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기록 · 3 / 9
Session 3 – 압살롬
그는 두리번거렸다.
벽도 없고, 천장도 없고, 창도 없었다.
공간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어딘가.
그러나 그는 걷고 있었다.
구체도 없고, 경계도 없었지만
발밑에는 확실히
자신의 발소리가 났다.
그는 뭔가 불쾌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장난이오.
여기, 누구 있소?”
“어서 오세요, 압살롬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멈춰 섰다.
“…그 이름을 아는군.”
“물론입니다.”
“왕자에게는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명확한 소개는 있어야죠.”
“여긴 궁정도, 군사회의도 아닙니다.
소개가 필요 없다면,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했다.
“…여긴, 도대체 뭐요?”
“당신이 여기 왔다는 것 자체가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는 불쾌한 듯 입을 굳혔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나는,
나쁜 의도로 살지 않았소.”
“그렇습니까.”
“나는—”
그는 스스로 멈췄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고
허공을 향해 말했다.
“나는 단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어떤 일 말씀이시죠?”
“형을 죽이는 일. 아니, 정의를 구현하는 일 !”
“암논 말씀이시군요.”
“그건…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소. 아니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소.
나는 두 해를 기다렸소.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아버지는 침묵했고,
다말은 울고 있었고,
나는…
그걸 견딜 수 없었소.”
“그럼, 정의를 실현하신 겁니까?”
“그렇소.”
“그 대가가 어떤 건지 알고 계셨나요?”
“나는—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었소.
그래서 도망친 거요.”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도망쳤다고요?”
“…그건—”
“그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처음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가만히 흔들었다.
“…아버지가 날 불렀으면…
나는 돌아왔을 거요.”
“아버지께서 당신을 부르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분은…
내가 없는 듯 행동했소.”
“그분이 날 부르지 않은 건,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했소.”
“그래서,
왕이 되려고 하신 겁니까?”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나는—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게 아니오.”
“그럼,
왜 후궁들을 차지하셨나요?”
“…그건 정치였소.”
“누구를 위한 정치였나요?
당신의?”
“민심이 있었소.
사람들이 나를 따랐고,
나는…
그들에게 보여줘야 했소.
내가 왕의 자격이 있다고.”
“그럼, 왕은 자격으로 되는 자리인가요?”
그는 말이 없었다.
“당신은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 느끼셨나요?”
“…나는 아버지보다 젊었고,
지혜로웠고,
민심이 있었고,
용기가 있었소.”
“그렇군요.”
“그럼 나는—”
“그럼 당신은,”
그녀가 조용히 말을 끊었다.
“왕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그는 말이 없었다.
“당신은…
아버지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나는 그저,
그분이 날 한 번이라도
불러주길 바랐소.”
“그분이 당신을 부르지 않았을 때,
당신은 스스로를
왕이라 불렀죠.”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듣고 있었다.
“나는 누구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멈춰야 한다고 믿었소.”
“하지만…
내가 멈추지 않았던 건,
누군가 날
‘그만하라고’
말해주길
기다렸던 것인지도 모르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종이 위에 펜을 내려놓고
조용히 말했다.
“이제…
부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리칼이 어깨 앞으로 떨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어릴 적 그의 손을 붙잡고
들판 끝을 걸어가던 그림자 하나가
마음 안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나는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암논을 죽인 날 이후,
당신이 나를 부르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당신이 나를 불렀다면,
나는 갔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그 일을 하지 않아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말이 울고 있었고,
형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고,
당신은 조용했습니다.”
그는 숨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섰습니다.
아버지의 자리에.”
“하지만 이제 압니다.”
“그 자리는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아들이 들어가면 안 되는 자리라는 걸.”
“그건 내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나는 당신의 아들이고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이 사실은…
끝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끝났을 때,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숨결은
처음으로
부드럽게 들렸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암논.”
“당신은 나의 형이고
나는 당신의 동생입니다.”
“당신은…
다말을 범했습니다.”
“그 일은…
당신과 다말의 일입니다.
내가 가져가선 안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죽였습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손끝이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당신의 죽음은
나의 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책임은
나의 것입니다.”
“나는 그 책임을 감당하겠습니다.”
공간이 조용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예전의 차가운 침묵이 아니었다.
말이
자리를 찾고,
관계가
흐름을 회복하고,
존재가
고백으로 다가서는 그 순간—
침묵은
치유가 시작되었다.
하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시 세우셨습니다.”
“당신은,
형과 동생의 경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압살롬은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아직 어깨를 덮고 있었지만,
그의 어깨는
처음보다 훨씬 낮고
가벼워 보였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 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