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밧세바 (2부) · 54 / 117
50장 — 병든 오라비
예루살렘. 다윗이 쉰 살이던 해. 다말 열넷.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13장 1–20절
나는 왕의 딸이다. 이름은 다말이다.
어머니는 그술에서 오셨다. 그술 왕 달매의 따님이시니, 나는 왕의 손녀이기도 하다.
두 해에 한 번쯤 어머니를 따라 그술에 간다. 요단을 건너 나흘을 올라가면 나온다.
거기 가면 사람들이 나를 아씨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말로 부른다. 왕의 외손녀에게 쓰는 말인데, 여기 말로는 옮기기 어렵다.
거기서는 내가 하나뿐이다.
여기서는 딸이 여럿이다.
옷이 정해져 있다.
시집 안 간 왕의 딸은 색을 넣은 옷을 입는다. 물들인 실이 들어가서 값이 나가고, 소매가 길어서 일할 때는 걷어 올려야 한다.
멀리서 봐도 저 아이가 누구인지 알게 하는 옷이다.
나는 그 옷을 좋아했다.
좋아했다고 쓰면 어리게 들리는데, 그때 나는 어렸으니까 좋아했다고 쓴다.
아침에 아버지가 부르셨다.
부르시는 일이 흔하지 않아서 나는 옷을 고쳐 입고 갔다.
아버지는 뜰에 계셨다.
“암논이 앓는다.”
”…많이요?”
“먹지를 못한다는구나.”
”…”
“네가 가서 그 앞에서 무엇을 좀 만들어 먹여주어라. 네 손으로 만든 것이면 먹겠다고 하는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서 있었다.
앞에서 만들라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아프면 만들어서 들려 보내면 된다. 궁에 요리하는 사람이 몇인데 왕의 딸이 가서 만들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것이려니 했다.
앓는 사람은 이상한 것을 청하기도 한다. 나도 작년에 열이 났을 때 어머니가 만드신 것 아니면 안 먹겠다고 했었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큰오라비 집은 궁 안에 있다.
왕자들은 나이가 차면 안뜰 건너편에 집을 하나씩 받는다. 방이 서넛이고 마당이 있다.
압살롬 오라비도 받으셨다. 큰오라비도 받으셨다.
걸어서 얼마 안 된다.
가니 사람이 여럿 있었다.
큰오라비는 누워 계셨다.
얼굴을 보니 아파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픈 것은 겉으로 다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그냥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했다.
반죽을 만들었다.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치대야 한다. 한꺼번에 부으면 질어진다.
소매를 걷고 했다.
과자는 얇게 펴서 굽는다. 두꺼우면 안이 안 익는다. 나는 그것을 열둘쯤에 배웠다.
굽는 동안 큰오라비가 보고 계셨다.
누워서 보고 계셨는데, 나는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앓는 사람은 누워서 보는 것이다.
다 구워서 가져다드렸다.
안 드셨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안 드셨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나가라.”
방에 있던 사람들이 나갔다.
나가는 것을 나는 봤다.
그때도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앓는 사람은 사람이 많으면 시끄러워한다. 나도 열이 났을 때 어머니 말고 다 나가라고 했다.
”…음식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오너라.”
나는 접시를 들고 들어갔다.
붙잡으셨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처음 얼마간은 무엇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다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러는 법이 없습니다.
저는 어디로 갑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께 청하십시오. 청하시면 주실 것입니다.
그 말을 왜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알겠다.
그것 말고 붙잡을 것이 없었다.
큰오라비는 아무 대답도 안 하셨다.
힘이 세셨다.
여기까지 쓴다.
끝나고 나서 큰오라비가 일어나 앉으셨다.
나를 안 보셨다.
”…일어나 가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
무엇이라고 질렀는지도 다 기억나지 않는다.
옳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내보내시는 것이 아까 하신 것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그 말은 기억한다. 그것은 소리를 지르면서 나온 말이 아니라 어디선가 나온 말이었다.
종을 부르셨다.
“이 계집을 내보내고 문빗장을 질러라.”
계집이라고 하셨다.
문이 닫혔다.
밖에 서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모른다.
옷이 찢어져 있었다.
색을 넣은 옷이다.
나는 그것을 보다가 손으로 더 찢었다.
왜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다.
옆에 재가 있었다. 아침에 불을 땐 자리였다.
그것을 집어서 머리에 얹었다.
손을 머리에 얹고 걸었다.
울면서 걸었다.
크게 울었다.
사람들이 봤다.
압살롬 오라비 집으로 갔다.
내 방으로 안 갔다.
왜 그리로 갔는지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다. 발이 그리로 갔다.
오라비가 마당에 나오셨다.
나를 보시고 아무 말도 안 하셨다.
한참 보시다가 물으셨다.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라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네 오라비다.”
”…”
“이제 잠잠히 있어라. 이 일로 근심하지 마라.”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날 저녁에 오라비가 방을 하나 내주셨다.
며칠을 나는 아무것도 못 했다.
먹은 것을 토했다.
밤에 자다가 깨서 앉아 있었다.
낮에 자고 밤에 깼다.
종이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히려고 했는데 나는 안 갈아입었다.
찢어진 것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닷새쯤 지나서 갈아입었다.
몸에서 냄새가 나서 갈아입었다.
갈아입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고 나서 처음으로 셈이 됐다.
하나.
나는 이제 시집을 못 간다.
둘.
법이 있다.
이런 일이 있으면 그 남자가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 하고, 평생 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법이다.
궁의 딸들은 그런 것을 배운다. 열둘쯤에 배운다. 혼인할 때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를 배운다.
그러니 법대로 하면 나는 큰오라비의 아내가 된다.
그것이 좋은가.
좋지 않다.
그런데 법대로 안 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셋.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남매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법도 있다.
그러면 두 법이 어긋난다.
어긋나면 누가 정하는가.
아버지가 정하신다.
넷.
그날 내가 아버지께 청하시라고 말한 것은, 청하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무서운 말이었다.
이 궁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
무엇이 되고 무엇이 안 되는지 아무도 정해놓지 않았다.
그래서 열넷짜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섯.
큰오라비는 그 법을 모르셨다.
배운 적이 없으시다.
궁의 아들들은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다.
들에서 나서 여기 오셨는데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다.
옷 입는 법도 걷는 법도 아무도 안 가르쳤다.
배운 것은 딸들뿐이다.
딸은 시집을 보내야 하니까 가르친다.
아들은 안 보내니까 안 가르친다.
거기까지 세고 나서 나는 한참 앉아 있었다.
세었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들으셨다고 했다.
심히 노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종에게서 들었다.
기다렸다.
부르실 줄 알았다.
부르셔서 무엇을 물으시거나, 무엇을 정하시거나, 하다못해 한 번 보시기라도 할 줄 알았다.
닷새를 기다렸다.
열흘을 기다렸다.
한 달을 기다렸다.
안 오셨다.
부르지도 않으셨다.
어머니도 안 오셨다.
그술에서 오신 분이시다.
친정이 멀다.
여기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두 달쯤 지나서 압살롬 오라비가 방에 들어오셨다.
한참 앉아 계시다가 이렇게 물으셨다.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이 없으시더냐.”
”…없으셨습니다.”
”…”
“심히 노하셨다고만 들었습니다.”
오라비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나가시면서 문간에서 한 번 돌아보셨다.
그 얼굴을 나는 기억한다.
화가 나신 얼굴이 아니었다.
정하신 얼굴이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아무 일도 없었다.
큰오라비는 그대로 계셨다.
궁 안에 계시고, 낮에 뜰에 앉아 계시고, 저녁에 사람을 부르신다.
나는 오라비 집에 있었다.
밖에 안 나갔다.
색을 넣은 옷을 다시 지어 입을 수 있었다.
값이 나가는 옷이지만 왕의 딸이 청하면 지어준다.
안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