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는 이야기 · 117 / 117
에필로그 — ... ...
7호선 상행.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문 옆자리는 이미 없었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섰다.
넉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한 편만 볼 생각이었다. 시즌 3까지 갔다. 마지막 회는 지난 주말에 봤다. 새벽 두 시였고,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앉아 있었다.
김 부장은 갔다. 본사에서 내려온다던 사람은 안 왔다. 자리는 아직 비어 있다. 다음 달에 정해진다는 말이 돌았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사람이 더 탔다. 노인은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열었다.
성경 앱을 받은 것이 지난주다. 별 다섯 개짜리가 여럿 있었고 그중 하나를 골랐다. 광고가 붙어 있었다.
사무엘하 11장.
그는 스크롤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한 줄이었다.
그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그는 화면에서 눈을 뗐다.
옥상 장면은 시즌 1에 있었다. 그 앞에 여러 회가 있었고, 그동안 여자는 열여섯이었다가 열여덟이 되었다. 우물가에서 물을 길었고, 할아버지 마당에 앉아 있었고, 결혼했고, 두 해 동안 아이가 안 생겼다.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그것이 성경에 적힌 전부였다.
그는 계속 읽었다.
우리아가 나왔다. 세 번 나오고 죽었다. 요압에게 보내는 편지를 자기가 지고 갔다는 대목에서 그는 잠깐 멈췄다.
드라마에서 그 장면은 편지를 받는 손 클로즈업으로 끝났다. 성경에는 그냥 지고 갔다고만 적혀 있었다.
우리아가 죽으니라.
몇 줄 뒤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봤다.
시즌 1의 마지막 회가 그 장면이었다. 여자가 마당에서 곡을 하고, 곡이 끝나고, 문을 잠갔다. 대사는 세 마디였다.
성경에는 한 줄이었다.
12장으로 넘어갔다.
나단이 왔다. 부자와 가난한 자와 암양 새끼. 왕이 노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아이가 죽었다.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그는 그 줄에서 멈췄다.
위로하고, 들어가고, 낳고, 이름을 지었다. 한 문장이었다.
드라마에서 그 사이가 시즌 2였다. 여자는 궁에 들어갔고, 부엌에 앉아 있었고, 아이 넷을 낳았고, 왕가가 무너지는 것을 봤고, 할아버지가 반역해서 죽었다.
한 문장 안에 이십 년이 있었다.
그는 검색창에 이름을 넣었다.
밧세바
결과가 나왔다.
사무엘하 11장에 한 번. 12장에 한 번. 열왕기상 1장에 몇 번. 2장에 몇 번.
그리고 시편 51편 표제에.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결과를 위아래로 훑었다. 열 몇 개였다. 스크롤할 것도 없었다.
삼천 년이었다.
기원전 천 년쯤이라고 했으니 삼천 년이다. 그리고 남은 것이 이 열 몇 줄이었다.
역대상을 찾아봤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 서기관이 나왔다. 방에서 두루마리를 옮기는 늙은 남자였다. 이름이 안 나왔다. 그가 상자에서 조각을 하나 꺼냈고, 거기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것이 실제로 있는 건지 궁금했다.
역대상 3장.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그는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밧수아.
암미엘의 딸.
사무엘하에는 엘리암의 딸 밧세바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앞으로 돌아가서 확인했다. 그렇게 적혀 있었다.
같은 사람인데 이름이 두 개였다. 아버지 이름도 두 개였다.
그는 검색해봤다.
여러 설명이 나왔다. 암미엘과 엘리암이 같은 글자를 뒤집은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밧세바와 밧수아가 발음이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필사 과정의 이문일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아무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역대상 20장을 찾았다.
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멸하고 가서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
그다음 줄이 왕관 이야기였다.
옥상이 없었다.
우리아가 없었다.
나단이 없었다.
아이가 없었다.
한 줄에서 다음 줄로 그냥 넘어갔다.
그는 화면을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두 번 했다. 없었다.
열차가 뚝섬유원지를 지나 지상으로 올라왔다.
창이 밝아졌다. 강이 있었다. 다리 위에 차들이 붉은 불빛을 매달고 늘어서 있었고, 강 건너로 아파트들이 층층이 불을 켜고 있었다. 같은 크기의 창이 수천 개였다.
그는 그것을 봤다.
저 안에 사람이 하나씩 있을 것이었다. 오늘 무엇인가 있었을 것이고, 대부분은 아무 데도 안 적힐 것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팀 단톡방.
— 다음 달 조직개편 얘기 들으신 분?
— 아직요
— 그 자리 결국 내부에서 뽑는대요
— 오
— 누구요?
— 몰라요 그냥 들은 거예요
그는 화면을 한참 봤다.
작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고, 재작년에도 있었다. 두 번 다 다른 사람이 앉았고 그 사람들은 지금 회사에 없다.
그는 아무것도 안 눌렀다.
단톡방을 닫았다.
청담역입니다.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자리가 하나 났다.
그는 앉았다.
앉고 나서 이어폰을 꽂았다. 재생목록의 첫 곡이 시작됐다. 북이 먼저 들어오고, 현악기가 같은 자리를 계속 두드렸다. 그 위로 종이 울렸다.
한때 세상을 다스렸다는 첫 줄이 흘러나왔다.
그는 그 첫 줄을 이제 다르게 들었다.
세는 노래였다.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없어졌는지를 세는 노래였다. 성벽과 소금기둥과 예루살렘의 종소리를 세는 노래였다.
세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노래였다.
넷째 손가락 마디가 시렸다.
그는 손을 폈다.
무릎 위에 폈다. 다섯이 다 있었다.
드라마 어딘가에 그 장면이 있었다. 늙은 남자가 늙은 아내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씩 짚어주는 장면이었다. 손바닥에 무엇이 있다고 했다. 잊으면 손을 펴라고 했다.
그는 그 대사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날 밤에 죽으러 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손을 접었다.
접고 나서 창밖을 봤다.
다시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창밖이 검어지면서 유리에 그의 얼굴이 떴다.
이번에는 눈을 안 피했다.
집까지 스물두 분.
내일도 이 열차를 탈 것이었다. 모레도 탈 것이었다. 조직개편은 있을 것이고, 자리는 누군가 앉을 것이고, 언젠가 또 빌 것이다.
그리고 그중 아무것도 어디에 적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전에도 알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노래가 끝나가고 있었다.
같은 자리를 두드리던 현악기가 잦아들고, 종만 남았다.
그는 화면을 켰다.
성경 앱이 아직 열려 있었다. 역대상 20장이었다. 옥상이 없는 자리였다.
그는 그 화면을 잠깐 봤다.
그리고 껐다.
화면이 검어졌다.
유리에 그의 얼굴이 다시 떴다.
그는 이어폰을 뺐다.
열차 소리가 들어왔다. 레일 이음매를 지나는 소리가 일정하게 났다. 누가 통화하는 소리가 났고, 어디선가 비닐봉지 소리가 났다.
그는 그 소리를 들었다.
한참 들었다.
…
…
…
그리고 다음 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