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 7 / 30

3편 1장 — 전라도 나주, 거평부곡. 1375년 겨울.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나는 화가 나 있었다.

유배라는 것이 억울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원 사신을 맞이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그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경복흥이 화가 났고, 이인임이 화가 났고, 나는 나주로 왔다.

거평부곡이었다. 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말에서 내렸을 때 흙냄새가 났다. 그리고 사람 냄새. 여러 날 씻지 못한 몸들의 냄새. 아이들이 멀리서 나를 봤다. 관리가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숨었다.

나는 그것이 처음엔 이상하지 않았다.

마을에 집이 한 채 있었다.

흙벽에 짚으로 엮은 지붕. 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 나는 거기서 살게 됐다. 짐을 내려놓고 방 안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이 차가웠다.

나는 마흔 살이 아직 안 됐었다. 삼봉재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성균관에서 강론했고, 경전을 읽고 썼다. 그것이 내 세계였다.

이 마을은 내 세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갈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나는 경전을 읽었다. 가져온 책이 몇 권 있었다. 읽고 또 읽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서로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밭에서 노인 하나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노인이 다시 불렀다. 나는 멈췄다.

노인이 말했다.

“선비 양반.”

“무슨 일이오.”

“나라 일은 잘 되고 있는 것이오?”

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노인의 눈이 내 눈을 봤다. 늙은 눈이었다. 그런데 흐리지 않았다.

“관리들은 나라 걱정은 안 하고 녹봉만 받아간다고 들었소. 선비 양반은 어떻소.”

나는 말이 없었다.

그 노인은 다시 밭으로 돌아갔다. 더 말하지 않았다. 할 말을 다 한 사람처럼.

나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책을 펴지 않았다.

노인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녹봉만 받아간다.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었다. 그런데 모르겠다는 것이 이상했다. 당연히 나를 향한 것이 아니어야 했다. 나는 녹봉을 받으러 관직에 있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의 밭. 손이. 얼굴이.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오래 그 손들을 보지 않고 살았는지를 생각했다. 개경에서 경전을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권신들과 논쟁하는 동안 이 손들이 거기 있었다. 내가 아는 세상 바깥에. 항상.

그게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졌다.

유배가 풀린 것은 2년 뒤였다.

나는 나주를 떠났다. 고향 영주로 갔다. 삼각산으로 갔다. 부평으로 갔다. 김포로 갔다. 어디를 가도 학당을 세우면 누군가가 부쉈다. 권세가의 사람들이었다. 이유를 대지 않았다. 그냥 부쉈다.

나는 이사를 했다. 또 학당을 세웠다. 또 부쉐졌다.

8년이 그렇게 지났다.

그 8년 동안 나는 많이 걸었다.

걸으면서 봤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사람들. 땅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권문들이 가져간 땅들. 도망치는 사람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 왜구가 쓸고 간 마을들.

거평부곡의 노인 얼굴이 자꾸 그 위에 겹쳤다.

나는 그때부터 다르게 읽기 시작했다. 경전을 같은 경전인데 다르게 읽혔다. 토지가 보였다. 군역이 보였다. 구조가 보였다. 왜 백성이 가난한지, 왜 나라가 무너지는지. 그것이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

그 구조를 말로 쓰기 시작했다.

쓰면서 깨달았다. 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1383년 가을, 나는 김포에서 짐을 쌌다.

함주였다. 동북면. 이성계가 있는 곳. 황산에서 왜구를 섬멸했고, 여진을 물리쳤고, 병사들이 따른다는 사람.

친구 정몽주에게서 들었다. 그 사람의 군대를 보라고.

나는 길을 나섰다.

개경을 지났다. 북쪽으로 올라갔다. 걷고 말을 빌려 타고 걸었다. 여러 날이었다. 몸이 가벼웠다. 오래 유랑한 몸은 길에 익숙했다.

함주가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달라졌다.

남쪽과 달랐다. 더 차가웠다. 더 넓었다. 이 땅 끝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 땅 자체가 다른 세계 같았다.

군영이 보였을 때 나는 멈췄다.

병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질서가 있었다. 소리가 일정했다. 훈련이 아니었다. 그냥 일상이었는데 그게 질서였다.

나는 오래 봤다.

설계도는 내 머릿속에 있었다. 오래됐다. 토지, 군역, 관제, 신권. 8년 동안 걸으면서 쓴 것들. 그런데 그것을 현실로 만들 힘이 없었다.

저 안에 그 힘이 있었다.

나는 군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