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밧세바 (2부) · 53 / 117
49장 — 해석
예루살렘. 다윗이 마흔여덟 살이던 해. 아히도벨 예순하나.
기록 사이의 빈칸 · 사무엘하 12장 24–25절–15장 12절 사이에서 확장
일곱 해가 지났다.
이 성에 온 것이 쉰하나 때였다.
지금 예순하나다.
직함은 있다. 하는 일이 정해진 것이 없다.
방 둘 있는 집이 있고, 아침마다 궁 안뜰에 나가 앉아 있고, 왕이 부르면 간다.
부르시는 것은 자주 있다.
부르시면 물으신다. 어느 성읍이 세를 안 내는데 왜 그런지, 북쪽에서 온 자가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했는지.
답하면 고개를 끄덕이시고 나가라 하신다.
물으시는 것이 늘 그런 것이다.
성읍과 세와 밖에서 온 자다.
안의 일은 물으신 적이 없다.
왕자들 일을 물으신 적이 없다. 집안 일을 물으신 적이 없다.
열 해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열 해 동안 틀린 것이 두 번이었다.
두 번 다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안의 일은 안 물으신다.
처음 두 해는 그것을 셈해봤다.
무엇이 모자란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세 해째부터는 안 했다.
셈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는 자리를 주고 쓰지 않는 데다.
준 자리에 무엇을 넣을지는 주신 분이 정한다.
넣으려면 그분이 넣어야 한다.
넣어달라고 말할 자리가 나에게 없다.
그것이 이 성의 방식이었다.
길로에서는 몰랐다.
손녀가 열흘에 한 번씩 온다.
궁에서 나올 수 있는 명분이 있다. 친정에 아이를 보이러 온다고 한다.
와서 안뜰에 앉는다.
내가 묻는다.
“요새 무슨 얘기가 도느냐.”
세 해 전부터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전 세 해는 안 물었다.
궁에 들어간 아이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물어보니 나왔다.
처음에 나온 것이 상 나가는 순서였다.
아침에 부엌에서 상이 나가는데 순서가 정해져 있고, 그 순서가 서열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일곱 해 동안 나는 궁 안뜰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봤다.
누가 누구에게 인사하는지, 누가 먼저 지나가는지, 누가 문 앞에서 기다리는지.
그것으로 서열을 읽으려고 했다.
읽히지 않았다.
인사는 다들 한다. 먼저 지나가는 것은 그날 급한 사람이다.
부엌에서 상이 나가는 것을 나는 볼 수가 없었다.
궁 안뜰에 앉은 자는 부엌에 못 들어간다.
손녀는 들어간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아이에게서 듣는다.
듣는 것을 나는 정리한다.
정리하는 방식은 마흔 해 동안 같았다.
같은 이야기를 셋에게서 들으면 어긋나는 데가 나온다.
어긋난 데가 어느 쪽으로 어긋나는지를 보면, 누가 무엇을 부풀리는지 나온다.
부풀리는 방향을 보면 그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온다.
길로에서 그것으로 마흔 해를 살았다.
여기서도 그것을 한다.
지난가을에 손녀가 이런 것을 옮겼다.
성벽 어느 구간을 고치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요압이 정하고 두로 목수들과 이야기를 다 끝낸 뒤에 왕께 아뢰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정리했다.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요압이 정하고 요압이 마무리했다.
그러면 왕은 무엇을 하시는가.
아무것도 안 하신다.
이것이 이 성의 구조다.
랍바 이후로 왕이 원정에 안 나가신다.
여섯 해째다.
나가지 않으시니 요압이 나간다.
요압이 나가면 요압이 정한다.
정하고 돌아와서 아뢴다.
아뢰는 것은 보고지 결정이 아니다.
그러니 결정이 밖에서 이루어지고 안에서 확인된다.
이것이 계속되면 어떻게 되는가.
십 년이면 군이 요압의 것이 된다.
이십 년이면 왕은 안에만 계신다.
그러면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어디를 보는가.
나는 거기까지 정리했다.
정리하고 나서 손녀에게 말했다.
“이 성은 밖에서 정하고 안에서 아뢴다.”
”…예.”
“그러면 안에 계신 분은 무엇을 하시느냐.”
”…”
“셈해보아라.”
손녀가 잠깐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십니다.”
“그렇다.”
나는 거기서 그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화를 내셨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뭐라고.”
“일이 잘된 것인데 화를 내셨습니다.”
”…”
“며칠 갔습니다.”
나는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떻게 아느냐.”
손녀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이렇게만 말했다.
”…들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어디서 들은 것인지 묻지 않았다.
물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화를 내셨다고.”
“예.”
”…일이 잘됐는데.”
“예.”
”…무엇 때문에 화를 내셨다더냐.”
손녀가 이렇게 말했다.
”…모르셨다는 것 때문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그것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정리한 것은 구조였다.
밖에서 정하고 안에서 아뢴다. 십 년이면 군이 요압의 것이 된다.
그것은 맞다.
그런데 손녀가 가져온 것은 다른 것이다.
그분이 무엇에 화를 내시는가.
그것은 구조가 아니다.
사람이다.
나는 그날 밤 안뜰에 오래 앉아 있었다.
마흔 해 동안 나는 판을 읽었다.
마을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성읍이 왕에게 무엇을 하는지, 지파가 언제 돌아서는지.
읽으면 대개 맞았다.
그것은 여럿을 읽는 것이다.
여럿은 평균이 있다.
평균은 셈이 된다.
한 사람은 셈이 안 된다.
그일라에서도 그랬다.
나는 성읍이 그를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맞았다.
그런데 그가 그날 저녁에 짐을 싸게 한 것은 내 말 때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였을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알 방법이 없었다.
수풀에서 나흘을 봤을 때도 그랬다.
조 나누기가 맞았고 보초 자리가 맞았고 마지막에 받는 것이 맞았다.
다친 자를 이틀 기다렸다가 넷이 지고 옮긴 것은 안 맞았다.
한 번 보여주면 될 것을 왜 매번 하는가.
나는 그것에 이름을 못 붙였다.
마흔여섯 해가 지났다.
아직 못 붙였다.
그런데 저 아이는 그것을 그냥 안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옆에 있어서 안다.
나는 그날 밤에 그것을 알았다.
알고 나서 잠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저 아이를 마당에 앉혔다.
여섯 살 때부터 앉혀놓고 손님 말을 옮기게 했다.
손님이 가면 물었다. 뭐라고 하더냐.
그것을 열두 해 했다.
그때 나는 그 아이가 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 저 아이는 내가 못 가는 데 있다.
부엌에 들어가고, 밤에 무엇을 듣고, 그것을 나에게 절반만 옮긴다.
절반만 옮기는 것을 나는 안다.
묻지 않는다.
물으면 그 절반도 안 온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손녀에게 하나를 일렀다.
“보아라.”
”…예.”
“그분이 화를 내시는 때를 세어두어라.”
”…”
“무엇 때문에 내시는지가 아니라, 언제 내시는지를 세어라.”
손녀가 나를 봤다.
”…무엇이 다릅니까.”
나는 대답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그분도 모르실 것이다.”
”…”
“언제인지는 네가 셀 수 있다.”
손녀가 고개를 숙였다.
”…예.”
그 아이가 가고 나서 나는 안뜰에 앉아 있었다.
일곱 해 동안 나는 여기 앉아 있었다.
앉아서 사람이 오가는 것을 봤다.
읽히는 것이 있고 안 읽히는 것이 있었다.
안 읽히는 쪽이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