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밧세바 (2부) · 60 / 117
56장 — 넷째
예루살렘. 다윗이 쉰다섯 살이던 해. 밧세바 서른둘.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12장 24절 · 5장 14절 · 역대상 3장 5절
넷째다.
시므아가 열이고 소밥이 일곱이고 나단이 넷이다.
그리고 이 아이가 났다.
넷을 낳았다.
죽은 아이까지 세면 다섯이다.
서른둘에 다섯을 낳았으니 적은 것은 아니다.
궁에서 나보다 많이 낳은 사람이 없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안다.
자주 오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리가 되지는 않는다.
상 나가는 순서는 열두 해째 그대로다.
나는 마지막이다.
셈해보면 이렇다.
이 아이 위에 헤브론에서 난 여섯이 있었다.
큰 도련님이 두 해 전에 돌아가셨다. 양털 깎는 데서 그렇게 되셨다.
셋째 도련님은 그술에 계신다. 세 해째다.
그러니 여섯 중에 둘이 빠졌다.
그리고 여기서 난 아이들이 있다.
그중에 앞선 아이가 여럿이다.
세어보면 이 아이가 열 몇 번째다.
열 몇 번째 아들에게 오는 것은 없다.
열두 해 동안 나는 그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왔다.
앞에 서면 세어진다. 세어지면 누군가 그 셈을 한다.
열 몇 번째는 셈에 안 들어간다.
그런데 두 해 전에 나는 다른 것을 봤다.
앞에 선 분이 앞에 선 분을 치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그러니 앞에 서는 것도 위험하고 안 서는 것도 안전하지 않다.
나는 그것을 두 해 동안 생각했다.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낳는 것은 이번이 제일 수월했다.
첫아이 때는 이틀 걸렸다.
이번에는 한나절이었다.
어머니가 오셨다. 할머니도 오셨다.
두 분이 옆에 계셨다.
낳고 나서 어머니가 우셨다.
왜 우시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를 안았다.
첫아이 때 나는 이 아이가 살지 죽을지 모르고 안았다.
시므아 때는 무서워하면서 안았다.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무섭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이름은 여드레째에 붙인다.
붙이는 것은 어미가 한다. 아비가 하는 집도 있는데 대개 어미가 한다.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은 내가 붙였다.
첫아이는 이름이 없다. 이레였다. 붙이기 전에 죽었다.
이름이 없으니 부를 것이 없다.
열세 해 동안 나는 그 아이를 무엇이라고도 부르지 못했다.
이번 이름을 나는 나흘째에 정했다.
정하고 나서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글자를 나는 모른다. 소리만 안다.
소리가 무엇과 이어지는지는 할아버지가 아신다.
”…이렇게 부르려고 합니다.”
내가 소리를 냈다.
할아버지가 그것을 두 번 들으셨다.
”…그 소리에는 갚는다는 뜻이 있다.”
”…”
“채워 넣는다는 뜻도 있다.”
”…”
“평안하다는 쪽으로도 간다. 그쪽으로 듣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
”…네가 무슨 뜻으로 붙이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더 묻지 않으셨다.
솔로몬.
여드레째에 그렇게 올렸다.
이레째에 사람이 왔다.
선지자였다.
왕의 아들이 나면 오신다.
절차다.
시므아 때도 오셨고 소밥 때도 오셨고 나단 때도 오셨다.
오셔서 보시고 가셨다.
세 번 다 그랬다.
방에 들어오셔서, 아이를 보시고, 잠깐 계시다가 가셨다.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나는 그것이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보러 오시는 것이 절차고, 보시고 가시는 것이 절차라고 여겼다.
첫아이 때는 안 오셨다.
이레였으니 못 오신 것이다.
그전에 그분이 왕께 무슨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부엌에서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죽었다.
이번에도 오셨다.
방 앞에서 기별이 왔다.
나는 옷을 여미고 앉아 있었다.
들어오셨다.
나이가 있으셨다. 흰 것이 많았다.
문간에서 잠깐 서 계셨다.
방이 좁았다.
북쪽 끝 방이라 창이 하나다.
그분이 그것을 보셨다.
아이를 보여드렸다.
한참 보셨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름을 정하셨소?”
”…예.”
“무엇이오.”
내가 말씀드렸다.
그분이 그것을 한 번 들으셨다.
그러고 나서 한참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앞의 세 번에는 여기서 가셨다.
이번에는 안 가셨다.
”…이 아이의 이름을 하나 더 두겠소.”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예.”
“여디디야라 하시오.”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이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열세 해 전에 그분이 하신 말은 죽는다는 것이었다.
오늘 하신 말은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같은 분이 같은 집에 오셔서 하신 말이다.
나는 그것을 그 자리에서 셌다.
세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말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분이 가시면서 문간에서 한 번 돌아보셨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다 마셨다.
나는 그것을 봤다.
가셨다.
그날 밤 나는 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이름이 둘이 되었다.
기록에 무엇으로 올리는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드레째에 서기관에게 간다.
선지자가 주신 이름이 있으면 그것이 올라간다.
여디디야.
부엌에서 그 이야기가 이레쯤 돌았다.
선지자가 오셔서 이름을 주셨다고들 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이라고들 했다.
앞의 셋 때는 안 그러셨다는 말도 함께 돌았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니 안 돌았다.
새로운 이야기가 생겼다.
한 달이 지나니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부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길고 소리가 셋이다.
나는 내가 정한 대로 불렀다.
솔로몬.
내가 그렇게 부르니 종이 그렇게 불렀다.
종이 그렇게 부르니 옆방에서 그렇게 불렀다.
한 해가 지나니 부엌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기록에는 여디디야라고 올라가 있다.
부르는 것은 솔로몬이다.
나는 그것을 알아챘다.
알아채고 나서 놀라지 않았다.
부르는 이름은 짧은 쪽이 남는다.
그리고 매일 부르는 사람이 정한다.
매일 부르는 사람은 나다.
가을에 할아버지가 오셨다.
증손자를 보러 오셨다.
넷째 증손자다.
아이를 무릎에 놓아드렸다.
한참 보셨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물으셨다.
”…선지자가 왔다더냐.”
“예.”
”…무엇이라고 하더냐.”
”…이름을 하나 더 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하셨다.
”…무슨 이름이냐.”
”…여디디야입니다.”
”…”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보셨다.
한참 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앞의 셋 때는 안 주셨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예.”
”…넷째에 주셨구나.”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 말을 그날 밤에 여러 번 생각했다.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 때는 안 오셨다.
이 아이 때 오셨다.
무슨 뜻인지 나는 몰랐다.
그리고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선지자가 이름을 하나 준다고 열 몇 번째가 첫째가 되는 것이 아니다.
위에 여섯이 있고 그 위에 아무것도 안 바뀌었다.
상 나가는 순서도 그대로다.
나는 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넷이 다 살아 있다.
그것이 그해에 내가 세어본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