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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60장 — 성문"
work: "밧세바"
part: "3권 · 밧세바 (2부)"
chapter: 64
url: https://mapncompass.com/ko/stories/bathsheba/064/
lang: ko
kind: fiction (a novel; not a claim of the UFoE knowledge map)
author: "각자도생(覺者道生) (pen name of Young Kang)"
rights: "© 2025 각자도생(覺者道生). 이 소설은 사이트의 CC BY 4.0 라이선스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용은 출처를 밝혀 짧게 하고, 전문의 복제·재배포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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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장 — 성문

**예루살렘 성문. 다윗이 쉰아홉 살이던 해. 유다 산지에서 올라온 자.**

<p class="coord">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15장 1–6절</p>

나는 헤브론 아래 사는 사람이고 밭이 서 마지기 있고 나귀가 둘 있다.

이름은 안 적어도 된다. 성문에 오는 사람이 다 그렇다.

이레를 걸었다. 가는 데 사흘이고 오는 데 사흘이고 거기서 하루 있으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밭에 사람이 없으면 그동안 아무것도 안 되니까 이레가 아까운데 그래도 갔다.

왜 갔냐 하면 물 때문에 갔다.

우리 산지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위쪽 밭이 대고 나서 아래로 흘려보내고 그다음이 또 아래로 보내고 그렇게 내려온다.

그게 옛날부터 그런 건데 위쪽 집에서 돌을 쌓아서 물길을 돌려놨다.

돌리면 우리한테 안 온다.

가서 말했다. 안 들었다.

또 가서 말했다. 안 들었다.

두 해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마을 어른들한테 갔다.

어른들이 위쪽 편을 들었다.

그 집이 우리보다 오래 살았고 우리는 아버지 대에 들어왔으니까 그렇다.

오래 살면 옳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안 물어봤다.

그래서 성에 갔다.

왕한테 여쭈면 정해주신다고 해서 갔다.

가는 데 사흘 걸렸다.

아들이 열넷인데 그놈한테 밭을 맡기고 갔다. 나귀는 이웃한테 맡겼다.

아침에 도착했다.

성문 안쪽에 사람이 스물쯤 있었다. 다 밖에서 온 사람들이다. 옷 보면 안다.

거기 앉았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정오까지 앉아 있었다.

아무도 안 나왔다.

지키는 사람한테 물었다.

"…왕께서 언제 나오십니까."

"…모른다."

"…"

"나오시면 나오시고 안 나오시면 안 나오신다."

"…"

"석 달 됐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앉았다.

이레를 걸어왔는데 석 달 됐다고 한다.

옆에 앉은 사람이 나를 툭 쳤다.

"…저기 가서 앉으시오."

"…예?"

"저쪽 말이오."

보니까 성문 저쪽에 사람이 몇 앉아 있고 앞에 젊은 사람이 하나 앉아 있는데 옷이 좋았다.

"…저분이 누구요."

"왕자님이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있었다.

"…왕자님이 정해주시오?"

"…아니오."

"…"

"들으시오."

들어주신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도 갔다. 앉아 있어봐야 아무도 안 나온다는데 어쩌겠나.

가서 뒤에 섰다.

앞에 셋이 있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하나는 빚 때문에 왔다고 했고 하나는 형제끼리 땅을 나누는 일이라고 했고 하나는 나처럼 물 때문에 왔다고 했다.

셋 다 말이 길었다.

특히 두 번째 사람이 길었다. 자기 아버지가 언제 죽었고 그때 뭐라고 했고 형이 어떻고 하는 걸 다 말했다.

나 같으면 중간에서 잘랐을 거다.

안 자르셨다.

끝까지 들으셨다.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오면서 할 말을 정해놨었다.

정해놨는데 앞에 서니까 안 나왔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물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말하려는데 그게 말로 하려니까 안 됐다.

위쪽 밭이 어디고 우리 밭이 어디고 돌을 어디다 쌓았는지를 말해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와서 손으로 그리려고 했다.

그러다 손을 내렸다.

그분이 이러셨다.

"…천천히 하시오."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했다.

이번에는 나왔다.

한참 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다 들으시고 이러셨다.

"…어디서 오셨소."

"헤브론 아래입니다."

"…이레 걸렸겠소."

"…예."

"밭은 누가 보고 있소."

"…아들놈이 봅니다."

"…몇이오."

"열넷입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그러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이러셨다.

"…당신 말이 맞소."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두 해 동안 그 말을 들은 게 처음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가는 것이고 돌을 쌓아서 돌리는 건 안 되는 것이오."

"…예."

"…어른들이 저쪽 편을 든 건 그 집이 오래돼서 그런 것이지 옳아서 그런 게 아니오."

나는 그 말을 듣고 목이 막혔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두 해다.

두 해 동안 그 소리를 아무한테서도 못 들었다.

그리고 이러셨다.

"…그런데 나는 정할 수가 없소."

"…예?"

"나는 왕이 아니오."

"…"

"왕께서 이 자리에 사람을 하나 세워두셨으면 당신 일이 오늘 끝났을 거요."

"…"

"안 세워두셨소."

<p class="sep" aria-hidden="true">◆</p>

나는 서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는 데 좀 걸렸다.

"…그러면 저는 어떡합니까."

"…"

"…이레를 걸어왔습니다."

그분이 나를 오래 보셨다.

그러시더니 이러셨다.

"…내가 이 땅에서 재판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소."

"…"

"그러면 무슨 일이 있든지 나한테 오시오. 내가 정해드리겠소."

<p class="sep" aria-hidden="true">◆</p>

나는 절을 하려고 했다.

무릎을 굽히는데 손을 잡으셨다.

일으키셨다.

그러고 나를 안으셨다.

입을 맞추셨다.

나는 그게 놀라웠다.

왕자가 나 같은 사람을 안는 건 못 봤다.

못 본 게 아니라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나오면서 뒤를 봤다.

다음 사람을 부르고 계셨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돌아오는 데 사흘 걸렸다.

와서 보니까 물길은 그대로였다.

위쪽에서 여전히 돌려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레 걸어가서 아무것도 못 받고 온 거다.

밭도 아들놈이 봤다고는 하는데 풀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억울하지가 않다.

두 해 동안 억울했다. 가기 전날이 제일 억울했다.

갔다 오니까 덜하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왜 그런가 하고 며칠을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다.

받은 게 없는데 뭐가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한 걸 다 들었다.

그게 다다.

그게 다인데 그렇다.

마을에 와서 그 얘기를 했다.

성에 갔다 왔다고 하니까 다들 물었다.

왕을 뵜냐고 물었다.

못 뵀다고 했다. 석 달째 안 나오신다더라고 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그러면 헛걸음 아니냐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왕자님을 뵀다고 했다.

뭐라시더냐고 물어서 내가 말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으시더라고 했다.

내 말이 맞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왕께서 사람을 안 세워두셔서 못 정한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안으셨다고 했다.

한 사람이 이랬다.

"…왕자님이?"

"그래."

"…안았다고?"

"안았어."

<p class="sep" aria-hidden="true">◆</p>

그해에 우리 마을에서 성에 올라간 사람이 넷이다.

전에는 한 해에 하나 갈까 말까 했다.

넷 다 왕자님을 뵀다고 했다.

넷 다 정해진 건 없다.

넷 다 나처럼 왔다.

이듬해에는 아홉이 갔다.

우리 마을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장에 나가면 그 얘기가 돈다.

돌 때마다 같은 소리가 나온다.

왕은 안 나오시고 왕자님은 매일 나오신다고.

나는 그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성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밭 서 마지기 부치고 나귀 둘 친다.

내가 아는 건 하나다.

두 해 동안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었고 한 사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