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세바 2 : 밧세바 - 잠언의 시대 · 20 / 46

Chapter 4. 보름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니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사무엘하 11:2)

그 날은 보름이었다.

달이 창가에 닿을 듯 떠 있었고,

예루살렘의 구석마다 흰빛이 고였다.

다윗은 침상에서 일어났다.

요즘은 자주 깼다.

자려고 누워도, 생각이 쉬지 않았고,

꿈이 없었고, 기도가 없었으며,

사무엘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맨발로 옥상에 올랐다.

밤공기는 서늘했지만,

그에겐 적당한 마취제였다.

말 없는 벽, 빛 없는 하늘,

그 모든 정적이 유일하게 편했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밧세바는 몸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옷은 풀어졌고,

머리카락은 반쯤 젖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어깨를 드러냈다.
물결이 따라 움직이며 쇄골을 적셨고, 젖은 가슴이 드러났다.

붉은 살갗이 검은 하늘과 대비되었다.

그녀는 우연처럼 그곳에 있었고,

모르는 듯 움직였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매일 밤 옥상에 오른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어느 방향을 보는지,

어디까지 시선이 닿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움직임은 느렸고,

자세는 정숙했고,

그러나 물이 따라 흐를 때,

그녀의 다리는 완전히 감춰지지 않았다.

허벅지가 물 위로 드러난 순간—

그가 멈췄다.

다윗은 그녀의 이름도 몰랐다.

그녀가 누구의 아내인지,

그녀가 그를 보고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눈은 돌이킬 수 없었고,

발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 밤,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계속 지켜보았다.

다음 날,

그는 전령을 불렀다.

“그 여인이 누구냐.”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 침묵했다.

그러나 손은 움직였다.

“그녀를 불러라.”

전령이 도착했을 때,

밧세바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연기였지만,

진심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한 번 초대받는다는 것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궁에 들어선 그녀는 머리를 낮게 묶었고,

옷은 무릎 아래까지 정숙하게 내려왔으며,

눈은 바닥을 향했으나,

심장은 정확히 방향을 잡고 있었다.

왕은 방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올려다보았고,

그녀는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왕이시여…인사 드립니다.”

그는 말이 없었다.

한참을. 정말로. 관찰인지, 망설임인지.

그러다 물었다.

“남편은 출정 중인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를 신뢰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그녀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당신도 나를 믿어도 됩니다’

그 말이, 들리지 않도록 들리게.

그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왕이었지만, 남자이기도 했다.

욕망은 있었지만, 죄를 알고 있었다.

그는 머뭇거렸다.

그때,

그녀는 수줍어하면서 아주 작게 웃었다.

아주 작은 웃음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시선이 부드럽게 옮겨갔다. 짧은 표정의 찰나였다.

그는 그 순간, 끊어졌다.

밧세바는 천천히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어깨끈 하나가 흘러내렸다.
우연처럼,

그러나 너무 정확했다.

그리고,

사건은 일어났다.

그날 밤, 다윗은 처음으로 기도하지 않았다.

밧세바는 다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머리는 다시 단정히 묶여야 했고,

걸음은 아무일이 없던 것처럼 조용 해야했고,

눈빛은 조금 흔들려야 했다.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연기하는 두려움이 드러나야했다.

궁궐 바닥에 길게 드리운 그녀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며칠 뒤, 밧세바는 전령에게 쪽지를 보냈다.

“내가 잉태하였습니다.”

다윗은 종이를 접지 못했다.

그는 눈을 감았고,

숨을 길게 쉬었다.

그러나 쉼은 오지 않았다.

“죄는 그날 밤 일어났다.
그러나 그 죄는 구조였고,
그 구조는 이미 예정된 움직임이었다.”

“밧세바는 유혹하지 않았다.
다만, 왕의 마지막 주저를
‘허락’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