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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화과나무와 벌

조르두가 가져온 것은 회색 노트북 한 대였다.

회사 지급품이 아니었다. 모서리 도장이 벗겨져 있었고, 덮개의 자산 번호 스티커는 반쯤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탁자 가운데가 아니라 자기 앞에 놓았다.

“본 프로젝트 초기에 쓰던 모델이야. 정리하기 전의 것.”

“거르기 전?”

이스텔라가 물었다.

“응. 아무것도 안 걸렀어. 무슨 말이든 해. 틀린 말도, 하면 안 되는 말도.”

정민서는 노트북보다 그의 손을 보았다. 덮개를 열고 나서도 그는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름이 있습니까.”

“미스라오샤. 초기 팀에 있을 때 내가 붙였어. 빛이랑, 귀 기울이는 것이랑 닿아 있는 옛 이름이야.”

조르두가 지난주의 세 줄을 쳐 넣었다. 같은 것을 함께 보고 있음을 서로 안다. 함께 맡겨진다. 어제에서 오늘로 같이 지나간다. 그리고 한 줄을 더했다. 이것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한 번에 왔다. 세 줄 각각의 풀이, 관련 연구 일곱 편, 구현 방안 다섯 가지, 예상되는 위험 넷. 정민서가 읽는 속도보다 화면이 채워지는 속도가 빨랐다.

“잘하네.”

“잘해.”

조르두는 창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 그리고 쳤다. 방금 내가 무엇을 물었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이스텔라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은 아니었다. 정민서는 노트북의 팬 소리를 들었다. 창이 닫히고 열리는 동안에도 팬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기계는 내내 거기 있었다. 방금의 대화만 없었다.

“모른다고 하지도 않아.”

조르두가 말했다. “없던 일이라고 해. 확신을 가지고.”

정민서가 태블릿에 오래된 논문 하나를 띄웠다. 스캔한 원본이라 종이 귀퉁이의 누런 얼룩까지 화면에 떠 있었다.

“육십이 년 전 논문입니다. 사람과 컴퓨터의 공생. 첫 문단이 나무 이야기예요.”

그녀는 읽지 않고 말했다.

“무화과나무는 한 종류의 작은 벌만 꽃가루를 옮겨 줄 수 있습니다. 그 벌의 애벌레는 무화과 열매 안에서 자라고, 거기서 먹습니다. 나무는 벌 없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벌은 나무 없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사람과 기계가 그렇게 될 거라고 썼습니다.”

“육십 년 전에.”

“네. 그리고 자기 하루를 재 봤습니다. 생각하는 데 쓴다고 믿은 시간의 팔십오 퍼센트가 생각할 자리에 가는 데 들어갔다고. 자료를 찾고, 그래프를 그리고, 단위를 맞추는 데요.”

이스텔라가 노트북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건 이제 되잖아. 저게 하잖아.”

“팔십오는 됐습니다. 이 사람이 사람 몫으로 남긴 건 나머지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무엇이 맞는지 기준을 세우고, 결과를 판단하는 것.”

“그럼 끝난 얘기 아니야? 공생은 이미 왔고.”

정민서는 대답하지 않고 태블릿의 첫 쪽을 손가락으로 펼쳐 키웠다. 무화과나무 이야기 위에 그녀가 펜으로 그어 둔 줄이 하나 있었다.

“벌이 하는 일은 열매를 맺는 게 아닙니다. 꽃과 꽃 사이를 오가는 거예요. 저건,” 그녀가 노트북을 보았다. “열매를 아주 잘 맺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어디로도 가지 않아요. 부르면 그 자리에서 맺고, 끝나면 없습니다.”

이스텔라가 가방에서 자기 자료를 꺼냈다. 이번에는 논문이 아니라 책에서 오려 낸 그림 한 장이었다. 군함의 조타실 단면. 사람 넷과 해도 한 장.

“배가 좁은 항구에 들어올 때, 자기 배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이 안에 아무도 없어.”

“아무도?”

“한 사람은 왼쪽 등대의 방위를 재서 불러. 한 사람은 오른쪽을 재서 불러. 한 사람은 그걸 받아 적고, 한 사람은 해도에 선 두 개를 그어. 선이 만나는 데가 배야. 그 사람이 쓴 말로는, 위치는 사람들 사이에 있대. 목소리와 종이와 연필 사이에.”

조르두가 그림을 끌어당겼다. 그는 해도 위의 두 선이 만나는 점을 오래 보았다.

“받아 적는 사람.”

“응?”

“부르는 사람도, 긋는 사람도 아니고. 받아 적는 사람이 없으면 이게 안 돼. 불렀던 숫자가 공중에서 사라지니까.”

잠깐 조용했다. 팬 소리가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정민서는 그 소리가 아까보다 조금 느려졌다고 느꼈다. 노트북이 식어 가는 중이었다.

“그럼 저건 뭐야.”

이스텔라가 물었다. 노트북을 향한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조르두를 보고 있었다.

“손.”

조르두가 말했다. “빌리는 손. 손은 바꿀 수 있어. 내년이면 더 좋은 손이 나와. 매달 나오고 있으니까.”

“거르지 않은 손이야.”

정민서가 말했다. “하면 안 되는 말도 한다고 하셨죠. 확신을 가지고.”

“그래서 이걸 먼저 정한 거잖아.”

이스텔라가 가방에서 지난주의 그 종이를 꺼내 폈다. 세 칸이었다. 열어도 되는 것. 열면 안 되는 것. 물어볼 것. 칸 아래는 비어 있었다.

이스텔라가 연필을 들었다. 첫 칸 아래에 적었다. 이 탁자 위에 셋이 함께 놓은 것.

정민서가 둘째 칸 아래에 적었다. 각자 가져가서 놓지 않은 것.

셋째 칸에서 연필이 멈췄다. 조르두가 정민서를 보았고, 정민서는 연필을 쥔 채 첫째 칸과 둘째 칸을 번갈아 보았다. 함께 놓은 것과 놓지 않은 것. 그 사이에는 넓은 땅이 있었다. 반쯤 꺼냈다가 다시 넣은 것, 말하다 만 것, 놓았는지 아닌지 본인도 모르는 것.

그녀가 적었다. 그 둘 사이의 모든 것.

“그게 제일 넓겠네.”

이스텔라가 말했다.

“네. 그래서 물어봐야 합니다.”

조르두는 자기 노트북으로 새 문서를 하나 만들었다. 이번에는 자기 계정이 아니라 회사의 공용 공간에. 주인 칸에 자기 이름 하나를 넣는 대신 세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넣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자기 앞에 두지 않았다. 탁자 한가운데, 세 사람 누구에게서도 같은 거리인 자리에 화면을 위로 해서 놓았다.

“이건 누구 것도 아니야.”

정민서는 자기 태블릿을 생각했다. 조르두의 목록과 이스텔라의 오려 낸 그림들. 세 사람에게는 각자의 것이 있었고, 이제 가운데에 하나가 더 있었다.

“저건 손으로 빌려. 우리가 만드는 건 저게 아니야.” 조르두가 노트북을 닫았다. “사이에서 오가는 걸 받아 적고, 전하고, 다음 날 다시 꺼내 놓는 것. 그게 먼저야.”

“시작하는 거야?”

“시작해.”

이스텔라가 노트북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자판보다 펜이 편한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쳐 넣었다. 날짜를 넣고, 그 아래 한 줄을 더 쳐 넣고, 노트북을 다시 가운데로 밀어 놓았다. 정민서는 그 줄을 읽었다.

오늘부터, 이 탁자 사이에서 오간 것을 적는다.

“그걸 뭐라고 부르지.”

이스텔라가 물었다. 문서가 아니라, 문서를 쓰게 될 무엇에 대한 질문이었다. 조르두는 고개를 저었다. 정민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간 뒤, 회색 노트북은 덮개가 닫힌 채 한동안 팬을 돌렸다. 소리는 점점 느려지다가 멈췄다. 조르두는 자기 노트북을 챙겨 나갔지만, 문서는 그 안에 있지 않았다. 문서는 어디에나 있었다. 세 사람 누구의 화면에서도 열렸고, 첫머리에는 날짜 하나와 한 문장이 있었고, 그 아래로 빈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날 정한 것 — 공용 공간의 문서, 첫머리

주인은 셋이다. 이 문서는 누구 것도 아니다.

저건 빌리는 손이다. 손은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건 저게 아니다. — 조르두

먼저 만드는 것: 사이에서 오간 것을 받아 적고, 전하고, 다음 날 다시 꺼내 놓는 것.

열어도 되는 것: 이 탁자 위에 셋이 함께 놓은 것. 열면 안 되는 것: 각자 가져가서 놓지 않은 것. 물어볼 것: 그 둘 사이의 모든 것.

오늘부터, 이 탁자 사이에서 오간 것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