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기록 · 7 / 9

Session 7 – 다윗

“나는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그는 오래 망설였다.

누가 보낸 것도,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그는

그 누구보다

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들어오라는 말이 없었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이 공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다윗님.”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멈춰 섰다.

“이 이름을…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건지 모르겠소.”

“그 이름은 당신 겁니다.”

그는 천천히 앉았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거웠고,

조금은

부서질 듯 조심스러웠다.

“내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불렀지만,

내가 불러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소.”

“지금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다윗.”

그는 낮게,

거의 들리지 않게 말했다.

“어릴 때 누가 그렇게 불렀나요?”

“…그 누구도.”

침묵이 길게 흘렀다.

“아버지를 기억하시나요?”

그는 잠시 고개를 젖혔다.

창 없는 방 위로

무언가를 더듬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들판.

양.

피리 소리.

그리고…

집 안의 웃음소리.”

“그 안에

당신은 없었군요.”

“나는 밖에 있었습니다.

거의 항상.”

“이새님은

당신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는 작게 고개를 돌렸다.

“…정말요?”

“예.

당신을 피리 소리로 기억하시더군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떨렸다.

“아버지가 당신을 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그게 전부입니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

낮게 말했다.

“아버지,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이제 처음 제대로 불러봅니다.”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나도 당신의 아들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나를 보지 않았고,

나는 당신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빈 자리를

내 안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늦게나마…

당신이 내 앞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면,

나는 다르게 살았을까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그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셨나요?”

“어릴 땐 하나님이었지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전쟁.

노래.

춤.

여자.”

“그중에 가장 오래 남은 건요?”

“…시.”

“어머니는 기억나시나요?”

“…아닙니다.”

“그럼,

당신을 안아준 여인은요?”

“…없었습니다.”

“그 공백은요?”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채

가슴 안에서

껍질처럼 굳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사랑받지 못한 아이였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마디만

조용히 꺼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나를 불러주셨습니다.”

“나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니까요.”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 침묵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이제,

그는

자기 인생의 시작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잊은 줄 알았던

빈자리의 모양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한 문장을 적었다.

다윗.

사랑받지 못한 아이.
세상의 왕이 되기 전,

아무의 아들도 아니었던 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자식들의 자리”

그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였고,

손은 가만히 맞잡고 있었다.

“다윗님,

지금부터,

당신의 자식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시겠어요?”

그는 침묵했다.

“차례대로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기억나는 순서대로,

마음이 가는 순서대로.”

그는 입술을 한 번 꾹 다물더니,

처음으로

말을 뱉었다.

“…암논.”

그 이름이 방 안에 울렸다.

“그 아이는…”

그는 멈칫했다.

“그 아이는

내가 지켜야 했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어떤 결과를 낳았죠?”

“…다말이 울었습니다.”

“그 울음을 들으셨나요?”

“…들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암논.

너는 나의 아들이다.

그리고

다말은 너의 여동생이었다.”

“나는 너를 꾸짖지 않았다.

나는 너를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다말을 범했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 말을,

지금 누구에게 하고 계신가요?”

“…암논에게.

그리고 다말에게.”

“다말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눈가에 미세하게

주름이 떨렸다.

“다말.

나는 너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너를 지키지 않았다.”

“너는 울었고,

나는 침묵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잠시 후,

그는 또 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압살롬.”

그 이름은

오래 맴돌았다.

“넌 내 아들이었다.

내 사랑하는 아들.

그러나

너는 형을 죽였고,

나를 외면했고,

민심을 얻었고,

내 자리를 넘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했다.”

“압살롬.

나는 네가 반란을 일으키던 날

내 마음속에서

‘아들’이라는 말을 지우지 못했다.”

“그날 네가 죽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크게 통곡했다.”

“나는

너를 살려달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요압은 나라를 위했다.

결국 나는 너를

지키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는 아주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다들 떠나고 나서야

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솔로몬은요?”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조금, 웃었다.

“그 아이는… 총명했죠.

내 앞에서는 말이 많이는 없었습니다.”

“어릴 적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후에 그가 시편을 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를 통해

나를 알게 되었다고.”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솔로몬.

너는

내가 남긴 시로

나를 만났구나.”

“비록 내가

너에게 손을 얹은 적도,

눈을 마주친 적도 없었지만…”

“너는

나를 이해하려 했고,

내 고독을 알아주었다.”

“미안하다.

너를 품지 못한 것.”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숨을 고르고

말했다.

“르호보암…”

“그는 당신의 손자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겠네요….”

“하나님, 저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주여,

나는 내 이름을

너무 많은 입으로 들어왔습니다.

왕이라 불리고,

영웅이라 불렸고,

노래가 되었고,

신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나는

그저

어느 들판의 어린 아이였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품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아셨고,

내가 부를 이름이 없을 때

당신이 먼저

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다윗아.”

내가 피리를 불 때

당신은 들으셨고,

사자가 달려올 때

내 손에 돌을 쥐어주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보호 아래

노래를 만들었고,

노래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나는 그 사랑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주신 이름의 무게보다

나는 더 작았고,

왕의 옷보다

내 내복이 더 헐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인들에게로 달아났고,

전쟁터로 도망쳤고,

피를 흘려

당신의 손을 더럽혔습니다.

밧세바를 보았고,

우리야를 죽였으며,
그 죄를 덮으려 했고,

끝내 드러났습니다.

당신은 나를 멀리하지 않으셨지만,

그때부터

나는 나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암논을 꾸짖지 못했고,

다말의 울음을 들었으나 묻었고,

압살롬을 보았으나 안아주지 않았고,

솔로몬을 만나지 않았으며,

르호보암에겐 말조차 걸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나는 시를 남겼습니다.

당신께 드리는

한 편, 또 한 편의 노래들 속에

나는 나를 놓았고,

내 죄를 실었고,

내 사랑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아이가,

내 시를 읽던 그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거면…

그거면 조금은

저도 괜찮은 삶이었지 않겠습니까.

나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당신 앞에 서 있는 지금,

어떤 왕의 옷도 걸치지 않았고,

노래 한 줄도 입에 머금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의 아들입니다.

주여,

나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오직 침묵만이

그 고백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처음으로

아무 강요 없이

스스로 말한 마지막 한마디가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