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 밧세바 (3부) · 92 / 117
87장 — 기혼
예루살렘. 다윗이 일흔 살이던 해. 그 밤에 성 안에 있던 사람들.
성경의 기록 · 열왕기상 1장 32–40절
우리는 자고 있었다.
성 안은 밤에 조용하다.
성문이 닫히면 조용하다.
그날 저녁에 남쪽에서 소리가 났다.
골짜기 쪽이었다.
에느로겔이다.
잔치가 있다고들 했다.
왕자님이 양을 잡으신다고 했다.
그런 잔치는 있다.
우리는 그러려니 했다.
소리가 한참 났다.
그러다 그쳤다.
아니, 그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았다.
밤중에 다른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가까웠다.
성 안에서 났다.
말발굽 소리가 났다.
노새였다.
말은 소리가 다르다.
노새는 발이 무겁다.
우리 집이 아래쪽이라 그 길이 지나간다.
나는 일어나서 문틈으로 봤다.
등불이 여럿 지나갔다.
앞에 노새가 하나 있었다.
누가 타고 있었다.
작았다.
아이였다.
나는 그것을 봤다.
아이가 왕의 노새를 타고 있었다.
나는 그 노새를 안다.
성 안에 그런 노새가 하나뿐이다.
왕께서 타시는 것이다.
요새는 안 타신다.
몇 해 안 타셨다.
그런데 오늘 밤에 나왔다.
그 위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옆에 어른들이 걸었다.
나는 하나를 알아봤다.
제사장이었다.
사독이라고 하는 분이다.
절기에 뒤쪽에 서시는 분인데 오늘은 앞에 계셨다.
그 옆에 늙은 분이 계셨다.
선지자라고 들었다.
아주 늙으셨다.
걸음이 느렸다.
둘이 노새 옆에서 걸었다.
그리고 뒤에 군인들이 있었다.
옷이 달랐다.
이 나라 옷이 아니었다.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다.
왕의 곁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자들이 밤에 성 안을 걷는 일이 없다.
나는 그것을 보고 문을 닫았다.
보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닫고 나서 다시 열었다.
행렬이 남쪽으로 갔다.
성문 쪽이 아니었다.
동쪽 아래다.
기혼으로 가는 길이다.
물이 나오는 데다.
우리가 매일 물을 뜨러 가는 데다.
나는 그리로 왜 가는지 몰랐다.
밤에 물을 뜨러 가지 않는다.
나는 옷을 걸치고 나갔다.
이웃도 나왔다.
여럿이 나왔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따라 내려갔다.
멀리서 따라갔다.
샘이 바위 아래에 있다.
거기 사람들이 섰다.
우리는 위에서 봤다.
등불이 여럿이었다.
아이가 노새에서 내렸다.
제사장이 무엇을 들었다.
뿔이었다.
나는 그것을 봤다.
멀어서 잘 안 보였다.
그런데 뿔인 것은 알았다.
기름이 든 뿔이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 우리는 안다.
아이 머리에 부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옆사람을 봤다.
옆사람도 나를 봤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말할 것이 없었다.
보면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나팔이 울렸다.
골짜기라 울렸다.
한 번이 아니었다.
여러 번 울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외쳤다.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는 그 이름을 들었다.
솔로몬.
나는 그 이름을 안다.
들은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이 안 났다.
한참 있다가 났다.
성문이다.
성문에 서 있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다.
뒤에 서 있다가 두어 마디 묻는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장에서 들었다.
기름 나르는 사람에게서 들었다.
그 아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그 자리에서 생각했다.
저 아이가 그 아이인가.
멀어서 얼굴은 안 보였다.
작았다.
열넷이나 열다섯쯤 되어 보였다.
옆에 있던 자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솔로몬이라는데.”
”…그게 누구요.”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성문에 서 있던 아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으로는 설명이 안 됐다.
다른 자가 이렇게 말했다.
”…왕의 아들이라던데.”
”…몇째요.”
”…모르오.”
그리고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우리는 위에서 보고 있었다.
소리를 냈어야 하는가.
만세를 불러야 하는가.
아무도 안 불렀다.
부르라고 한 사람이 없었다.
아래에서는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위에서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행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 쪽으로 왔다.
우리는 길을 비켰다.
비키면서 뒤로 물러섰다.
행렬이 지나갔다.
아이가 노새를 타고 있었다.
머리가 젖어 있었다.
기름이다.
등불이 그 위를 지나갔다.
젖은 데가 빛났다.
나는 그것을 봤다.
가까이서 봤다.
얼굴이 보였다.
아이였다.
정말 아이였다.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그것을 봤다.
웃지 않았다.
손을 들지도 않았다.
앞만 보고 있었다.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해 보였다.
노새가 큰 것이다.
발이 안 닿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이상했다.
저 아이가 왕이 되는가.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 사람들이 따라갔다.
누가 먼저 갔는지 모른다.
하나가 가니 여럿이 갔다.
나도 갔다.
가면서 누가 만세를 불렀다.
그러니까 옆에서도 불렀다.
나도 불렀다.
부르고 나서 이상했다.
아까는 안 불렀는데 지금은 불렀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아무것도 안 달라졌다.
옆에서 부르니까 불렀다.
그것뿐이다.
성으로 올라오는 길이 가팔랐다.
사람이 늘었다.
집에서 나온 자들이 붙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자가 있었다.
왕이 나셨다고들 했다.
누구냐고 물으면 솔로몬이라고들 했다.
그게 누구냐고 물으면 아무도 대답을 안 했다.
그런데도 다들 갔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걸었다.
땅이 울렸다.
정말 울렸다.
사람이 많으면 그렇게 된다.
성 안이 좁으니 더 그렇다.
소리가 벽에 부딪혀서 돌아온다.
나는 그 소리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남쪽 골짜기 쪽을 한 번 봤다.
거기도 아까 소리가 났었다.
지금은 안 났다.
조용했다.
나는 그것을 봤다.
보고 나서 다시 앞을 봤다.
날이 밝을 무렵에 소리가 그쳤다.
나는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었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왕이 나셨소.”
”…누가요.”
”…솔로몬이라는 분이오.”
”…그게 누구요.”
나는 그 물음을 세 번째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도 대답을 못 했다.
나는 이렇게만 말했다.
”…어린 분이오.”
”…어리다니 얼마나.”
”…열다섯쯤 되어 보였소.”
아내가 아무 말도 안 했다.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누가 하오.”
나는 그 물음에 답을 못 했다.
나는 물을 나르고 밭을 부친다.
궁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데 그 물음이 맞는 물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열다섯이 왕이 되면 누가 하는가.
나는 그날 낮에 잤다.
밤새 걸었으니 잤다.
자다가 한 번 깼다.
밖에서 나팔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깼다.
안 났다.
조용했다.
나는 다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