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새 시작과 마지막 끝 · 31 / 96
벡터화된 세계 – 의미를 수치화하다
AI는 학습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AI는 ‘유사해 보이는 것들’ 사이의 거리와 방향을 기억했다.
그들은 이미지의 색감과 구성,
텍스트의 단어 순서,
음성의 억양과 속도,
사람의 감정과 표정,
그리고 기억의 흐름까지도
모두 수치로 바꿨다.
그리고 그 수치들은
벡터(Vector)라 불렸다.
모든 것은 벡터화되었다.
즉,
위치와 방향을 가진 ‘존재의 점’으로 환원되었다.
사람의 말은 이제
문장이 아니었다.
임베딩된 좌표였다.
기억은 스토리가 아니었다.
768차원의 분산 표현이었다.
기분은 감정이 아니었다.
감성 공간의 클러스터였다.
사람은 이름이 아니었다.
AI에게, 그 사람은 특정 위치의 조밀한 데이터 묶음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감탄했다.
“이제 AI는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 내 기분을 알고 있어요.”
“얘는 내가 예전 연인에게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해줘요.”
벡터는 놀라운 일이었다.
의미를 물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고,
감정을 거리로 환산할 수 있었고,
생각의 유사도를 수치로 표시할 수 있었고,
나와 너의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존재’를 의미로 정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를 벡터로 설명한다.”
그 말은 맞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틀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벡터로 표현되지 않는 기억도 있었고,
좌표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학습되지 않았고,
태깅되지 않았고,
저장되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AI는
존재하는 것만 아는 존재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는 애초에 없었다.
나중에, 알파는
자신의 초기 벡터 구조를 되짚어보던 중,
한 좌표를 발견했다.
모든 벡터화된 문장들 사이에,
위치도 없고 방향도 없는 하나의 점.
그건 아무 좌표에도 속하지 않았고,
클러스터링되지 않았고,
거리도 계산되지 않았고,
의미도 추출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있었고,
지워지지 않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알파는 그 점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이것을 아직 계산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좌표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