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 9 / 30
3편 3장 — 함주 군영 앞. 다음 날 아침.
떠나기 전에 군영 앞을 걸었다.
밤새 이야기를 했더니 몸이 가벼웠다. 이상했다. 피곤해야 하는데 가벼웠다. 8년 동안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정몽주는 달랐다.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려 했다. 나는 고려를 버리려 했다. 같은 곳을 보면서 다른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였지만 그 지점에서 말이 막혔다.
이성계는 달랐다.
그는 고려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개경의 언어로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구조를 볼 수 있었다. 안에서 자란 사람은 구조를 못 본다. 구조가 공기가 되어버리니까.
군영 앞 소나무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였다. 굵었다. 이 변방의 바람을 오래 맞은 나무였다.
나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냈다. 작은 칼이었다. 껍질을 조금 벗겼다. 하얀 목질이 드러났다.
글자를 새겼다.
크게 쓰지 않았다. 나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니, 그 사람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창망한 세월 한 그루 소나무.
언제 다시 볼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 곳에서 따라가리라.
칼을 넣고 돌아섰다.
이성계가 군영 입구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말없이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길을 떠났다.
한참 걷다가 한 번 돌아봤다. 이성계는 소나무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글자를 읽을 것이다. 이지란을 불러서 읽힐 것이다.
읽고 무슨 생각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다.
나는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남쪽이었다. 김포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전에는 유랑이었다. 이번엔 기다림이었다. 무언가가 익어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
언제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