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밧세바 (2부) · 59 / 117

55장 — 그술

그술. 다윗이 쉰다섯 살이던 해. 압살롬 스물하나.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13장 37–39절 · 14장 1절

세 해를 있었다.

그술은 요단을 건너 북쪽으로 나흘이다.

갈릴리 물 동쪽 언덕에 성이 있다. 예루살렘보다 크지 않은데 예루살렘보다 오래됐다.

외조부께서 왕이시다. 달매 왕이시다.

어머니께서 여기서 나셨다.

처음 한 달은 아무것도 안 했다.

방을 하나 받아서 거기 있었다.

먹고 자고 마당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외조부께서 첫날에 여기 있으라고 하신 뒤로 부르지 않으셨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부르셨다.

아침이었다.

”…따라오너라.”

성문 쪽으로 가셨다.

성문 안쪽에 자리가 있었다.

돌을 깎아서 만든 자리인데 등받이가 없다.

그 앞에 마당이 있고, 마당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외조부께서 앉으셨다.

나는 뒤에 서 있었다.

그날 아침에 사람이 여섯 왔다.

땅 경계로 다투는 자가 둘, 빚 때문에 온 자가 하나, 죽은 사람 몫을 나누는 일로 온 자가 둘, 나머지 하나는 이웃이 자기 나귀를 잡아먹었다고 했다.

외조부께서 다 들으셨다.

한 사람씩 끝까지 들으셨다.

중간에 말을 자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날 다 정하셨다.

여섯 다 정하셨다.

나는 그것을 뒤에 서서 봤다.

이튿날도 나가셨다.

그다음 날도 나가셨다.

비 오는 날 말고는 매일 나가셨다.

세 달쯤 지났을 때 외조부께서 물으셨다.

”…무엇을 보았느냐.”

나는 대답했다.

”…매일 나오십니다.”

“그것 말고.”

”…그날 정하십니다. 미루지 않으십니다.”

외조부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것 말고.”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외조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오는지 아느냐.”

”…정해주십사 하고 옵니다.”

“아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말하러 온다.”

”…”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온다.”

”…”

“정해주는 것은 그다음이다.”

나는 그 말을 그날 밤에 오래 생각했다.

이튿날부터 나는 다르게 봤다.

오는 사람들이 말하는 시간이 길었다.

정하시는 데는 얼마 안 걸렸다.

말하는 것이 반 각이고 정하시는 것이 열 마디였다.

그리고 정하신 뒤에 돌아가는 얼굴을 보면, 진 쪽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한번은 그것을 여쭈었다.

”…진 쪽이 왜 화를 안 냅니까.”

외조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끝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

“사람은 지는 것보다 말을 못 하는 것을 더 견디지 못한다.”

여기에는 왕자들이 있다.

외조부의 아들이 넷이고 손자가 여럿이다.

그들에게 할 일이 있었다.

큰아드님은 성 밖 밭을 보시고 세를 걷는 것을 맡으셨다.

둘째는 북쪽 국경에 나가 계신다. 아람이 가까워서 늘 사람을 세워둬야 한다.

셋째는 성문에서 아버지 옆에 앉으신다.

막내는 아직 어리신데 아침마다 서기 방에 가서 글자를 익히신다.

넷 다 아침에 나간다.

나는 그것을 보고 처음에 이상했다.

예루살렘에서 큰형은 낮에 뜰에 앉아 계셨다. 무엇을 하시는지 아무도 몰랐다.

저녁에 사람을 부르시고, 부르면 젊은 자들이 오고, 뭐 재밌는 거 없나 하고 물으셨다.

나도 그랬다. 열여덟까지 나는 아침에 무엇을 하러 나간 적이 없다.

넉 달쯤 지났을 때 나는 그것을 알았다.

할 일이 없는 것과 할 일을 안 주는 것은 다르다.

두 해째부터 나는 옆에 앉았다.

셋째 되시는 분 옆자리였다.

정하지는 않았다. 듣기만 했다.

외조부께서 정하시기 전에 나에게 물으실 때가 있었다.

”…너는 어떻게 보느냐.”

내가 말씀드리면 들으셨다.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었다.

틀렸을 때 무엇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냥 다르게 정하셨다.

세 해째 여름에 한 번 시키셨다.

그날 나온 여섯 중에 마지막 하나를 나에게 맡기셨다.

”…네가 들어보아라.”

형제 둘이었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나귀 다섯을 어떻게 나누느냐는 일이었다.

큰쪽이 셋을 가져야 한다고 했고, 작은쪽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자기에게 두 마리를 주기로 하셨다고 했다.

큰쪽이 말하는 데 반 각이 걸렸다.

작은쪽은 그보다 길었다.

작은쪽이 말하는 중간에 큰쪽이 끼어들려고 했다.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끝까지 듣게 했다.

다 듣고 나서 정하려고 했다.

정할 수가 없었다.

법으로 하면 큰쪽이 맞다. 그런데 아버지가 두 마리를 주기로 하셨다면 그것도 값이 있다.

증인이 없었다.

나는 한참 앉아 있었다.

외조부를 봤다.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못 정하겠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너라.”

두 사람이 절을 하고 갔다.

가면서 다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이상했다. 정해준 것이 없는데 다투지 않고 갔다.

이튿날 아침에 왔다.

외조부께서 정하셨다. 큰쪽이 셋, 작은쪽이 둘이었다. 작은쪽 말대로였다.

정하시고 나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어제 이 아이가 너희 말을 끝까지 들었다. 오늘 내가 정한 것은 어제 들은 것 위에 선 것이다.”

그날 밤에 외조부께서 나를 부르셨다.

”…어제 왜 못 정했느냐.”

”…증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쪽이 참인지 몰랐습니다.”

외조부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면 오늘 나는 어떻게 정했겠느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나도 몰랐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

“모르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

“고르는 것이 왕이 하는 일이다.”

”…”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한다.”

나는 그날 밤에 오래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하나를 알았다.

나는 듣는 것을 잘한다.

정하는 것은 못한다.

외조부께서도 그것을 아셨을 것이다.

세 해 동안 나는 그것을 배웠다.

배웠다고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옆에 앉혀두셨다.

앉아 있으니 알게 됐다.

거기서 나는 다른 것도 봤다.

왕이 어떻게 걷는가.

외조부께서는 걸음이 일정하시다.

급해도 뛰지 않으신다.

그것이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것도 정해져 있었다.

성 안에서 왕이 걷는 길이 정해져 있고, 그 길에 사람이 서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정해져 있으니 일정한 것이었다.

왕이 무엇을 먹는가.

혼자 안 드신다.

매일 누구를 부르신다. 부르는 사람이 정해져 있고 순서가 있다.

먹으면서 이야기하신다.

그것이 일이었다.

왕이 언제 화를 내는가.

세 해 동안 두 번 보았다.

두 번 다 사람들 앞이 아니었다.

방에서 내셨다.

그리고 나오시면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이셨다.

나는 그것을 배웠다.

우리 궁에는 그런 것이 없다.

예루살렘 말이다.

거기서는 왕이 걷는 길이 정해져 있지 않다.

낮에 안 나오시는 날이 많고, 나오시면 아무 데나 걸으신다.

성문에 나가 앉으시는 것이 한 달에 한 번쯤이다.

한 번도 안 나가시는 달도 있다.

정하시는 것도 있고 안 정하시는 것도 있다.

무엇을 정하시고 무엇을 안 정하시는지 아무도 모른다.

밭 경계는 정하신다.

집 안의 일은 안 정하신다.

나는 그것을 그술에서 알았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몰랐다.

거기 있으면 그것이 원래 그런 줄 안다.

밖에 나와서 다른 것을 보니 알았다.

세 해째 봄에 외조부께서 물으셨다.

”…돌아가고 싶으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부르시면 갑니다.”

”…”

“부르시지 않으시면.”

거기서 나는 말을 멈췄다.

외조부께서 오래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러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비는 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

“그런 사람은 부르지도 않고 잡지도 않는다.”

”…”

“기다리면 알아서 되는 줄 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외조부께서 나를 보셨다.

”…정하는 사람이 되어라.”

”…예?”

“네 아비가 안 정하는 것을 네가 정하면, 사람들이 너에게 온다.”

”…”

“그것이 위험한 줄은 알아야 한다.”

나는 그 말을 다 들었다.

위험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하라고 하셨다.

두 가지가 같이 있었다.

세 해가 끝날 무렵에 성에서 사람이 왔다.

요압 장군이 보낸 사람이라고 했다.

돌아오라고 했다.

왕께서 부르시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

”…왕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허락이라고 했다.

부르셨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떠나는 날 아침에 외조부께 인사드렸다.

성문 앞이었다.

그 자리에 앉으셔서 나를 보셨다.

”…가거라.”

”…예.”

”…”

”…그리고 하나만 기억해라.”

”…예.”

“성문은 왕의 자리다.”

”…예.”

“왕이 안 앉으면 자리가 빈다.”

”…”

“빈 자리에 앉는 자는, 앉기 전에는 왕이 아니고 앉고 나면 왕이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절을 하고 나왔다.

나흘을 걸었다.

요단을 건널 때 나는 뒤를 한 번 봤다.

거기서 나는 왕의 외손이었다.

하나뿐이었다.

건너면 셋째다.

아니, 이제 둘째다.

큰형이 없다.

건너면서 나는 그것을 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