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 26 / 30
2장 — 장자
시점: 양녕. 1404–1418년, 한양.
내가 먼저 태어났다.
그것이 전부였다. 먼저 태어났으니 세자가 됐다. 세자가 됐으니 왕이 될 것이었다. 그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순서가 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니까. 장자가 잇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당연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당연하지 않아진다.
외삼촌들이 잡혔다.
무구 외삼촌. 무질 외삼촌.
나는 그 소식을 들었다. 열넷이었다. 무슨 일인지 알 만큼은 컸다. 아버지가 무엇을 한 것인지. 왜 한 것인지.
세자 주변에 결집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그 죄목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외삼촌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내가 왕이 되면 외삼촌들이 외척이 됐다. 외척이 강해지면 나라가 고려처럼 됐다.
아버지가 그것을 막은 것이었다.
나를 통해 막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이해하면서 무언가가 식었다.
차갑게 식은 것이 아니었다. 조용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없는 것이 아니었다.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말하면 어머니가 아팠다. 어머니는 이미 충분히 아팠다. 오빠들이 잡힌 것으로. 아버지가 한 것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더하면 안 됐다.
충녕을 봤다.
그 애는 책을 읽었다. 언제나 책을 읽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읽었다. 스승들이 걱정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할 것이 없었다.
저 애는 저렇게 생긴 것이었다.
충녕이 읽는 것을 보면서 나는 계산했다.
저 애와 내가 비슷하면 나이와 순서가 결정한다. 장자인 내가 유리하다. 그런데 저 애와 내가 비슷하지 않으면. 저 애가 나보다 훨씬 나으면.
아버지는 틀린 것을 놔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증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방향을 보고 차단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외삼촌들에게서 봤다. 외삼촌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방향이 문제였다. 방향이 위험하면 잘잘못과 상관없이 잘랐다.
세자도 마찬가지였다.
세자가 왕이 될 방향이 아니면. 세자보다 더 나은 방향이 옆에 있으면. 아버지는 자를 것이었다.
나를 자르는 것이 아니었다. 방향을 자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였다.
나는 충녕을 오래 봤다.
열 살이 안 됐는데 그 눈이 달랐다. 책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책 너머를 보는 눈이었다. 스승이 가르치는 것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스승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봤다.
나도 총명했다. 스승들이 칭찬했다. 빨리 파악했다. 그런데 나는 파악하고 나면 다음으로 갔다. 충녕은 파악하고 나서 더 깊이 들어갔다.
그 차이가 작아 보여도 쌓이면 컸다.
십 년이 쌓이면 어디까지 벌어지는지 몰랐다.
나는 알았다.
저 애가 왕이 돼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이 나라에 맞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알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물러서겠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단순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됐다. 세자가 스스로 물러서겠다고 하면 이유를 대야 했다. 이유를 대면 정치가 됐다. 정치가 되면 복잡해졌다. 충녕이 연루됐다. 충녕이 연루되면 충녕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것은 안 됐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
내가 왕이 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보이는 것이었다. 보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보고 결정하도록.
아버지는 방향을 보고 자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방향을 틀면 아버지가 잘랐다.
그것이 내 방법이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충녕이 감당할 수 있는가.
저 무게를. 왕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가.
봤다. 오래 봤다.
충녕은 무거운 것을 무겁다고 하는 아이였다. 가볍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겁다고 하면서 내려놓지 않았다. 무거운 것을 드는 방법을 찾는 아이였다.
그것이면 됐다.
내가 놓으면 충녕이 들 것이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달라졌다.
공부를 게을리했다. 스승들이 오면 딴청을 피웠다. 자리를 비웠다. 궐 밖으로 나갔다. 기생을 가까이했다.
하나씩 했다.
한꺼번에 하면 작위적으로 보였다. 작위적으로 보이면 아버지가 다른 것을 봤다. 아버지는 눈이 좋은 사람이었다. 꾸민 것을 알아챘다.
그러니 하나씩 했다. 조금씩 했다. 자연스럽게 됐다.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어려웠다.
총명한 아이가 망가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니가 다시 나를 불렀다.
왜 이러느냐고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눈이 그랬다.
“양녕아.”
“예.”
어머니가 나를 오래 봤다.
“알고 있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눈을 내렸다.
“충녕을.”
“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봤다.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참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잘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참는 것이 보였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이. 어머니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자리에서는 다른 말을 해도 된다는 것.
그런데 할 말이 없었다.
괜찮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진짜로 괜찮았다.
충녕이 저 자리에 가는 것이. 내가 이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괜찮았다. 그것이 맞는 것이었다. 맞는 것을 하는 것이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봤다.
오래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폐세자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결정한 것이었다.
“네가 이리 된 것이 무슨 까닭이냐.”
나는 아버지를 봤다.
이 사람이 진짜로 묻는 것인지. 아니면 확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두 가지를 같은 얼굴로 했다.
“그냥 이렇습니다.”
“그냥.”
“예.”
아버지가 나를 봤다.
오래 봤다.
나는 그 눈을 받았다.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이 사람이 다른 것을 봤다. 꾸민 것을 알아챘다. 똑바로 받아야 했다.
아버지가 눈을 거뒀다.
“충녕으로 한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예.”
그것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방을 나왔다.
복도를 걸었다.
세자궁에서 나오는 마지막이었다. 이 복도를 얼마나 걸었는지. 어릴 때부터 걸었다. 뛰기도 했다. 스승에게 혼나기도 했다.
이제 끝이었다.
이상하게 가볍지 않았다.
무거운 것을 내려놓으면 가벼울 것 같았다. 그런데 가볍지 않았다. 무거운 것을 내려놓으면 그 무게만큼 빈 것이 생겼다. 빈 것이 무거웠다.
그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충녕이 세자가 됐다.
나는 그 아이를 보러 갔다.
충녕이 있었다. 책이 없었다. 처음으로 책 없이 앉아 있는 충녕을 봤다.
“형님.”
“세자가 됐구나.”
충녕이 나를 봤다.
그 눈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이었다. 이 아이는 눈치가 빠른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알아야 하는 것은 알았다.
“형님.”
“왜.”
충녕이 말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무겁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무겁다고 했다. 이 아이가 무겁다고 했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내려놓은 것을 받았는데 무겁다고 하는 것이었다. 가볍다고 하지 않았다.
“무거워야 한다.”
내가 말했다.
충녕이 나를 봤다.
“가벼운 사람이 받으면 안 된다.”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이 지금 입에서 나왔다.
충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었다. 그냥 끄덕였다.
우리는 한참 그렇게 있었다. 형이 내려놓은 것을 동생이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것을 알면서 같은 방에 앉아 있었다.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궐 밖으로 나갔다.
넓었다.
궐 안이 넓은 줄 알았다. 밖이 더 넓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의 것을 들고 있었다. 각자의 방향이 있었다.
나도 이제 내 방향을 찾아야 했다.
무엇인지 아직 몰랐다.
그런데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거운 것을 놓았으니까.
무거운 것을 놓은 사람만이 자신의 것을 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