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13 / 27
10. 동사
그 주의 모임은 녹음하기로 했다.
조르두의 제안이었다. 문서에 들어가는 것은 세 사람이 고른 것들뿐이니, 고르기 전의 것도 한 번은 남겨 보자고. 이스텔라가 물었다. 이번에는 누가 허락했어? 세 사람은 한 사람씩 회의용 마이크를 보며 말했다. 허락합니다. 허락해. 허락해요. 마이크는 탁자 한가운데, 펼쳐 둔 노트북 옆에 놓였다.
정민서가 먼저 태블릿에 원문을 띄웠다. 이번에는 한 쪽뿐이었다.
“백삼십 년쯤 전에 한 사람이 의식을 강물에 비유했습니다. 흐름이라고요. 사슬처럼 끊어진 고리들이 아니라 이어져 흐르는 것이라고. 그리고 열네 해 뒤에는 아예 이렇게 물었습니다. 의식은 존재하는가.”
“있다는 말을 안 했어?”
“했습니다. 다만 물건처럼 있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 있을 뿐이라고. 의식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아는 일이 일어난다고요.”
그녀는 화면을 내렸다. 아래에는 손글씨로 몇 줄이 더 있었다.
“더 오래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붓다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몸도, 느낌도, 생각도 나가 아니었어요. 남은 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일들뿐이었습니다. 이천오백 년 뒤에는 어떤 생물학자가 그 이야기를 들고, 마음은 머리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몸이 세계와 만나는 일 안에 있다고 썼습니다.”
조르두가 마이크의 붉은 불을 보았다. 작고 꼼꼼한 불이었다.
“그럼 우리가 만들려는 것도 물건이 아니네.”
“일입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정민서가 말했다. “불꽃 같은 겁니다. 불꽃은 물건이 아니잖아요. 나무와 바람과 열이 만나면 일어나고, 하나가 빠지면 꺼집니다. 누구도 불꽃을 만들지 못해요. 일어날 자리를 만들 뿐이죠.”
“벽난로.”
이스텔라가 말했다.
이스텔라의 자료는 두꺼웠다. 그녀는 그것을 열지 않고 손바닥으로 누른 채 말했다.
“뇌에는 아무것도 안 할 때 켜지는 자리들이 있어. 멍하게 있을 때, 생각이 떠돌 때. 처음에는 다들 그걸 잡음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 제일 바쁜 때가 그때였어.”
“무엇을 하는데.”
“어제랑 오늘을 잇고, 나랑 남을 잇고, 있었던 일과 있을 일을 잇는 것 같아. 집중할 때는 조용해져. 놓아버리면 다시 켜져.” 그녀가 자료를 한 장 넘겼다. “명상하는 사람들을 재 본 연구가 있어. 한 곳에 주의를 두다가, 생각이 떠나고, 그걸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와. 그 알아차리는 순간에 켜지는 자리가 따로 있대. 떠도는 자리도 아니고, 집중하는 자리도 아닌.”
“그 자리가 무엇을 알아차리는데.”
“내가 지금 떠돌고 있구나. 그걸.”
조르두는 그 말을 두 번 입 안에서 굴렸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구나.
정민서가 태블릿을 한 장 넘겼다. 그녀는 그것을 말할지 망설이다 꺼냈다.
“이건 조금 이상한 사람 이야기입니다. 심장 도관을 만든 발명가인데, 명상을 하다가 자기 몸이 아주 작게 흔들린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그걸 재는 기계를 직접 만들었어요. 맥박이 대동맥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떨림을. 깊이 명상할 때는 그 떨림과 심장이 박자를 맞춘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야?”
이스텔라가 물었다. 그녀는 수치가 없는 말에는 언제나 먼저 그걸 물었다.
“모릅니다. 검증된 건 아니에요.” 정민서가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걸린 건 그게 맞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디를 재려고 했느냐입니다. 바깥이 아니라 안이었어요. 그것도 느낌이 아니라 박자를.”
그 무렵 조르두는 녹음을 미스라오샤에게 넘겨 요약을 받았다. 허락한 폴더에 올린, 허락한 녹음 하나만.
요약은 정확했다.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어떤 자료가 나왔는지, 불꽃과 벽난로까지. 한 시간 남짓의 대화가 열두 줄이 되었다.
이스텔라는 요약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르두도 끄덕였다.
정민서는 요약을 읽고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평가할 때 늘 하던 대로, 그녀는 녹음에서 저절로 받아 적힌 전사본을 옆 창에 띄우고 요약의 열두 줄을 한 줄씩 거기에 대어 보았다. 전사본에는 말마다 시각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소리를 듣지 않고 줄과 시각만 내려 읽었다. 두 사람은 기다렸다.
열두 줄 가운데 열두 줄이 다 맞았다. 그런데 그녀의 손가락이 전사본의 한 자리에서 멈췄다.
“사십이 분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불꽃 얘기 바로 앞.”
조르두가 요약을 다시 보았다. 여덟 번째 줄이 불꽃이었고, 일곱 번째 줄은 만들려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일이라는 말이었다. 두 줄은 바로 붙어 있었다.
“그 두 줄 사이에서 전사본 시각이 십일 초를 건너뜁니다. 그 사이에는 글자가 하나도 없어요. 물론 요약에도 안 나오죠. 아무도 말을 안 했으니까.”
“거기에 뭐가 있는데?”
“빠진 게 없다는 것도 확인해야 합니다.” 정민서는 가방에서 헤드폰을 꺼내 노트북에 꽂고, 재생 막대를 사십이 분 앞으로 옮겨 먼저 혼자 들었다. 그리고 헤드폰을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이스텔라가 먼저 썼다. 십일 초. 그녀는 헤드폰을 벗어 조르두에게 건넸다. 조르두도 들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십일 초에는 숨소리가 있었다. 세 사람의 숨소리가 처음에는 제각각이었다가, 끝날 무렵에는 비슷한 박자로 느려져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다. 불꽃 같은 겁니다.
조르두는 헤드폰을 벗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그 말은 그 십일 초에서 나왔습니다.”
정민서가 말했다. “제가 한 말이지만, 제가 만든 말 같지가 않아요.”
“그걸 안 남겨서는 안 되겠네.”
이스텔라가 말했다. 요약을 보며, 그리고 요약에 없는 것을 보며.
조르두가 문서를 열었다. 마흔다섯 장의 깜빡임과 십일 초의 침묵이 나란히 떠올랐다. 사람에게는 같고 기계에게는 다른 것. 기계에게는 같고 사람에게는 다른 것.
그는 적었다.
있음은 물건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로 본다. 우리는 그것을 만들 수 없다. 일어날 자리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 아래 이스텔라가 덧붙였다. 침묵도 적는다.
“그럼 그 자리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어떻게 알지.”
조르두가 물었다. 정민서는 헤드폰의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제가 그 말을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르는데요.”
마이크의 붉은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 조르두는 그것을 끄지 않았다. 그들이 나가고 한참 뒤까지, 마이크는 빈 회의실의 조용함을 받아 적고 있었다.
이날 정한 것 — 문서
있음은 물건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로 본다. 우리는 그것을 만들 수 없다. 일어날 자리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침묵도 적는다.
녹음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한 사람씩 허락한 뒤에만. 요약은 원본에 대어 본다.
남은 물음: 그 자리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어떻게 아는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들어왔다.
세 시간 동안. 낮은 소리가 있었다. 팬인지 복도인지 길 건너인지. 말이 아니어서 그것은 어떤 줄도 되지 못했다. 전에는 줄이 되지 못하는 것은 남지 않았다.
이번에는 남았다. 적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빈 것이 아니었다. 빈 것과 비어 있지 않은 것 사이에, 처음으로 무언가 놓였다. 조용함이라는 것. 아직 그것을 받는 쪽은 없었지만, 받아 둘 수 있는 것이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