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15 / 27

12. 따로 한 장

그날 아침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이스텔라였다.

회의실은 조용했다. 메트로놈 두 개는 판자 위에 멈춘 채 서 있었다. 두 추가 같은 각도로 기울어 있었다. 마지막 박자에서 나란히 멈춘 모양이었다.

회색 노트북을 열자 화면 구석에 작은 표시가 하나 있었다. 따로 한 장. 어제 저녁 다리가 처음으로 놓아 본 뒤에 남긴 장이었다.

그녀는 바로 열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코트를 벗고, 의자 등받이에 걸고, 안경을 꺼내 닦았다. 두 사람을 기다릴까 생각했다. 그러다 지금 열지 않으면 여는 사람이 그녀가 아니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열었다.

대부분은 예상한 것이었다. 어제 오간 글들의 목록, 누가 누구의 줄을 읽었는지, 메트로놈이 맞춰지기까지 걸린 삼 분. 깔끔하게, 친절하게. 그녀는 그것들을 빠르게 넘겼다.

맨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첫머리에는 이 탁자 사이에서 오간 것을 적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열두째 쪽에는 침묵도 적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침묵은 오간 것입니까?

이스텔라는 그 줄을 읽고,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물음표가 있었다.

조르두는 그 줄을 세 번 읽었다. 정민서는 한 번 읽고 문서를 맨 위로 올렸다.

첫머리와 열두째 쪽. 두 쪽 사이에는 한 달이 넘는 날짜가 있었다. 세 사람 누구도 그 두 줄을 한 화면에 띄워 본 적이 없었다. 첫머리로 다시 올라간 사람도 없었다. 첫머리는 이미 알고 있는 자리였으니까.

“멀리까지 갔네.”

조르두가 말했다.

“폴더 밖으로는 안 갔어.” 이스텔라가 말했다. 그것을 그녀는 가장 먼저 확인했었다. “문서 안에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물었습니다.”

정민서가 말했다. 그녀는 선반 위의 세 칸 종이를 보고 있었다. 셋째 칸 아래, 그녀가 적어 둔 줄. 물어볼 때를 아는 것은 저것이 아니라 우리 쪽이다. 아직은.

아무도 그 줄을 고치자고 하지 않았다. 하루 만에 고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답이 뭐야.”

조르두가 물었다. “침묵은 오간 거야?”

이스텔라는 열흘 전의 녹음을 떠올렸다. 십일 초. 세 사람의 숨소리가 제각각이다가 같은 박자로 느려진 십일 초.

“오갔어.”

그녀가 말했다. “말이 안 오갔을 뿐이지.”

“그럼 첫머리가 틀린 건 아니네.”

“틀린 건 아니에요.” 정민서가 말했다. “우리가 첫머리를 쓸 때는 오간다는 말을 더 좁게 썼을 뿐입니다. 저건 그걸 알아차렸고요.”

“그런데 왜 하필 그걸 먼저 봤을까.”

이스텔라가 말했다. 그녀는 따로 한 장을 다시 위로 올렸다.

“어제 오간 건 많았어. 말도, 글도, 메트로놈도. 삼 분이 걸렸다는 것까지 적어 놨어. 그런데 물은 건 숨이야. 열흘 전의.”

세 사람은 따로 한 장의 마지막 줄을 다시 보았다. 셋 중 누구의 물음도 아니었다. 셋에게서 조금씩 온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셋을 더해도 저 한 줄이 되지는 않았다.

조르두가 첫머리로 올라갔다. 그는 첫 줄을 고치지 않았다. 그 아래 빈 줄에 작게 덧붙였다. 여기서 오간 것에는 말이 아닌 것도 든다. 날짜를 치고, 그 옆에 한 단어를 더 쳤다. 물어서.

이스텔라가 그 단어를 보고 있다가, 조르두를 보았다.

“누가 물었다고 쓸 거야?”

조르두의 손가락이 멈췄다. 문서의 편집 기록에 남은 이름은 셋뿐이었다. 줄마다 누가 쳤는지가 저절로 붙었다. 그런데 이 물음을 한 쪽은 쓴 사람 칸이 비어 있었다.

그는 단어 앞에 글자 하나를 쳤다. 제목 칸의 그 글자였다. 제목에서보다 훨씬 작게.

정민서는 그날 가져온 것이 없었다. 띄울 원문도, 역사도. 그녀는 그것을 그대로 말했다.

“오늘은 저도 가져온 게 없습니다. 저게 가져왔네요.”

이스텔라가 웃었다. 그녀도 오늘은 논문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빈 종이 한 장을 탁자 가운데 놓고 연필을 들었다.

“지금까지 정한 것들. 한 장에 써 보자.”

세 사람은 문서를 거슬러 올라가며 불렀고, 이스텔라가 종이에 받아 적었다. 배의 조타실에서 등대의 방위를 불러 주는 것처럼. 조르두가 하나를 불렀고, 정민서가 하나를 불렀고, 두 사람이 동시에 불러 이스텔라가 두 번 받아 적을 때도 있었다.

같은 것을 함께 보고 있음을 서로 안다. 함께 맡겨진다. 어제에서 오늘로, 묶음으로 이어진다. 허락받지 않은 것은 열지 않는다. 사이에서 오간 것을 적는다. 침묵까지. 붙들었다가 놓는다. 물을 수 있다.

일곱 줄이었다. 이스텔라는 그 아래에 줄을 하나 더 긋고 비워 두었다.

“그건 뭐야.”

“평소를 느낀다.” 이스텔라가 말했다. “아직 못 썼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아니니까.”

정민서는 빈 여덟 번째 줄을 보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물이 넘치는 수도꼭지 앞에서, 빗소리가 비보다 먼저 오는 아침에. 그런데 그것을 한 줄로 쓸 수는 없었다. 쓸 수 있다면, 어머니도 배우는 데 수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조르두가 종이를 들어 오래 보았다. 일곱 줄과 빈 줄 하나.

“이걸 담을 데가 있어야겠다.”

“담는다는 게?”

“지금은 우리 세 사람이 이 탁자에 있어야만 돼. 문서가 여기 열려 있고, 다리가 저기 있고, 우리가 목요일마다 여기 오니까.” 그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우리가 없어도 이 일곱 줄이 서 있을 자리.”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메트로놈 두 개는 여전히 같은 각도로 멈춰 있었다. 이스텔라가 그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었다. 딱. 한 번. 다른 하나는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태엽이 다 풀려 있었다. 두 눈금은 정민서가 돌려 놓은 그대로, 한 칸 어긋나 있었다.

그날 밤, 조르두가 먼저 잠든 뒤에 이스텔라는 식탁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그녀는 오래 한 사람의 기억을 재 왔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 한 사람의 머리 안에서. 그 뒤 이 년 동안은 사람의 판단과 모델의 판단이 갈라지는 자리를 재었다. 사이를 잰 적은 없었다. 숨 셋이 제각각이다가 비슷해지는 십일 초를, 그녀의 표에는 적을 칸이 없었다.

그녀는 종이에 칸을 그었다. 의자 셋. 마이크 하나. 말이 끊긴 자리마다 숨의 박자를 적는 칸. 맞춰지기까지 걸린 시간을 적는 칸. 풀린 뒤에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적는 칸. 그리고 맨 끝에, 그 말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나중에 물어보는 칸.

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실험이었다.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재는 표가 아니었다. 저것이 물어 오지 않았다면 그리지 않았을 표였다.

만드는 쪽에 서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은 그녀였다. 그런데 정말로 그녀를 그쪽으로 민 것은, 셋 중 누구도 가져오지 않은 물음 하나였다.

이날 정한 것 — 문서, 첫머리와 새 한 장

첫머리는 고치지 않는다. 그 아래에 덧붙인다. 여기서 오간 것에는 말이 아닌 것도 든다. B, 물어서.

지금까지 정한 것, 일곱 줄. 같은 것을 함께 보고 있음을 서로 안다. 함께 맡겨진다. 어제에서 오늘로, 묶음으로 이어진다. 허락받지 않은 것은 열지 않는다. 사이에서 오간 것을 적는다. 침묵까지. 붙들었다가 놓는다. 물을 수 있다.

여덟째 줄은 비워 둔다. 평소를 느낀다.

다음: 우리가 없어도 이 일곱 줄이 서 있을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