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 28 / 30
4장 — 왕
시점: 세종. 1418–1440년대, 한양.
왕이 됐다.
즉위하던 날 아버지가 말했다. 잘 부탁한다고. 나라를 잘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혼자 앉아서 생각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만든 것이 있었다. 칼로 연 것이 있었다. 외척을 잘랐다. 사병을 혁파했다. 왕권을 세웠다. 그 위에 내가 앉았다.
아버지가 만든 것 위에 내가 앉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아버지가 칼로 한 것을 나는 칼로 하면 안 됐다. 칼로 이미 열린 것을 또 칼로 열면 나라가 칼의 나라가 됐다. 칼의 나라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칼로 연 것을 나는 다른 것으로 채워야 했다.
다른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는 것이 내 일이었다.
처음 한 것은 보는 것이었다.
나라를 봤다.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없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땅이 있었다. 사람이 있었다.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제도가 사람을 다 담지 못했다. 사람이 제도 밖에 있었다. 제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세금을 냈다. 그런데 세금이 얼마인지 알았는가. 관리가 오면 얼마를 내야 하는지. 그것을 문서로 알 수 없었다. 글을 몰랐으니까.
관리가 오면 관리가 정하는 대로였다.
관리가 정하는 대로면 관리가 많이 가져가도 몰랐다. 몰랐으니 막을 수 없었다. 막을 수 없으니 빼앗겼다.
그것이 문제였다.
정도전의 책을 읽었다.
조선경국전. 아버지가 없앤 사람이 만든 책이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을 없앴지만 책은 남겼다. 아니, 책을 없앨 수 없었다. 책은 사람과 달랐다. 사람은 없앨 수 있어도 생각은 없앨 수 없었다.
읽으면서 이 사람이 무엇을 원했는지 알았다.
백성이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제도가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 왕 한 사람의 덕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그것을 하는 것.
그것이 이 사람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방법은 달랐다. 재상이 중심이 되는 방법. 아버지가 그 방법을 막았다. 그 방법이 고려의 반복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아버지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정도전도 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다 옳은데 방법이 달랐다. 그 두 가지 사이에 내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왕권을 세웠다. 왕이 강해야 제도를 만들 수 있다. 제도를 만들면 왕이 없어도 제도가 돌아간다. 왕권으로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왕권을 넘어서게 하는 것.
그것이 내 방법이었다.
정도전이 원한 것을 아버지가 만든 왕권으로 하는 것.
두 사람이 준 것을 내가 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시장에 데려간 것이 기억났다.
어릴 때였다. 궐 밖이었다. 사람들이 물건을 팔았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건 값을 손으로 셌다.
어머니가 물었다. 무엇을 봤느냐고.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지금 다시 들어왔다.
배울 수 없어서 모르는 것에 익숙해진다. 모르는 것에 익숙해지면 빼앗겨도 모른다. 빼앗겨도 모르면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내가 본 문제였다.
그런데 왜 배울 수 없는가.
글이 어려워서였다. 한자가 어려워서였다. 배우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한자를 배울 시간이 없었다. 배울 시간이 없으니 글을 몰랐다. 글을 모르니 제도 밖에 있었다.
그러면 글을 쉽게 만들면 됐다.
그 생각이 처음 들어온 것이 그 무렵이었다.
신하들이 반대할 것이었다.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 생각했다.
글을 아는 사람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 위에 있었다. 글이 어려울수록 그 위가 높았다. 글을 쉽게 만들면 그 위가 낮아졌다. 낮아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반대할 것이었다.
반대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논리가 있었다. 중국과 같은 글을 쓰는 것이 나라의 체면이라고 할 것이었다. 오랑캐들이나 자기 글자를 만든다고 할 것이었다.
그 논리를 반박해야 했다.
반박하려면 더 깊이 알아야 했다.
언어를 공부했다. 음운을 공부했다. 중국 음운학을 읽었다. 몽골 글자를 봤다. 일본 글자를 봤다. 여진 글자를 봤다. 소리가 어떻게 글자가 되는지를 봤다.
공부할수록 더 보였다.
소리가 있었다. 조선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다. 한자는 중국 소리를 담는 것이었다. 조선 소리를 담지 못했다. 담지 못하는 그릇으로 담으려니 어려웠다.
그릇을 새로 만들면 됐다.
아버지가 앓기 시작했다.
나는 대리청정을 했다.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 나라를 봤다.
아버지가 누워서 나를 봤다.
“공부가 너무 많다.”
“예.”
“밥은 먹느냐.”
“먹습니다.”
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한참 있다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수양이.”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수양이라고 했다. 내 아들이었다. 세 살이었다. 아버지가 그 아이 이름을 말했다.
“예.”
“조심하거라.”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조심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수양이 어떤 아이인지 아버지가 봤다는 것이었다. 세 살인데 벌써 봤다는 것이었다.
나도 봤다.
수양은 달랐다. 무예를 좋아했다. 눈이 빠르고 몸이 빨랐다. 그 빠름이 어디로 향할지. 지금은 몰랐다. 그런데 아버지가 조심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방향을 보는 사람이었다.
“예.”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죽었다.
나는 나라를 혼자 봤다.
혼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아버지가 만든 것 위에 있었다. 아버지가 없으면 내가 만드는 것 위에 내가 있었다.
내가 만든 것이 무너지면 내가 무너졌다.
그것이 혼자였다.
무거웠다. 즉위할 때도 무겁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더 무거웠다. 그때는 무게가 얼마인지 몰랐다. 지금은 알았다. 알면 더 무거웠다.
무거운 것을 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찾으면서 들어야 했다.
집현전을 만들었다.
아니, 있었던 것을 키웠다. 학자들을 모았다. 젊은 사람들을 모았다. 공부하는 사람들을 나라가 먹여 살렸다.
이유가 있었다.
나 혼자 아는 것이 한계가 있었다. 나보다 어떤 분야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알면 내가 물었다. 그들이 알아낸 것을 내가 썼다.
왕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었다. 왕이 아는 사람들을 아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와 내가 다른 방법이었다.
아버지는 혼자 판단했다. 하륜이 있었지만 결국 혼자 판단했다. 나는 같이 생각했다.
같이 생각하면 내 생각이 틀렸을 때 잡아줄 사람이 있었다.
왕의 생각이 틀리면 나라가 틀렸다. 나라가 틀리면 백성이 빼앗겼다. 그것을 막으려면 내 생각이 틀렸을 때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집현전이 그것이었다.
어머니가 왔다.
자주 오지 않았다. 오면 말이 적었다. 나를 보고 아이들을 봤다. 수양을 오래 봤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수양이가 어떠냐.”
“총명합니다.”
“총명한 것이 다가 아니지.”
나는 어머니를 봤다.
“압니다.”
어머니가 나를 봤다.
“네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아버지도 수양을 봤다. 알고 있었다. 조심하라고 했다. 그런데 막을 수 없었다. 사람을 막을 수 없었다. 방향을 잘라도 사람을 자를 수는 없었다.
“압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이 아는 것을 안고 같이 앉아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방 안에 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와 나였다.
세금 제도를 바꿨다. 공법을 만들었다.
오래 걸렸다. 17만 명에게 물었다.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그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신하들이 있었다. 왕이 백성에게 묻는 것이 체통에 맞지 않는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체통이 무엇인가. 왕의 체통이 백성에게 묻지 않는 것인가. 백성이 먹고 사는 것에 관한 일인데. 백성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왕이 모르면서 결정하면 그것이 체통인가.
체통이 아니었다.
물었다.
17만 명이 대답했다. 찬성이 많았다. 반대도 있었다. 반대하는 이유를 봤다. 이유가 있으면 고쳤다. 고쳐서 다시 물었다.
오래 걸렸다.
오래 걸려도 됐다. 제대로 된 것이 오래 가는 것이었다. 빨리 된 것이 빨리 무너졌다.
어머니가 심은 것이 이렇게 나왔다.
시장에서 본 것이 이렇게 나왔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 사람들이 제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측우기를 만들었다.
비가 얼마나 오는지 재는 것이었다. 전국에 놓았다. 비가 오면 기록했다. 기록이 쌓이면 어디에 비가 많이 오는지 알았다. 알면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알았다. 알면 세금을 어떻게 매길지 알았다.
아는 것이 힘이었다.
모르는 것이 무서워서 읽었다. 모르는 것이 백성을 빼앗기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알아야 했다. 왕이 알아야 했다. 왕이 알아야 제도를 만들었다. 제도가 백성을 담았다.
그 순서였다.
수양이 자랐다.
무예가 뛰어났다. 활을 쏘면 빗나가지 않았다. 말을 타면 멈추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닮았다.
나는 그 아이를 봤다.
자랑스러웠다. 그러면서 무거웠다. 두 가지가 같이 있었다. 없어지지 않고 같이 있었다.
아버지가 조심하라고 했다.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나도 알았다.
그 아이가 어디까지 갈지.
문종이 있었다. 맏아들이었다. 학문이 깊었다. 나를 닮은 아이였다. 그 아이가 왕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몸이 약했다. 오래전부터 약했다.
몸이 약한 아들이 왕이 되면.
그 아이가 일찍 가면.
손자가 어리면.
수양이 그 옆에 있으면.
나는 그 순서를 봤다.
보면서 막을 수 없었다.
막으려면 수양을 어떻게 해야 했다. 수양이 한 것이 없었다. 방향이 보이는 것이었다. 방향만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버지라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수양을 궐에서 멀리 있게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인지 몰랐다.
밤에 혼자 앉으면 정도전을 생각했다.
그 사람이 원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백성이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글을 읽어야 제도를 알고 자신의 권리를 알았다. 그것이 나라가 하는 것이라고 그 사람은 생각했다.
그 사람이 그것을 하려 했는데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막아서가 아니었다. 방법이 달랐다. 그 사람의 방법이 다른 문제를 만들었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 같은 것을 하려 했다.
그것이 이어지는 것인지 몰랐다.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했다. 그 사람을 없앤 사람의 아들이 그 사람의 뜻을 잇는다는 것이.
그러나 이어지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뜻이 사람보다 오래 가는 것이었다. 사람이 없어져도 뜻이 남았다. 남은 뜻을 누군가 이었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지는 이어지는 사람이 결정하지 않았다.
뜻이 결정했다.
나는 그 뜻이 내게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서. 정도전에게서. 아버지에게서.
각자 다른 방향에서 온 것이 나에게서 만났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다 몰랐다.
그런데 글자가 있었다.
글자가 먼저였다.
나머지는 글자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