대였다. 뼈대를 부수면 몸이 무너진다. 나는 뼈대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뼈대의 중심을 옮기는 것이었다.
재상에서 왕으로.
그것이 내가 구상한 것이었다.
정도전의 설계가 왜 위험한지를 나는 오래 생각했다.
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위험한 것은 다른 이유였다.
재상이 중심이 되면 재상이 강해야 한다. 재상이 강하려면 재상을 뒷받침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세력이 있으면 그 세력이 재상을 통해 나라를 움직인다. 왕은 형식이 된다. 형식이 된 왕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고려가 그랬다.
무신정권이 그랬다. 권문세족이 그랬다. 왕이 형식이 되면 왕 위에 실질이 생긴다. 실질이 세력을 먹는다. 세력이 땅을 먹는다. 땅이 없는 백성이 생긴다. 정도전이 고치려 한 것이 그것이었는데, 정도전의 방법이 그것을 다시 만들 수 있었다.
재상 중심의 나라는 강한 재상이 있어야 한다. 강한 재상은 강한 세력에서 나온다. 강한 세력은 언젠가 왕을 형식으로 만든다.
구조가 자신의 문제를 품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봤다. 정도전은 보지 못했다. 아니면 봤는데 다른 방법을 믿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왕이 중심이 되는 나라.
그것이 내 답이었다.
왕이 직접 정무를 본다. 육조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에게 직접 올린다. 육조직계제. 왕이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다. 재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재상의 위에 왕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맞는가.
맞다고 생각했다. 틀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맞는 것이었다. 고려의 습성이 아직 남아 있었다. 권문세족의 방식이 아직 살아있었다. 그것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지금 왕권밖에 없었다.
왕권이 강해야 세력이 왕 위에 올라오지 못한다.
세력이 왕 위에 올라오지 못하면 토지를 먹지 못한다.
토지를 못 먹으면 백성이 군역을 진다.
군역을 지면 나라가 유지된다.
이것이 내 논리였다. 정도전의 논리와 출발이 같았다. 백성이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방법이 달랐다. 정도전은 제도로 갔다. 나는 왕권으로 갔다.
어느 쪽이 더 오래 가는지는 나중에 알 것이었다.
지금은 내 방법을 썼다.
그런데 왕권을 강화하는 데 두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하나는 신진사대부 세력이었다. 정도전은 죽었지만 그 방향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재상 중심을 원하는 사람들. 그들과 싸우는 것은 소모였다. 싸우지 않고 흡수하는 것이 나았다. 과거제를 유지했다. 학문을 장려했다. 그들이 가진 것을 인정하면서 중심을 내가 갖는 방식으로 갔다.
또 하나가 외척이었다.
민씨 가문이었다.
민제 장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를 처음 알아본 사람이었다. 하륜을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처가에서 은혜를 받았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민무구와 민무질은 달랐다.
처남들이었다. 왕자의 난에서 같이 싸웠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가 왕이 된 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자 양녕 주변에 사람을 모았다. 외척으로서 다음 왕의 외삼촌이 되려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외척이 세자 주변에 모이면 세자가 왕이 됐을 때 외척이 나라를 움직인다. 외척이 나라를 움직이면 왕은 형식이 된다. 고려의 반복이었다. 내가 막으려 한 것이었다.
막아야 했다.
민씨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민씨는 오빠들을 지킬 것이었다. 그것이 민씨였다. 그 사람은 가족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 사람의 강함이었다. 그것이 그 사람의 한계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 진행했다.
민무구와 민무질의 죄목을 정리했다.
틀린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이 한 것이었다. 세자 주변에 결집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법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법으로 처리했다.
그런데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 다른 질문이 들어왔다.
그것이 법이기 때문에 한 것인가. 아니면 해야 하기 때문에 한 것인가. 그 둘이 같은가.
나는 그 질문에 오래 앉아 있었다.
법이었다. 맞는 처리였다. 외척이 왕권을 흔드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것이 이 나라가 고려와 달라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민씨의 얼굴이 있었다.
그 사람이 그날 밤 무기를 꺼냈다. 오빠들을 불렀다. 나를 궁에서 불러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데 그 사람이 한 것이 있었다.
1차 때만이 아니었다.
2차 때 기억이 있었다. 형 이방간과 싸워야 했다. 피붙이였다. 한 번 피를 봤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마당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민씨가 왔다.
갑옷을 들고 왔다.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입혔다. 투구를 씌웠다. 그 손이 떨리지 않았다. 내 손이 떨리고 있었는데 그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 눈을 봤다.
무섭지 않은 눈이었다. 무서운데 가리고 있는 눈이 아니었다. 진짜로 무섭지 않은 눈이었다. 이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를 알면 두려움이 없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보고 움직였다.
두 번 다 그랬다. 내가 먼저 결심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사람이 먼저 결심했다. 나는 그 결심의 뒤를 따랐다.
그것을 알면서 오빠들을 잡았다.
알면서 했다는 것과 몰라서 했다는 것은 달랐다. 나는 알면서 했다.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말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법의 이유가 아니었다. 왕의 이유였다.
민씨는 내 머뭇거림을 알고 있었다. 내가 두 번 서 있었던 것을. 내가 결심하기 전에 이 사람이 먼저 결심했다는 것을. 그것을 아는 사람이 왕 곁에 있으면 안 됐다. 아는 것이 힘이었다. 왕의 약한 곳을 아는 사람이 왕 옆에 서 있으면 그 사람이 진짜 왕이었다.
민씨 가문이 세자 주변에 결집한다. 그것이 표면이었다. 그 아래에 이것이 있었다.
민씨의 기세가 이 나라를 계속 움직이면 안 됐다.
그것이 내 논리였다.
그 논리가 맞았다.
그 논리가 맞는데 민씨의 얼굴이 있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사실이었다.
하륜이 왔다.
오래된 사람이었다. 민제 장인이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이러니였다. 장인이 소개한 사람이 나의 가장 가까운 참모가 됐다. 그 참모가 지금 민씨 가문을 처리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
하륜이 말했다.
“처남들 건이 정리됐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비께서 아실 텐데요.”
“알겠지.”
“어떻게—”
“알아서 할 것이오.”
하륜이 잠깐 나를 봤다.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하륜의 방식이었다. 내가 선을 그으면 거기서 멈췄다.
그 선 안에서 일을 처리했다.
나는 그 선을 긋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저녁 경복궁을 혼자 걸었다.
정도전이 이름 지은 궁이었다. 빛나고 복된 궁. 그 이름이 싫지 않았다. 좋은 이름이었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죽어도 이름은 남았다.
근정전 앞에 섰다.
넓은 마당이었다. 돌이 깔려 있었다. 조회 때 신하들이 서는 자리에 품계석이 있었다. 나는 그 마당을 봤다.
이 마당에 서는 사람들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가.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통제할 수 없으면 이 마당이 전쟁터가 된다. 고려에서 봤다. 이 마당 같은 자리에서 무신들이 칼을 뽑았다. 권문들이 왕을 움직였다.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했다.
그러려면 왕이 강해야 했다. 왕이 강하려면 왕 주변의 것들을 정리해야 했다. 외척도 정리했다. 사병도 이미 혁파했다. 신진사대부는 흡수했다.
다음은 무엇인가.
세종이었다.
충녕이었다. 민씨가 낳은 셋째 아들이었다. 열 살이 안 됐다. 그런데 그 아이가 달랐다.
양녕이 세자였다. 장자였다. 그런데 양녕은 왕이 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봤다. 민씨도 봤을 것이었다.
충녕은 달랐다.
책을 읽었다. 밥 먹을 때도 읽었다. 잘 때도 옆에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민씨를 닮은 것이었다. 민제 장인을 닮은 것이었다. 그 집안의 머리가 이 아이에게 갔다.
나는 그 아이를 봤다.
내가 만든 나라를 이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왕권이 강한 나라를 이어받아 그것을 더 깊이 뿌리내릴 사람이. 나는 칼로 만들었다. 다음 사람은 글로 만들어야 했다.
칼로 연 것을 글로 채우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나라에 줄 수 있는 마지막 것이었다.
충녕이 그것을 할 수 있었다.
밤에 민씨의 처소에 갔다.
민씨는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나를 보고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일어났다. 요즘은 일어나지 않는 때가 있었다.
나는 들어가 앉았다.
말이 없었다. 오래 말이 없었다.
민씨가 먼저 말했다.
“오빠들 건이 정리됐다고 들었습니다.”
“들었소.”
“유배입니까.”
“우선은 그렇소.”
민씨가 나를 봤다.
그 눈이 물었다. 우선은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그 눈을 봤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거짓말이 되거나 상처가 됐다. 둘 다 하고 싶지 않았다.
민씨가 눈을 거뒀다.
“충녕이를 보셨습니까.”
화제가 바뀌었다. 나는 그것을 받았다.
“봤소.”
“어떻습니까.”
“좋은 아이요.”
민씨가 잠깐 있었다.
“그 아이가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민씨를 봤다.
이 사람이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세자가 있는데 셋째 아들이 왕이 될 수 있겠냐고 묻는다는 것이. 이 사람도 봤다는 것이었다. 양녕을. 충녕을.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를.
“왜 묻소.”
“그냥요.”
그냥이 아니었다. 나는 알았다.
“될 수 있소.”
민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 밤에 오빠들 얘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충녕 얘기도 더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각자 아는 것들을 안고 같은 방에 앉아 있었다.
그것이 우리였다.
오래 그것이 우리였다.
왕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즉위하고 나서야 알았다.
왕이 되기 전에는 올라가는 것이었다. 올라가는 것은 방향이 있었다. 방향이 있으면 움직일 수 있었다.
왕이 되면 올라갈 곳이 없었다.
올라갈 곳이 없으면 지키는 것이었다. 지키는 것은 올라가는 것과 달랐다. 올라갈 때는 잃을 것이 적었다. 지킬 때는 잃을 것이 많았다. 잃지 않으려면 더 단단히 쥐어야 했다. 더 단단히 쥐면 더 많이 쥐게 됐다. 더 많이 쥐면 더 많이 잃을 수 있었다.
그 순환이 왕의 자리였다.
정도전은 그 순환을 구조로 막으려 했다.
나는 그 순환을 왕권으로 올라타려 했다.
누가 옳은지는 몰랐다.
다만 나는 내 방법을 알았다. 정도전은 자신의 방법을 알았다. 각자 아는 것을 했다. 각자 아는 것을 한 사람들이 만나서 이 나라가 됐다.
이 나라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몰랐다.
충녕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