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 밧세바 (1부) · 38 / 117
35장 — 오후
예루살렘. 다윗이 마흔한 살이던 해.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11장 1–5절
봄에 군이 나갔다.
성문에서 봤다. 나가는 데 한 각이 걸렸다.
그는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세 해째였다.
처음 한 해는 그것이 이상했다.
봄에 소집이 걸리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짐을 챙기려다가 챙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두 해째에는 덜했다.
세 해째에는 아침에 성벽에 올라가서 보고 내려왔다.
그것으로 됐다.
군이 나가면 성이 조용해진다.
낮이 길었다.
아침에 사람들을 봤다.
세를 걷는 일과 물길 내는 일과 성벽 고치는 일. 두로에서 온 목수들 일.
정오 전에 다 끝났다.
정오가 지나면 할 일이 없었다.
그는 낮에 잤다.
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굴에서는 낮에 자면 죽는다. 밤에 자는 것도 반쯤 깨서 잤다.
이십 년을 그렇게 살았다.
낮에 자기 시작한 것은 이 성에 들어온 뒤였다.
처음에는 잠이 안 왔다.
누워 있으면 소리가 다 들렸다. 뜰에서 사람 지나가는 소리, 아래에서 물 긷는 소리.
그런데 두 해쯤 지나니 잤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무거웠다.
그날도 그랬다.
일어나서 한참 앉아 있었다.
입 안이 말라 있었다.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는 것은 버릇이었다.
궁 안은 방이 좁고 창이 굴처럼 나 있어서 답답했다. 여부스 사람들이 벽을 두껍게 쌓아서 그렇다.
옥상은 넓었다.
성이 다 보였다.
능선 위에 성을 지어서 어디서나 어디가 보인다.
그는 그것을 좋아했다.
수구를 뚫고 들어온 날 아침에 그는 여기 올라와서 아래를 봤다.
여기다, 하고 말했다.
십오 년 전이 아니라 다섯 해 전이었다.
다섯 해 만에 이 성이 이렇게 됐다.
그는 난간 쪽으로 걸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는데 아직 높았다.
지붕들이 아래에 있었다.
북쪽 언덕 쪽에 집이 몇 늘었다. 군인들에게 나눠준 자리였다.
거기 옥상 하나에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빨래를 너는 줄 알았다.
담이 있었다.
옥상 가장자리를 허리쯤 오는 담이 둘러 있었다.
그 담 위로 어깨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앉아 있었다.
여기서 저기까지가 얼마인지 그는 세어본 적이 없었다.
멀었다.
소리는 안 들렸다.
물이 흐르는 것도 안 보였다.
젖어 있었다.
볕이 남아 있어서 젖은 데가 빛났다.
몸을 숙였다가 폈다.
숙이면 담에 가리고 펴면 어깨가 나왔다.
머리가 풀려 있었다.
얼굴은 안 보였다.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봤다.
얼마나 봤는지 모른다.
봤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발이 그 자리에 있었다.
옮기지 않았다.
그 뒤에 그는 그 순간을 여러 번 생각해봤다.
무엇을 봤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얼굴을 못 봤다.
무엇을 입었는지도 모른다. 안 입고 있었으니까.
몇 살인지도 몰랐다.
머리 색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그런데 발이 안 움직였다.
한참 뒤에 그쪽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서 옷을 걸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옥상이 비었다.
그는 그 빈 옥상을 봤다.
빨래가 널려 있었다.
그는 난간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에 자국이 나 있었다.
시종을 불렀다.
올라온 자가 문간에 서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 그 순간 정하지 못했다.
시종이 서 있었다.
시종은 서 있는 것이 일이다.
그는 북쪽 아래를 가리켰다.
“저 집.”
”…어느 집 말씀이십니까.”
“옥상이 있는 집. 지붕이 낮고 담이 흰 것.”
시종이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예. 보입니다.”
“알아보게.”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거기서 그는 잠깐 멈췄다.
무엇을 알아보라고 해야 하는지.
여자가 누구인지 물으면, 그것을 시종이 옮긴다.
옮기면 그 집에 간다.
“저 집이 누구 집인지.”
“예.”
시종이 내려갔다.
그는 옥상에 남아 있었다.
해가 넘어갔다.
이튿날 저녁에 시종이 올라왔다.
“알아보았느냐.”
“예.”
“헷 사람 우리아의 집입니다.”
그는 그 이름을 들었다.
몰랐다.
”…삼십칠인 명단에 있는 자입니다.”
그는 그것도 들었다.
명단은 서른일곱이다.
셋은 안다. 야소브암과 엘르아살과 삼마.
굴에서부터 있던 자들이다.
서른은 모른다.
죽으면 채우니까 이름이 바뀐다.
바뀌는 것을 그는 세지 않았다.
”…그 아내는 엘리암의 딸이라고 합니다.”
엘리암.
그 이름은 알았다.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이다. 다섯 해 전에 그것 때문에 그 노인을 불렀다.
시종이 잠깐 멈췄다.
숨을 쉬려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이렇게 나왔다.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가 아니겠습니까.”
물음처럼 끝났다.
그는 그것을 들었다.
그 시종이 무엇을 말하려던 것인지 그는 몰랐다.
아무 뜻도 없었을 수 있다.
방이 조용했다.
그는 그 조용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셈이 나왔다.
우리아는 랍바에 있다.
엘리암도 랍바에 있다.
아히도벨은 궁 옆에 있다.
셋 다 그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 셈을 했다.
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셈은 무엇을 하지 말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셈은 무엇이 얼마인지만 말해준다.
“데려오너라.”
시종이 절을 하고 나갔다.
그는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일에 대해서 그는 나중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사람이 없기도 했다.
이름을 물었다.
물어서 알았다.
한 번 불렀다.
부르고 나서 그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이상한지는 몰랐다.
새벽에 보냈다.
같은 시종이 데려다줬다.
그다음 날 그는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서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열흘쯤 지나서 다시 올라갔다.
북쪽 언덕 쪽을 안 봤다.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안 봤다.
보름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났다.
일이 있었다.
세 걷는 일이 있었고, 두로에서 목수가 더 왔고, 북쪽 성읍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랍바에서 열흘에 한 번씩 기별이 왔다.
성벽이 두껍다고 했다. 물이 성 안에 있다고 했다.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는 답을 보냈다.
기다리라고 했다.
두 달이 지났다.
그는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굴에서 이십 년을 살면서 그는 그것을 배웠다.
지난 것은 지난 것이다.
지난 것을 붙들면 다음 것을 못 한다.
놉에서 여든다섯이 죽었을 때도 그랬다.
그날 밤 굴에서 그는 아비아달에게 내 탓이라고 말했다.
말하고 나서 그다음 날 아침에 조를 짰다.
그것이 그가 사는 방식이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에 사람이 왔다.
궁에 물건을 대는 자였다.
시종장이 들여보냈다.
그 자가 마당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누가.”
그 자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엘리암의 딸 밧세바라고 합니다.”
그는 그 이름을 들었다.
두 달 전 그 방에서 들은 이름이었다.
물어서 들었고 한 번 불렀다.
그 뒤로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한 적이 없었다.
“무엇이라고 하더냐.”
그 자가 말했다.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그는 그 말을 들었다.
“그것뿐이냐.”
“예.”
”…”
“그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그 자를 봤다.
그 자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가거라.”
그 자가 나갔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마디였다.
그 두 마디에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해달라는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느냐는 말도 없었다.
원망도 없었다.
두렵다는 말도 없었다.
그는 그것을 여러 번 뒤집어봤다.
뒤집을수록 아무것도 안 나왔다.
그러면 셈을 해야 하는 것은 이쪽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알고 나서 그는 잠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방식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디서 봤는지 그 순간에는 기억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었다.
등불을 켜라고 했다.
그리고 셈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