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 다윗 · 17 / 117
15장 — 기브온 못가
기브온. 여름. 다윗이 서른한 살이던 해. 헤브론에서 두 해째.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2장 8–32절
길보아 뒤로 나라가 둘이 됐다.
남쪽은 헤브론이었다.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유다 한 지파였다.
북쪽은 마하나임이었다. 요단을 건너간 자리다. 원래 있던 성읍들은 블레셋이 차지해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거기서 아브넬이 사울왕의 남은 아들 하나를 왕으로 세웠다.
이름이 이스보셋이었다. 길보아에서 형 셋이 죽고 그만 남았다. 싸움에 나간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세운 것이 아브넬이니, 북쪽은 아브넬이었다.
아브넬은 사울왕의 사촌이었다.
이십 년을 그 군대를 굴렸다. 사울왕이 왕이 되기 전부터 옆에 있었고, 죽고 나서도 그 집을 붙들고 있었다.
이스보셋은 이름이고, 그 이름 뒤에 그가 서 있었다.
그해 여름에 아브넬이 기브온까지 내려왔다.
기브온은 베냐민 땅이었다. 사울왕의 본거지 남쪽 끝이다. 거기서 더 내려오면 유다였다.
내려왔다는 것은 밀어보겠다는 뜻이었다.
요압은 막으러 올라갔다.
헤브론을 나설 때 왕은 성문까지 나왔다.
거기까지였다.
“몇을 데려가나.”
“육백입니다.”
”…저쪽은.”
“천오백에서 이천 사이일 겁니다. 베냐민이 다 붙었습니다.”
”…”
“기브온까지 내려왔습니다. 거기서 더 내려오면 유다입니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게.”
아사헬이 걸으면서 물었다.
“형님, 왕은 안 오십니까.”
“안 오신다.”
”…”
“헤브론에 남으신다.”
“왜요.”
요압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비새가 대신 말했다.
“왕이 나가서 잘못되면 나라가 없어진다. 유다가 왕 하나로 서 있다.”
”…예.”
“그리고 우리가 있잖으냐.”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정한 사람이 없었다. 헤브론에서 왕이 된 지 두 해가 되도록, 나가는 것은 늘 요압이었고 왕은 늘 남았다.
한 번도 왕이 나가겠다고 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요압이 나가시라고 한 적이 없었다.
기브온까지 이틀이었다.
못은 사람이 판 것이었다. 바위를 둥글게 파 내려간 것인데 위에서 보면 아가리가 열 걸음쯤 됐다. 안쪽 벽을 따라 계단이 나선으로 돌아 내려갔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누가 언제 팠는지는 기브온 사람들도 몰랐다.
요압은 이편에 앉았다. 아브넬은 저편에 앉았다.
가운데 그 구멍이 있었다.
수는 요압이 먼저 셌다.
저쪽 능선에 대열이 셋이었다. 하나에 오백씩 잡으면 천오백, 뒤쪽에 더 있으면 이천이었다.
이쪽은 육백이었다.
붙으면 진다.
붙어서 이기려면 지형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없었다. 못을 낀 평평한 자리였다.
아브넬도 셌을 것이었다.
이쪽 육백을 보고 저쪽이 계산한 것은 달랐다. 저쪽은 이겨도 남는 것이 없었다. 유다는 헤브론에 있고 여기서 육백을 이겨도 헤브론까지는 멀었다.
그리고 이기는 데도 값이 든다.
양쪽 다 그날 붙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넬이 그것을 꺼냈다.
“청년들을 일으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
요압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전면으로 붙지 말고 몇으로 정하자는 것이었다. 이긴 쪽이 그날 땅을 갖고 진 쪽이 물러난다. 그렇게 하면 양쪽 다 백 명 넘게 죽는 일이 없다.
옛날부터 있던 방식이었다.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이 걸었던 것도 그것이었다.
“일어나게 하자.”
열둘씩으로 정했다.
아사헬이 손을 들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앉아라.”
“형님.”
“열둘은 정해져 있다.”
거짓말이었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
스물넷이 못가로 나왔다.
마주 서서 절을 하고, 서로에게 걸어갔다.
각각 상대의 머리를 왼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동시였다.
스물넷이 다 엎드러졌다. 하나도 서 있지 않았다.
요압은 그것을 봤다.
이런 겨룸은 몇이 남는다. 남은 수로 어느 쪽이 이겼는지가 나오고, 나오면 그날은 끝난다.
남은 자가 없었다.
이긴 쪽이 없으니 물러날 쪽도 없었다.
양쪽에서 동시에 소리가 났다.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물어봐도 다 다르게 말했다.
붙었다.
정오 전이었고 해 질 때까지 갔다.
이겼다.
요압은 그날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는지 나중에 여러 번 생각했다.
수는 저쪽이 두 배가 넘었다. 그런데 저쪽은 베냐민, 에브라임, 길르앗이 섞여 있었고 서로 신호가 달랐다. 이쪽은 육백이 삼 년을 같이 굴러다닌 자들이었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하니 저쪽은 대열을 다시 못 세웠다.
오후 중턱에 무너졌다.
무너진 뒤가 길었다.
싸움에서 죽는 것은 붙어 있을 때가 아니다. 등을 보이고 달아날 때다.
달아나는 자는 방패를 버린다. 버리고 뛰다가 넘어지고, 넘어진 자를 뒤에서 밟고 지나간 다음에 뒤따라오는 자가 찌른다.
그날 저쪽에서 죽은 삼백육십 중에 절반 넘는 수가 그렇게 죽었다.
요압은 오른쪽에서 밀어 올리고 있었다.
아사헬이 시야에서 빠져나간 것을 그는 나중에 알았다.
멀리서 봤다.
북쪽 길로 곧게 뛰어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좌우로 꺾지 않았다.
쫓는 자는 보통 비스듬히 간다. 앞을 가로막아야 잡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게 갔다. 그냥 앞사람만 보고 갔다.
요압은 그 뛰는 모양을 알아봤다.
앞에 가는 자가 두 번 돌아봤다.
두 번째로 돌아봤을 때 요압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았다.
키가 컸다. 창을 들고 있었다. 아브넬이었다.
그 순간에 그는 알았다.
이 아이는 갑옷을 벗기러 간 것이 아니다.
오늘 열둘이 다 죽어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저쪽 총사령관이 혼자 달아나고 있다. 저 사람 하나면 오늘 있었던 모든 것이 정해진다.
그리고 아사헬이 가진 것은 뛰는 것 하나였다.
형은 편성을 하고 둘째 형은 앞에 선다. 그에게는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이 들판에서 아브넬은 그가 잡을 수 있는데 남들은 못 잡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거리가 멀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브넬이 멈춰 서서 뭐라고 말했다. 손짓을 했다. 옆쪽을 가리켰다.
아사헬이 다시 뛰었다.
아브넬이 또 멈춰 섰다. 이번에는 더 길게 말했다. 두 손을 다 썼다.
아사헬이 다시 뛰었다.
요압은 소리를 질렀다.
거리가 반 리는 됐다. 사이에 사람들이 있었고 소리가 많았다.
닿을 리가 없었다.
그는 뛰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짧았다.
아브넬이 창을 뒤로 뺐다. 찌른 것이 아니라 뒤로 밀었다.
아사헬이 멈췄다.
한참 서 있다가 무릎이 꺾였다.
요압이 그 자리에 이르렀을 때는 사람이 열댓 서 있었다.
쫓던 자들이 그 자리에 오면 서서 봤다. 그러고 나서 걸어갔다. 뛰던 자들도 그 앞에서는 걸었다.
아무도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
창은 아직 박혀 있었다.
자루가 앞에 있고 날이 뒤에 있었다.
날이 아니었다. 자루 끝이었다.
멈추게 하려고 뒤로 민 것이 등으로 나왔다.
나중에 그 자리에 있던 자가 말해줬다.
말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첫 번째는 이랬다고 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 소년 하나를 잡고 그 갑옷을 벗겨 가라.
두 번째는 이랬다고 했다.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어찌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하겠느냐. 그러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요압은 그 말을 두 번 물었다.
“내 이름을 댔다고.”
“예.”
“내 이름을 대면서 죽였다고.”
”…예.”
아비새가 뒤늦게 왔다.
와서 무릎을 꿇고 아사헬의 얼굴을 만졌다. 그러고 나서 일어섰다. 일어서서 북쪽을 봤다.
“어디로 갔습니까.”
”…”
“형님, 어디로 갔냐고요.”
“암마 쪽이다.”
아비새가 뛰기 시작했다.
요압도 뛰었다.
해 질 때 그들은 암마 산 아래에 이르렀다.
언덕 위에 저쪽이 모여 있었다. 흩어졌던 베냐민 사람들이 거기서 다시 뭉쳤다. 창이 위를 향해 서 있었다.
이백이나 삼백쯤 되어 보였다.
언덕이 가팔랐다.
요압은 아래에 섰다.
이쪽은 하루 종일 싸우고 반나절을 쫓아온 자들이었다. 사백쯤 붙어 있었고 나머지는 뒤에 처져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창을 던지면 아래는 막을 것이 없다.
위에서 소리가 내려왔다.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요압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 형제 쫓기를 그치라 하겠느냐.”
형제라고 했다.
요압은 그 말을 들었다.
그가 오늘 죽인 자가 요압의 형제였다. 죽이면서 요압의 이름을 댔다. 그리고 지금 형제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그는 언덕으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두 걸음쯤 갔을 때 아비새가 팔을 잡았다.
“형님.”
“놔라.”
“위에 삼백입니다.”
“놓으라니까.”
“열 걸음 올라가면 창이 옵니다. 스무 걸음이면 저희가 다 죽습니다.”
요압은 팔을 뺐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세 걸음이었다.
뒤를 돌아봤을 때 따라 올라오는 자가 없었다.
부하들이 아래에 서 있었다. 창을 들고 있었고, 그를 보고 있었고, 아무도 발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 종일 싸웠고 이겼고 해가 지고 있었고 여기는 저쪽 땅이었다.
요압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참이었다.
위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내려왔다.
나팔 부는 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팔을 받아 들고, 다시 건네주면서 말했다.
“불어라.”
그리고 덧붙였다.
“네가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아침까지 쫓았을 것이다.”
위에서 들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팔이 울렸다.
사람들이 멈췄다. 언덕 위에서 대열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저쪽이 북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요압은 그것을 보고 서 있었다.
밤에 세었다.
저쪽은 나중에 들은 수가 삼백육십이었다.
이쪽은 열아홉이었다.
수를 적는 자가 스물이라고 적으려 했다.
“열아홉이다.”
”…아사헬 님이—”
“열아홉과 아사헬이라고 적어라.”
밤에 걸었다.
아사헬을 메고 베들레헴까지 갔다. 넷이 번갈아 멨고 요압도 멨고 아비새도 멨다.
가는 길에 아비새가 한 번 말했다.
“오늘 올라갔어야 합니다.”
”…”
“올라갔어야 했습니다, 형님.”
요압은 대답하지 않았다.
베들레헴에 닿은 것은 밤중이었다.
아버지 묘가 있는 자리에 묻었다.
묻기 전에 창을 뽑았다. 뒤로 당기니 뽑혔다. 자루 끝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요압은 그 창을 버리지 않았다.
묻고 나서 그는 앉지 않았다.
“간다.”
”…지금요.”
“간다.”
헤브론까지 밤새 걸었다. 새벽에 닿았다.
성문 앞에서 왕이 나왔다.
기별을 받고 나온 것이었다.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다.
요압은 보고했다.
“기브온에서 붙었습니다. 이겼습니다.”
”…”
“저쪽이 삼백육십입니다. 이쪽은 열아홉과 아사헬입니다.”
왕이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렇게 물었다.
“아브넬은.”
요압은 왕을 봤다.
“살았습니다.”
”…”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올라갔나.”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요압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엇을 잘했습니까.”
왕이 그를 봤다.
”…”
“이긴 것 말입니까, 올라가지 않은 것 말입니까.”
“요압.”
“예.”
”…자게.”
왕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비새가 옆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압은 성문 밖으로 나갔다.
창을 들고 나갔다. 그것은 자기 창이 아니었다.
날이 밝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