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밧세바 (2부) · 52 / 117
48장 — 찾아오는 밤
예루살렘. 다윗이 마흔일곱 살이던 해. 밧세바 스물넷.
기록 사이의 빈칸 · 사무엘하 12장 24–25절 이후의 궁정 생활에서 확장
오시는 밤이 있고 안 오시는 밤이 있다.
정해진 것은 없다.
한 달에 두어 번일 때가 있고, 두 달 동안 없을 때가 있다.
원정이 나가 있으면 없다. 성에 계셔도 없을 때가 있다.
오시기 전에 기별이 온다.
시종이 와서 오늘 오신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씻고 옷을 갈아입고 등불을 갈아놓는다.
시므아를 옆방으로 보낸다. 종이 데리고 잔다.
처음 한동안은 그 기별이 오면 손이 떨렸다.
지금은 안 떨린다.
떨리지 않게 되는 데 두 해가 걸렸다.
오시면 늦게 오신다.
낮에 오시는 일은 없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시면 나는 일어서서 절을 한다.
앉으라고 하시면 앉는다.
그다음 일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쓴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다.
다만 하나는 적어둔다.
그분은 급하지 않으시다.
들어오시면 앉아서 한참 계신다.
물을 드시고, 등불을 보시고, 그러다 말씀을 시작하신다.
말씀을 하신다.
나는 그것이 이상했다.
이 성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
궁에서 나를 부르는 말이 생긴 것이 작년이다. 시므아 도련님 어머니라고 한다.
그것이 부르는 말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야기를 하신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굴 이야기였다.
위에서 물이 스몄다고 하셨다. 받아서 하루 두면 먹을 만했다고 하셨다.
사백 명이 있었는데 빚진 자와 원통한 자가 왔다고 하셨다.
나는 듣고 있었다.
또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성문이 있는 성읍은 왕에게 등을 돌리지 못한다고.
밤에 짐을 싸게 했고 이튿날 육백이 나갔다고.
성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이야기를 어디서 얻으셨는지 나는 안다.
그일라다.
그것을 말씀드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계셨다고, 그 말씀을 하신 것이 제 할아버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그분이 그것을 아시게 된다.
아시게 되면 그다음부터 그 이야기를 안 하실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시글락 이야기도 하셨다.
거기서 일 년 넉 달을 사셨다고 했다.
남쪽으로 나가서 치고 돌아와서는 유다를 쳤다고 보고하셨다고 했다.
산 자를 남기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잠깐 아무 말도 안 하셨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안 하신다.
왜 나에게 하시는지 나는 그날 밤에 생각해봤다.
답이 하나 나왔다.
내가 옮길 데가 없기 때문이다.
궁의 여자들은 서로 이야기한다.
이스르엘에서 오신 분과 갈멜에서 오신 분은 광야를 함께 겪으신 분들이다. 그분들끼리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그술에서 오신 분은 친정 사람이 붙어 있다.
나는 아무도 없다.
내가 무슨 말을 옮기려면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없다.
그러니 나에게 하신 말은 나에게서 끝난다.
그것이 편하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나서 며칠 마음이 안 좋았다.
마음이 안 좋고 나서,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편한 데가 있으면 자주 오신다.
자주 오시면 아이가 는다.
아이가 늘면 나는 여기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마음이 놓이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이제 안다.
셈이 맞을 때 놓인다.
하지 않으시는 이야기가 있다.
두 해 동안 세어보니 셋이다.
하나.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한 번도 안 하셨다.
옥상 이야기도 안 하시고, 그 밤에 사람 셋이 왔다는 것도 안 하시고, 그 뒤 두 달도 안 하신다.
둘. 그 사람 이야기.
내 남편이었던 사람 이야기다.
이름도 안 나오고 랍바도 안 나온다.
한번은 랍바 이야기가 나올 뻔한 적이 있다.
암몬 쪽 이야기를 하시다가 성벽 이야기가 나왔다.
물이 성 안에 있으면 오래 걸린다고 하시다가, 거기서 말을 돌리셨다.
돌리시는 것을 나는 봤다.
셋. 첫아이.
이레를 사셨던 그 아이 말이다.
한 번도 안 하셨다.
나는 그것이 제일 오래 걸렸다.
말씀하시기를 기다렸다.
한 해를 기다렸다.
안 하셨다.
두 해째에 나는 기다리기를 그만두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레 동안 그분은 방에서 땅에 엎드려 계셨다고 들었다. 안 드시고 안 씻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죽은 날 씻고 드셨다고 했다.
부엌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힘이 없었다.
지금은 안다.
그분은 지나간 것을 붙들지 않으신다.
붙들면 오늘 못 사신다고 여기신다.
그것이 이십 년 동안 그분을 살렸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붙들고 있다.
첫아이 얼굴을 나는 기억한다.
이레였는데 기억한다.
그 사람 얼굴도 기억한다.
두 해를 같이 살았고 그중 절반은 없었는데, 기억한다.
나는 붙드는 사람이고 그분은 놓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이야기는 영영 안 나올 것이다.
작년 가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밤에 오셨는데 기분이 안 좋으셨다.
무슨 일인지 나는 몰랐다.
한참 앉아 계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만 몰랐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말씀 안 하셨다.
나중에 부엌에서 들었다.
성벽 어느 구간을 고치는 일이 있었는데, 요압 장군이 정하시고 두로에서 온 목수들과 이야기를 다 끝내신 뒤에 왕께 아뢰었다고 했다.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나만 몰랐다고 하셨다.
나는 그것을 그날 이후로 여러 번 생각했다.
일이 잘못되면 화를 내신다.
그리고 그 화는 하루면 지나간다.
그런데 이번 것은 하루가 지나도 안 지나갔다.
며칠 뒤에도 그 이야기가 나왔다.
같은 말씀이었다.
나만 몰랐네.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모르셨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그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어디에도 옮기지 않았다.
부엌 이야기는 할아버지께 옮긴다.
이것은 못 옮긴다.
침소 이야기는 옮기는 것이 아니다.
옮기면 그날로 끝이다.
그러니 이것은 나만 안다.
세 해 동안 나는 두 가지를 모으고 있었다.
부엌에서 듣는 것과, 밤에 듣는 것.
앞의 것은 나눌 수 있다.
뒤의 것은 못 나눈다.
그래서 뒤의 것이 더 쌓인다.
쌓이는데 쓸 데가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