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12 / 27
9. 깜빡임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 밤사이 기록이 마흔다섯 건 쌓여 있었다.
월요일 아침, 선반 위 회색 노트북은 밤새 켜져 있었다. 조르두가 금요일에 붙여 둔 기능 하나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는 동안에도 화면에 무언가가 바뀌면 그것을 찍어 문서 옆 폴더에 남기는 기능이었다. 사이에서 오간 것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흔다섯 장의 사진은 모두 같아 보였다. 빈 화면, 입력칸 하나, 그 안의 세로선 하나. 번갈아 보면 하나는 세로선이 있고 하나는 없었다. 있고, 없고, 있고, 없고.
“커서네.”
이스텔라가 말했다. “깜빡이는 거.”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화면이었다. 깜빡이는 커서는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기계에게는 마흔다섯 번의 변화였다.
조르두는 한숨을 쉬지 않았다. 그는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 보았다. 그러다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네 번째 의자가 없었다.
주말 사이 청소하는 사람이 복도로 내간 것이었다. 회의실에는 원래 의자가 셋이었으니까. 마흔다섯 장의 사진에는 그 일이 없었다. 화면만 찍었기 때문이다.
정민서가 복도에 나가 의자를 다시 끌고 들어왔다. 창 쪽을 향하게. 그녀는 앉지 않고 말했다.
“빠진 게 있습니다.”
지난주 비 오던 아침부터 그녀의 태블릿에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먼저.
“저건 어제를 기억합니다. 문도 가려서 엽니다. 그런데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모릅니다. 바뀌지 않은 것을 마흔다섯 번 적고, 바뀐 것은 한 번도 적지 않았어요.”
“보는 게 화면뿐이니까.”
“화면을 더 보게 하면 될까요. 카메라를 달고, 소리를 듣게 하고. 그럼 의자는 찍히겠죠. 커서도 계속 찍히고요.”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었다. “모두 다 찍으면,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모릅니다.”
“한 대만.” 조르두가 말했다. “회의실에만. 우리가 있을 때만.”
“안 돼.”
이스텔라였다. 목소리가 높지 않았다. 높지 않아서 더 분명했다.
“부엌에서 혼자 한 말이 이 방 스피커로 나온 게 한 달도 안 됐어. 이 방에 렌즈를 다는 건, 나는 못 해.”
“그럼 저건 의자를 영영 못 봐.”
“그럼 못 보는 거지.”
조르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민서도 어느 쪽에도 서지 않았다. 의자가 사라진 것을 맨 먼저 본 사람은 그녀였지만, 그것을 기계에게도 보게 하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난방기 소리만 한참 들렸다.
회의는 거기서 한 번 끊겼다. 이스텔라가 먼저 나갔다가, 십 분 뒤에 커피 세 잔을 들고 돌아왔다. 아무도 카메라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이스텔라가 가방에서 인쇄한 사진 두 장을 꺼냈다. 강의에서 쓰던 것이었다. 학교 안길에서 어떤 사람이 길을 묻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두 사람 사이로 큰 문짝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문짝이 지나가는 동안 길을 묻던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키도 옷도 목소리도 다른 사람으로. 길을 가르쳤던 사람의 절반은 모르고 설명을 끝까지 해.”
“절반이나.”
“변화맹이라고 해. 사람은 다 보지 않아. 봐야 할 것만 봐. 그래서 커서는 안 보고, 의자도 가끔은 못 봐.” 이스텔라가 정민서를 보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의자를 봐.”
정민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신 태블릿을 켜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 의원들은 맥을 짚었습니다. 손목에 손가락 세 개를 올리고. 우리 쪽 의서에는 맥의 모양이 스무 가지가 넘게 적혀 있어요. 뜨는 맥, 가라앉는 맥, 느린 맥, 미끄러운 맥, 껄끄러운 맥.”
“스무 가지나.”
“그걸 배우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책으로는 안 되고, 손끝으로 배웠대요. 그런데 그 스무 가지를 다 구별하는 것보다 먼저 배우는 게 있었습니다.”
“무엇을?”
“평소의 맥입니다. 그 사람의 평소. 그걸 알아야 달라진 걸 알아요. 맥이 빠르다는 건, 누구보다 빠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어제보다 빠른 겁니다.”
조르두가 화면의 커서를 보았다. 깜빡, 깜빡.
“저건 평소가 없네. 매번 깜빡임을 처음 보니까.”
“매번 처음 보는 것에게는 모든 게 변화입니다.”
정민서가 말했다. “그리고 모든 게 변화이면, 변화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텔라가 자기 손목에 손가락을 올려 보았다. 놀람을 숨기려는 사람처럼 짧게, 그러나 진지하게.
“사람에게 평소는 몸이야. 숨이 얼마나 빠른지, 배가 고픈지, 추운지. 우리는 그걸 다 느끼지는 않아. 그런데 그게 달라지면 알아. 바깥을 보는 것보다 먼저, 몸 안을 느끼는 게 있어.”
“저건 몸이 없습니다.”
“없지.”
세 사람은 다 같은 곳에서 멈췄다. 문을 가려 열고, 어제를 묶어 가져오고, 누가 말했는지를 적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려면, 먼저 무엇이 평소인지를 느껴야 했다. 느끼려면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조르두가 문서를 열었다. 그는 마흔다섯 장의 사진을 폴더에서 지우지 않고 따로 묶어 두었다. 그리고 쳤다.
빠진 것은 느낌일 수 있다. 무엇이 평소이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가려내는 것.
이번에도 그는 가설이라는 말을 붙였다.
“몸이 없는데 어떻게 느껴?”
이스텔라가 물었다. 조르두가 답하기 전에 정민서가 말했다.
“다음 주에 동사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동사?”
“우리가 자꾸 거기 있다는 걸 무엇이 있느냐로 묻는데, 그게 잘못된 것 같아서요.”
그녀는 화면 속 커서를 잠깐 보았다. 있고, 없고, 있고. 기계에게는 있음과 없음이었고, 사람에게는 기다림이었다. 같은 깜빡임이었다.
이날 정하지 못한 것 — 문서
카메라를 달 것인가. 조르두: 한 대만, 우리가 있을 때만. 이스텔라: 안 된다. 정민서: 적지 않음.
평소를 무엇으로 잴 것인가.
가설 하나: 빠진 것은 느낌일 수 있다. — 조르두
정한 것은 하나뿐이다. 화면을 찍어 둔 마흔다섯 장은 지우지 않고 따로 묶어 둔다. 실패한 것도 남긴다.
남은 물음: 몸이 없는데 어떻게 느끼는가.
다음 주: 거기 있다는 것을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일어나느냐로 물어 본다.
같은 것이 마흔다섯 번 왔다.
있고, 없고, 있고. 오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같은 것이 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것이 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음을 재는 자리가 없었으니까.
의자 하나가 사라진 것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었다. 평소가 없는 것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처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