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 10 / 30

4편 1장 — 개성, 민제의 사랑채. 1382년 봄.

나는 결정을 빨리 한다.

오래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필요한 것만 본다. 필요한 것이 보이면 결정한다. 나머지는 형식이다. 형식은 내가 오래 다뤄온 것이다. 형식으로 결정을 감싸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성계를 결정한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예문관에서 오래된 동료 하나가 술자리에서 말했다. 이성계가 또 이겼다고. 이번엔 북쪽이라고. 홍건적도, 여진도, 왜구도 그 사람 앞에서는 못 버틴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개경의 권문들이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나는 술을 마시면서 들었다. 그 말 끝에 남은 것이 있었다.

부르기 시작했다.

부르는 쪽이 있다는 것은, 아직 그가 부름을 받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전공이 계속 쌓이면 부르는 쪽과 불리는 쪽이 바뀐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 시점이 오기 전에 닿아 있어야 한다.

부르는 쪽에서 닿는 것과, 부르는 쪽이 됐을 때 닿는 것은 다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동생 민개를 불렀다.

민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동생은 내가 생각하는 쪽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성계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고, 민개는 그 가장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묻지 않았다. 형이 모르는 척하는 것이 동생에게 더 넓은 공간을 주는 것이었다.

“이성계에게 연이 닿느냐.”

민개가 나를 봤다. 잠깐 생각하는 눈이었다.

“닿습니다.”

“아들들이 몇이냐.”

“여섯. 위로 넷은 이미 군영에 있습니다. 다섯째가 아직 어립니다. 개경에서 공부 중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민개도 더 묻지 않았다.

나는 혼인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관계였다. 이성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이 닿을 수 있는가. 혼인은 그 방법 중 하나였다. 가장 오래가는 방법이었다. 땅은 빼앗길 수 있다. 벼슬은 떨어질 수 있다. 관계는 끊길 수 있다. 그러나 혼인은 끊기지 않는다. 자식이 생기면 피가 섞인다. 피는 빼앗기지 않는다.

딸이 넷이었다.

위로 둘은 이미 혼처가 정해져 있었다. 이미 있는 가문들 사이에서 줄을 잇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지키는 혼인이었다.

셋째는 달랐다.

이 아이는 아직 혼처를 보지 않았다. 열여덟이었다. 늦은 것이 아니었다. 아직 고려 여자는 스물 가까이 되어도 혼인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셋째를 서두르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이 아이는 내 서재에 드나들었다. 책을 읽었다. 내가 무슨 일을 보는지 가만히 지켜봤다. 물었다. 아버지, 이건 무슨 일이에요. 이 서찰은 어디서 온 것이에요. 나는 처음엔 여자아이가 알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 눈이 계속 물었다. 나는 결국 설명했다. 이 아이는 들으면 이해했다. 이해하면 기억했다.

이 아이에게는 올라오는 힘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키는 혼인이 아니라 여는 혼인. 위험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쪽.

다섯째 아들이 개경에 있다는 말을 들은 지 사흘 후, 나는 민개를 통해 사람을 보냈다.

말은 간단하게 했다.

성균관에 들어오기 전에 한번 만나고 싶다. 여흥 민씨 민제가 청한다.

이성계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몰랐다.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개경의 권문세족이 변방 무장의 아들을 먼저 부른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계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군영에서 이긴다고 개경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이었다. 개경은 문(文)으로 여는 곳이었다. 칼이 아무리 강해도 혼맥이 없으면 개경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청을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었다.

보름쯤 지나 사람이 왔다.

민개를 통해서였다. 이성계가 아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를 확인했다. 다섯째라고 하지 않았다. 아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누구를 보낼지는 이성계가 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존중했다.

그래도 다섯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영에 있는 아들들은 뺄 수 없었다. 개경에서 공부 중인 아들은 하나였다.

이방원이 온 것은 그로부터 열흘쯤 지난 날이었다.

나는 사랑채에서 서찰을 보고 있었다. 문지기가 와서 말했다. 이성계 장군 댁 도련님이 왔다고.

나는 서찰을 내려놓고 나갔다.

마당 입구에 아이가 서 있었다. 열여섯이었다. 생각보다 컸다. 이성계의 아들이라는 것이 몸에 보였다. 변방에서 온 몸이었다. 그런데 옷은 개경 것을 입었다. 아버지 쪽도 알고 개경도 아는, 그 경계에 서 있는 몸이었다.

절을 했다.

형식이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 가르쳤거나, 스스로 익혔거나. 나는 절의 각도와 손의 위치를 봤다. 배운 것이었지만 몸에 걸리지 않았다. 형식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안으로 청했다.

앉혔다. 차를 내왔다. 나는 말을 천천히 시작했다. 아버지의 소문은 오래 들었다. 대단한 분이다. 너는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어떤 공부를 하느냐.

그가 대답했다.

경전입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이것저것.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이것저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있다. 열여섯은 그 나이다. 그런데 그것이 허술해 보이지 않았다. 이것저것이라고 말하면서 눈이 정확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봤다.

긴장하지 않았다.

여흥 민씨의 사랑채에 처음 들어온 아이가 긴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담이 크거나, 철이 없거나다. 이 아이의 눈은 철이 없는 눈이 아니었다.

나는 차를 마셨다.

이 아이를 성균관에 보낼 것이다. 가르칠 것이다. 가르치면서 더 볼 것이다. 그리고 셋째를 줄 것이다.

결정은 이미 했다. 오늘 이 자리는 확인이었다.

어긋난 것이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안채로 들어가 송씨에게 말했다.

“셋째 혼처를 봤소.”

송씨가 나를 봤다.

“어느 집이오.”

“이성계 장군 댁 다섯째요.”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송씨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는요.”

“열여섯이오.”

“우리 셋째보다 어리네요.”

“둘이오.”

송씨가 잠시 더 있었다.

“아버지가 셋째에게 맞겠다고 생각했으면 그런 것이겠지요.”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안채를 나왔다.

복도에서 잠깐 멈췄다. 저 안에 딸들이 있었다. 맏이, 둘째, 셋째. 셋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 서재에서 책을 꺼내 보고 있을까. 아니면 어머니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오늘 결정한 것이 이 아이의 삶을 어디로 보낼지 나는 아직 몰랐다. 이성계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몰랐다. 올라갈 수도 있었다. 무너질 수도 있었다. 나는 올라가는 쪽에 걸었다.

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문이 살아남으려면 어느 시점에서 걸어야 한다.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여흥 민씨는 오래된 가문이었다. 오래된 가문의 문제는 오래된 것에만 기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복도를 걸었다.

내일 이방원을 성균관에 들여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