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밧세바 (2부) · 64 / 117
60장 — 성문
예루살렘 성문. 다윗이 쉰아홉 살이던 해. 유다 산지에서 올라온 자.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15장 1–6절
나는 헤브론 아래 사는 사람이고 밭이 서 마지기 있고 나귀가 둘 있다.
이름은 안 적어도 된다. 성문에 오는 사람이 다 그렇다.
이레를 걸었다. 가는 데 사흘이고 오는 데 사흘이고 거기서 하루 있으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밭에 사람이 없으면 그동안 아무것도 안 되니까 이레가 아까운데 그래도 갔다.
왜 갔냐 하면 물 때문에 갔다.
우리 산지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위쪽 밭이 대고 나서 아래로 흘려보내고 그다음이 또 아래로 보내고 그렇게 내려온다.
그게 옛날부터 그런 건데 위쪽 집에서 돌을 쌓아서 물길을 돌려놨다.
돌리면 우리한테 안 온다.
가서 말했다. 안 들었다.
또 가서 말했다. 안 들었다.
두 해다.
마을 어른들한테 갔다.
어른들이 위쪽 편을 들었다.
그 집이 우리보다 오래 살았고 우리는 아버지 대에 들어왔으니까 그렇다.
오래 살면 옳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안 물어봤다.
그래서 성에 갔다.
왕한테 여쭈면 정해주신다고 해서 갔다.
가는 데 사흘 걸렸다.
아들이 열넷인데 그놈한테 밭을 맡기고 갔다. 나귀는 이웃한테 맡겼다.
아침에 도착했다.
성문 안쪽에 사람이 스물쯤 있었다. 다 밖에서 온 사람들이다. 옷 보면 안다.
거기 앉았다.
정오까지 앉아 있었다.
아무도 안 나왔다.
지키는 사람한테 물었다.
”…왕께서 언제 나오십니까.”
”…모른다.”
”…”
“나오시면 나오시고 안 나오시면 안 나오신다.”
”…”
“석 달 됐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앉았다.
이레를 걸어왔는데 석 달 됐다고 한다.
옆에 앉은 사람이 나를 툭 쳤다.
”…저기 가서 앉으시오.”
”…예?”
“저쪽 말이오.”
보니까 성문 저쪽에 사람이 몇 앉아 있고 앞에 젊은 사람이 하나 앉아 있는데 옷이 좋았다.
”…저분이 누구요.”
“왕자님이오.”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있었다.
”…왕자님이 정해주시오?”
”…아니오.”
”…”
“들으시오.”
들어주신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도 갔다. 앉아 있어봐야 아무도 안 나온다는데 어쩌겠나.
가서 뒤에 섰다.
앞에 셋이 있었다.
하나는 빚 때문에 왔다고 했고 하나는 형제끼리 땅을 나누는 일이라고 했고 하나는 나처럼 물 때문에 왔다고 했다.
셋 다 말이 길었다.
특히 두 번째 사람이 길었다. 자기 아버지가 언제 죽었고 그때 뭐라고 했고 형이 어떻고 하는 걸 다 말했다.
나 같으면 중간에서 잘랐을 거다.
안 자르셨다.
끝까지 들으셨다.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오면서 할 말을 정해놨었다.
정해놨는데 앞에 서니까 안 나왔다.
물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말하려는데 그게 말로 하려니까 안 됐다.
위쪽 밭이 어디고 우리 밭이 어디고 돌을 어디다 쌓았는지를 말해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와서 손으로 그리려고 했다.
그러다 손을 내렸다.
그분이 이러셨다.
”…천천히 하시오.”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했다.
이번에는 나왔다.
한참 했다.
다 들으시고 이러셨다.
”…어디서 오셨소.”
“헤브론 아래입니다.”
”…이레 걸렸겠소.”
”…예.”
“밭은 누가 보고 있소.”
”…아들놈이 봅니다.”
”…몇이오.”
“열넷입니다.”
그러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이러셨다.
”…당신 말이 맞소.”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두 해 동안 그 말을 들은 게 처음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가는 것이고 돌을 쌓아서 돌리는 건 안 되는 것이오.”
”…예.”
”…어른들이 저쪽 편을 든 건 그 집이 오래돼서 그런 것이지 옳아서 그런 게 아니오.”
나는 그 말을 듣고 목이 막혔다.
두 해다.
두 해 동안 그 소리를 아무한테서도 못 들었다.
그리고 이러셨다.
”…그런데 나는 정할 수가 없소.”
”…예?”
“나는 왕이 아니오.”
”…”
“왕께서 이 자리에 사람을 하나 세워두셨으면 당신 일이 오늘 끝났을 거요.”
”…”
“안 세워두셨소.”
나는 서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는 데 좀 걸렸다.
”…그러면 저는 어떡합니까.”
”…”
”…이레를 걸어왔습니다.”
그분이 나를 오래 보셨다.
그러시더니 이러셨다.
”…내가 이 땅에서 재판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소.”
”…”
“그러면 무슨 일이 있든지 나한테 오시오. 내가 정해드리겠소.”
나는 절을 하려고 했다.
무릎을 굽히는데 손을 잡으셨다.
일으키셨다.
그러고 나를 안으셨다.
입을 맞추셨다.
나는 그게 놀라웠다.
왕자가 나 같은 사람을 안는 건 못 봤다.
못 본 게 아니라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나오면서 뒤를 봤다.
다음 사람을 부르고 계셨다.
돌아오는 데 사흘 걸렸다.
와서 보니까 물길은 그대로였다.
위쪽에서 여전히 돌려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레 걸어가서 아무것도 못 받고 온 거다.
밭도 아들놈이 봤다고는 하는데 풀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억울하지가 않다.
두 해 동안 억울했다. 가기 전날이 제일 억울했다.
갔다 오니까 덜하다.
왜 그런가 하고 며칠을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다.
받은 게 없는데 뭐가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한 걸 다 들었다.
그게 다다.
그게 다인데 그렇다.
마을에 와서 그 얘기를 했다.
성에 갔다 왔다고 하니까 다들 물었다.
왕을 뵜냐고 물었다.
못 뵀다고 했다. 석 달째 안 나오신다더라고 했다.
그러면 헛걸음 아니냐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왕자님을 뵀다고 했다.
뭐라시더냐고 물어서 내가 말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으시더라고 했다.
내 말이 맞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왕께서 사람을 안 세워두셔서 못 정한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안으셨다고 했다.
한 사람이 이랬다.
”…왕자님이?”
“그래.”
”…안았다고?”
“안았어.”
그해에 우리 마을에서 성에 올라간 사람이 넷이다.
전에는 한 해에 하나 갈까 말까 했다.
넷 다 왕자님을 뵀다고 했다.
넷 다 정해진 건 없다.
넷 다 나처럼 왔다.
이듬해에는 아홉이 갔다.
우리 마을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장에 나가면 그 얘기가 돈다.
돌 때마다 같은 소리가 나온다.
왕은 안 나오시고 왕자님은 매일 나오신다고.
나는 그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성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밭 서 마지기 부치고 나귀 둘 친다.
내가 아는 건 하나다.
두 해 동안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었고 한 사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