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 다윗 · 16 / 117

14장 — 길보아

시글락. 늦봄. 다윗이 서른 살이던 해. 도망한 지 여덟 해.

성경의 기록 · 사무엘상 27–31장 · 사무엘하 1장 1절–2장 4절

시글락은 남쪽 끝이었다.

유다 산지를 내려가 마른 땅이 시작되는 자리다.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준 성읍이었다.

준 것이 아니라 맡긴 것이었다. 국경 밖에 사람을 세워두면 남쪽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그 사람이 먼저 맞는다.

그것을 알면서 받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십 몇 년이 걸렸다.

아비아달은 그 십 몇 년을 다 함께 있었다.

굴에 있었고, 수풀에 있었고, 십과 마온과 엔게디에 있었다. 옮길 때마다 에봇을 싸서 지고 갔다. 스무 번쯤 옮겼다.

옮길 때마다 사람이 줄지 않고 늘었다는 것이 이상했다.

블레셋으로 넘어가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할 말이 없었다.

유다 산지에서는 더 있을 데가 없었다. 십 사람들이 두 번 밀고했고, 마온에서는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었다가 겨우 빠졌다.

넘어가면 왕이 못 쫓아온다.

그것이 유일한 계산이었다.

일 년 넉 달을 살았다.

아비아달은 그 성읍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블레셋 땅이었다. 여기서 제단을 쌓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고,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에봇을 궤짝에 넣어두었다.

가끔 꺼내서 먼지를 털었다.

남쪽으로 나가서 치고 돌아오는 일이 계속됐다.

돌아오면 가드로 노획물 일부를 보냈다. 어디를 쳤는지 물으면 유다 남쪽을 쳤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아말렉과 그술과 기르스 사람들을 쳤다.

산 자를 남기지 않았다. 남기면 가드에 가서 말하기 때문이었다.

아비아달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고,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었다.

봄에 블레셋이 소집을 걸었다.

북쪽으로 간다고 했다. 이스르엘 골짜기라고 했다.

가드 왕이 그더러도 오라고 했다.

육백이 갔다.

아비아달은 시글락에 남았다. 여자들과 아이들과 함께 남았다.

떠나는 것을 성문에서 봤다.

블레셋 대열 맨 뒤에 붙어서 갔다. 앞에 다섯 방백의 군대가 있고 그 뒤에 육백이 있었다.

사흘 뒤에 돌아왔다.

돌려보내졌다고 했다.

블레셋 방백들이 반대했다고 했다. 싸움이 붙었을 때 저 사람들이 등을 돌리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고. 저 사람이 옛 주인의 목으로 화해하려 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고.

가드 왕이 미안해했다고 했다.

아비아달은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백들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옳은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돌아와 보니 시글락이 타 있었다.

아말렉이 왔다 갔다. 성읍이 비어 있는 것을 알고 왔다.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다 끌고 갔다. 여자와 아이들과 가축을 다 끌고 갔다.

육백이 그 자리에 앉아서 울었다.

울 힘이 없어질 때까지 울었다고 나중에 사람들이 말했다.

그리고 돌을 들자는 말이 나왔다.

아비아달은 그날 처음으로 궤짝을 열었다.

일 년 넉 달 만이었다.

“에봇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는 에봇을 걸치고 나갔다.

마당 가운데에 다윗이 서 있었다. 옷이 찢겨 있었고 얼굴에 흙이 묻어 있었다.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고 몇은 아직 돌을 들고 있었다.

서른이었다.

아비아달이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스물둘이었다. 그때는 얼굴이 붉었고 걸음이 빨랐다.

지금은 눈가에 금이 잡혀 있었다. 볕에 오래 있으면 그렇게 된다. 관자놀이 위쪽 머리가 성글어서 이마가 넓어 보였다.

여덟 해 동안 스무 번쯤 옮겼다. 옮길 때마다 그 얼굴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는데, 매일 보니 언제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물어봐 주게.”

”…무엇을.”

“내가 이 무리를 쫓아가면 따라잡겠는가.”

아비아달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두 개가 손에 닿았다. 하나는 매끄럽고 하나는 거칠었다.

흔들었다.

일 년 넉 달 동안 그가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하나를 꺼냈다.

매끄러운 쪽이었다.

“쫓아가십시오. 반드시 따라잡고, 다 도로 찾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돌을 들고 있던 자들이 돌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그날 밤에 나갔다.

사흘 만에 돌아왔다. 다 찾아왔다. 낙타와 양과 소까지 끌고 왔다.

돌아온 날 저녁에 노획물을 나누는 문제로 말이 있었다.

지쳐서 시내에 남았던 이백이 있었다. 따라간 사백이 그 이백에게는 안 준다고 했다.

다윗이 정했다.

“싸움에 나간 자나 소유물 곁에 남은 자나 같이 나눈다.”

그리고 나머지를 따로 실었다.

아비아달은 그것을 봤다.

유다 남쪽 성읍들이었다. 벧엘, 라못, 얏딜, 아로엘, 십못, 에스드모아, 헤브론.

십 몇 년 동안 그들이 굶으며 지나다닌 성읍들이었다.

곡식을 얻은 데도 있고, 문을 안 열어준 데도 있고, 밀고한 데도 있었다.

전부 보냈다.

“밀고한 데도 보내십니까.”

물은 것은 아비아달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자였다.

“보낸다.”

”…”

“여호와께서 주신 것을 나눈다고 전해라.”

닷새 뒤에 사람이 왔다.

북쪽에서 온 자였다. 사흘을 걸어왔다고 했다. 옷이 찢겨 있었고 머리에 흙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도망하였습니다.”

”…”

“백성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가 많고—”

”…”

“사울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아비아달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울왕이 죽었다.

그 이름을 그는 십 몇 년 동안 소리 내어 말한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말할 때 그는 자리를 피했다.

놉에서 여든다섯이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와 형들이었다. 성읍에 여자와 아이와 나귀와 양까지 다 쳤다.

그 사람이 죽었다.

그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몰랐다.

기쁠 줄 알았다.

십 몇 년 동안 여러 번 그 순간을 생각했었다. 생각할 때마다 무언가가 풀릴 것 같았다.

풀리지 않았다.

가슴 안에 있던 것이 그대로 있었다. 죽었다는 소식이 그것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는 갚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것을 그날 알았다.

나중에 자세한 것이 들어왔다.

길보아 산이었다. 평야에서 밀려서 산으로 올라갔는데, 산으로 올라가면 뒤가 없었다.

왕자 셋이 왕 곁에서 죽었다고 했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였다.

왕의 아들은 왕 옆에 선다. 그것이 그 자리다. 그래서 셋이 다 죽었다.

왕은 활에 맞았다고 했다.

무기 든 자에게 자기를 찌르라고 했는데 그자가 못 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칼 위에 엎드러졌다고 했다.

무기 든 자도 따라 엎드러졌다고 했다.

이튿날 블레셋이 시체를 찾아냈다고 했다.

목을 자르고, 갑옷을 벗겨 신전에 두고, 몸을 벧산 성벽에 못 박았다고 했다.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밤에 가서 떼어 왔다고 했다. 사울왕이 옛날에 그 성읍을 구해준 일이 있어서 그랬다고 했다.

북쪽 절반이 그날 없어졌다.

골짜기 저편 사람들과 요단 건너편 사람들이 성읍을 버리고 도망했다고 했다. 블레셋이 들어가 거기 살고 있다고 했다.

소식을 가져온 자는 아말렉 사람이었다.

블레셋 진영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싸움이 끝난 자리를 돌아다니며 시체에서 물건을 벗기는 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였다.

그가 자루에서 두 가지를 꺼냈다.

머리에 쓰는 테였다. 금이었고 한쪽이 눌려 있었다. 그리고 팔에 끼는 고리였다.

시체는 블레셋이 가져갔다. 목은 잘려 신전으로 갔고 몸은 벧산 성벽에 매달렸다. 이 사람이 가져온 것은 벗겨낸 것 두 개뿐이었다.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를 죽였습니다. 그가 살 수 없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비아달은 그 자리에 있었다.

다윗이 그 사람을 오래 봤다.

“너는 어디 사람이냐.”

”…아말렉 사람입니다. 이 땅에 우거하는—”

“어떻게 그를 죽였느냐.”

”…”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자리에서 죽였다.

아비아달은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죽인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벗겨 온 것을 들고 와서 상을 받으려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은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없는 것을 그 자리에서 처리했다.

그날 저녁에 다윗이 옷을 찢었다.

육백이 다 찢었다. 저녁까지 울고 금식했다.

아비아달도 찢었다.

찢으면서 그는 자기가 무엇 때문에 찢는지 몰랐다.

며칠 뒤에 다윗이 노래를 지었다.

활 노래라고 했다. 유다 자손에게 가르치라고 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사울왕과 요나단이 살아서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들이었으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 노래가 퍼졌다.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유다 성읍마다 그 노래를 알았다.

아비아달은 그것을 들으면서 서 있었다.

노래가 좋았다.

그리고 그 노래를 지은 사람은, 그 왕의 목을 가져온 자를 그 자리에서 죽인 사람이었다.

두 가지가 다 진짜였다.

가을에 다윗이 물었다.

“물어봐 주게.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아비아달은 주머니를 흔들었다.

“올라가십시오.”

“어디로 가리이까.”

이번에는 제비로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었다.

아비아달은 잠깐 있다가 말했다.

”…헤브론입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헤브론은 유다에서 제일 큰 성읍이었다. 그리고 지난봄에 노획물을 보낸 성읍 목록의 마지막에 있었다.

그들은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육백과 그 가족이 다 올라갔다.

유다 사람들이 나와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아비아달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십 몇 년 전에 그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을 부었다.

그는 그 뿔을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성읍에는 어른들이 나와 있었고, 마당에 사람이 가득했고, 기름 냄새가 사흘 갔다고 들었다.

그 성읍은 지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