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24 / 30
에필로그 — 회고
시점: 이방원. 1422년, 한양.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오래된 일이었다. 양위하고 나서부터였다. 양위하기 전에는 몸이 말을 들었다. 아파도 움직였다. 움직여야 했으니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됐으니까. 그런데 충녕에게 넘기고 나서 몸이 알아버렸다. 이제 안 해도 된다는 것을.
몸이란 그런 것이었다.
버텨야 하면 버티고. 버티지 않아도 되면 무너졌다.
누워서 천장을 봤다.
예전에는 천장을 볼 시간이 없었다. 항상 무언가를 봐야 했다. 누군가를 봐야 했다. 무엇이 오는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막는지. 어떻게 먼저 가는지.
지금은 천장을 봤다.
천장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좋았다.
정도전을 생각했다.
그 사람을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 사람이 죽고 나서 나는 계속 움직였다. 움직이면서 그 사람이 만든 것을 썼다. 그 사람의 이름을 지우면서 그 사람의 구조 안에 살았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 사람을 없앤 내가 그 사람이 설계한 나라를 이어갔다. 육조직계제를 썼지만 조선경국전은 남겼다. 재상의 힘을 눌렀지만 재상의 자리는 없애지 않았다. 그 사람이 만든 뼈대 위에서 중심만 옮겼다.
뼈대를 만든 사람이 없어지고 뼈대는 남았다.
그 사람이 그것을 알면 무슨 말을 했을지 몰랐다.
분해했을 것이었다. 내가 자신의 구조를 쓴다는 것에. 그러나 조금은. 아주 조금은. 뼈대가 살아있다는 것에 다른 감정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내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없었다.
그날 밤을 생각했다.
1398년 8월. 그 밤.
정도전이 남은의 집에 있었다. 나는 움직였다. 정도전이 잡혔다. 죽기 전에 한마디를 했다고 들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전해지지 않았다. 전하는 사람마다 달랐다.
나는 그 말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어떤 말이든 달라지지 않으니까였는지.
그 사람이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든 그 사람의 설계가 이 나라의 뼈대가 됐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으로 됐다.
그 사람은 옳았다.
그 사람의 나라에서 나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둘 다 사실이었다.
민씨를 생각했다.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았다. 같은 궁 안에 있었다. 충녕이 즉위하고 나서 대비가 됐다. 나는 상왕이었다. 같은 궁 안에 있었는데 자주 보지 않았다.
볼 때마다 무언가가 있었다.
말하지 않는 것들이. 그 사람이 안고 있는 것들이. 오빠들. 아버지. 내가 한 것들. 그 사람이 견딘 것들.
그것이 있었다.
그것을 모른 척하면서 같이 있는 것이 가능했다. 오래 그렇게 했다. 그런데 보면 모른 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주 보지 않았다.
비겁한 것이었다. 알았다.
그 사람이 어느 날 물었다.
양위하기 전이었다.
“후회합니까.”
“무엇을.”
“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잠깐 생각했다.
후회하는가. 진짜로.
정도전을 없앤 것을. 오빠들을 없앤 것을. 그 사람이 겪은 것들을. 내가 선택한 것들을.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았을 것이었다.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후회가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것을 알면서 더 묻지 않았다.
그 사람은 오래전부터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 사람이었다.
충녕이 들어왔다.
왕이 됐는데도 들어올 때 소리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발소리가 없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버지.”
“오너라.”
충녕이 옆에 앉았다.
나는 그 아이를 봤다. 왕이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직 아이였다. 그것이 이상했다. 왕을 아이로 보는 것이.
“몸이 어떠십니까.”
“이제 다 됐다.”
충녕이 나를 봤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사실이오.”
충녕이 말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거짓으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거짓 위로를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있었다.
민씨를 닮은 것이었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느냐.”
“예.”
“정도전의 책을 읽었느냐.”
충녕이 잠깐 있었다.
“읽었습니다.”
“어떻더냐.”
충녕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바로 답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바로 답하는 법이 없었다. 생각하고 말했다.
“옳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봤다.
“그런데 시대가 달랐습니다. 그분이 설계한 때와 지금이 다릅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정도전이 만들려 한 것을 이 아이가 다른 방법으로 만들 것이었다. 재상이 중심이 되지 않아도. 왕이 직접 학문을 하고. 왕이 직접 제도를 만들고. 왕이 직접 백성을 생각하면. 정도전이 재상에게 맡기려 한 것을 왕이 하면.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 아이의 방법이었다.
정도전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충녕이 나갔다.
나는 다시 천장을 봤다.
정도전이 설계를 줬다.
민씨가 이 아이를 줬다.
두 사람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줬다. 두 사람 모두 내게 모든 것을 줬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나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정도전은 목숨을 빼앗겼다.
민씨는 가족을 빼앗겼다.
그것이 내가 한 것이었다.
그것과 함께 두 사람이 준 것이 남았다. 설계가 남았다. 이 아이가 남았다. 내가 빼앗은 사람들이 준 것으로 이 나라가 됐다.
그것이 이 나라였다.
그것이 내가 만든 것이었다.
옳은가.
모르겠다.
맞는 방법이었는가.
모르겠다.
다른 방법이 있었는가.
그것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아는 것을 했다. 아는 것을 전부 했다. 남긴 것이 없었다. 남기면 안 됐다. 이 자리는 남기는 자리가 아니었다.
다 썼다.
이제 충녕이 쓸 것이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창으로 빛이 들어왔다. 따뜻했다. 몸이 무거웠다. 눈이 무거웠다.
정도전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의 눈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은 것인지. 기억이 없는 것인지.
민씨의 눈은 기억났다.
오빠들이 없어지고 난 뒤 그 사람 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눈. 없습니다, 라고 한 눈.
그 눈이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알았다.
미워했으면 더 쉬웠을 것이라고 그 사람이 말했다.
나도 그랬다.
그 사람이 미워했으면 더 단순했을 것이었다. 미워하는 사람은 멀리하면 됐다. 그런데 미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두 사람 다 미워하지 않으면서 견뎠다.
그것이 우리였다.
눈이 감겼다.
충녕이 잘 할 것이었다.
정도전이 만들려 한 것을. 민씨가 지키려 한 것을. 내가 칼로 열어놓은 것을. 그 아이가 다른 방법으로 채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다 보지 못할 것이었다.
괜찮았다.
여기까지 봤다.
여기까지 본 것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