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14 / 30
1장 — 설계도
시점: 정도전. 1393년 봄–1395년 가을, 개경.
나는 글을 쓸 때 손이 멈추지 않는다.
생각이 손보다 빠르면 글이 엉킨다. 손이 생각보다 빠르면 글이 가벼워진다. 나는 그 둘이 같은 속도로 갈 때를 안다. 그때 쓴 글이 남는다. 오래 생각한 것이 손끝에서 처음 나오는 것처럼 나올 때. 유배지에서 걸으면서 쌓아온 것들이 지금 붓 아래 놓이고 있었다.
조선경국전.
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의 기본이 될 것이었다.
나는 치전(治典)부터 썼다. 재상의 직능. 왕은 덕으로 임하고 재상이 정무를 총괄한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하면 한 사람의 판단이 나라의 운명이 된다. 사람은 실수한다. 제도는 실수를 줄인다. 왕도 사람이다. 그러므로 왕의 권한을 제도 안에 묶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걸으면서 생각한 것의 핵심이었다.
나주에서 본 것. 부평에서 본 것. 김포 가는 길에서 본 것. 먹을 것이 없어 떠도는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왕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구조가 나빴다. 권문들이 땅을 가졌고, 왕은 그것을 막지 못했고, 막지 못한 것은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왕이 오면 좋아지고 나쁜 왕이 오면 나빠지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왕이 누구든 굴러가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설계도였다.
붓을 놓고 창밖을 봤다.
개경이었다. 아직 개경이었다. 곧 한양으로 갈 것이었다. 새 수도. 새 궁궐. 새 종묘와 사직. 이성계가 결정했고 내가 설계를 도왔다. 산세를 봤다. 물길을 봤다. 어디에 무엇을 세울지. 나라의 뼈대를 놓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이 좋았다.
힘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배지에서 나는 힘이 없었다. 구조는 머릿속에 있는데 그것을 실현할 힘이 없었다. 이성계를 만나면서 힘이 생겼다. 힘이 생기자 설계가 현실이 됐다. 과전법이 됐다. 조선이 됐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창밖을 보면서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이방원이었다.
그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다. 함주 막사에서 이성계와 밤새 이야기하던 그날, 벽 너머에서 듣고 있던 것을 나는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이방원이 그날 거기 있었다는 것을. 그 나이에 그 자리에서 들을 것과 듣지 않을 것을 판단하는 아이였다는 것을.
그 후로 여러 번 마주쳤다.
그는 나를 스승처럼 대했다. 예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예의 아래에 동의가 없었다. 예의는 형식이다. 형식 아래의 것이 그 사람이다. 민제에게서 배웠다고 들었다. 형식과 형식 아래를 구분하는 것을. 그 아이는 그것을 너무 잘 배웠다.
재상 중심의 나라를 나는 설계했다.
이방원은 그 나라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개경의 방식이었다. 다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붓을 다시 들었다.
설계를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것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재상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옳았다. 이방원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설계를 틀리게 만들지 않았다.
설계는 계속됐다.
1394년 겨울, 한양으로 옮겼다.
새 땅이었다. 궁궐이 올라가고 있었다. 경복궁. 내가 이름을 지었다. 빛나고 복된 궁. 나라의 뼈대가 땅 위에 서고 있었다.
나는 그 공사 현장을 걸었다.
목수들이 있었다. 석공들이 있었다. 흙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뼈대를 세우고 있었다. 나는 그 뼈대의 설계를 갖고 있었다. 설계와 실행이 만나는 자리였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20년 전에는 몰랐다.
몸이 알고 있는데 말이 없었다. 그 말을 이성계가 들어줬다. 이성계가 힘이었고 나는 말이었다. 그 조합이 이 궁궐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성계의 힘과 나의 말 사이에 이방원이 있었다.
이방원은 말도 가졌고 힘도 가지려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말과 힘을 한 사람이 가지면 제도가 필요 없어진다. 제도가 필요 없는 나라는 다시 그 사람이 죽은 뒤 무너진다. 고려가 그랬다.
나는 경복궁의 기둥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방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직접 칠 수 없었다. 이성계의 아들이었다. 공을 세웠다. 사람들이 따랐다. 그리고 내가 그를 치면, 이성계가 나를 볼 것이다. 나는 이성계의 힘 없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면 구조로 가둬야 했다.
왕자들의 사병을 국가로 흡수하면 이방원은 힘을 잃는다. 힘이 없으면 말만 있다. 말만 있는 사람은 구조 안에서 살아야 한다. 재상이 중심인 나라의 구조 안에서.
나는 그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옳은 방향이었다. 그것이 나라에 옳고 백성에 옳았다. 그것이 이방원에게 위험하다는 것이 내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1395년 가을, 조선경국전이 완성됐다.
이성계에게 올렸다. 이성계는 받았다. 읽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다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계도는 완성됐지만 설계도가 살아있는 나라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제도가 살이 되고 뼈가 되려면 한 세대가 지나야 했다. 나는 그것을 볼 수 있을까.
창밖에 달이 있었다.
함주 막사 앞 소나무에 글자를 새기던 날의 달과 같은 달이었다. 그때 나는 이것을 몰랐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될 것을 몰랐다.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을 믿었지만 확신하지 못했다.
지금은 됐다.
그런데 됐는데 왜 이 밤에 마음이 무거운가.
이방원이었다.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를 없애지 않았다. 그는 있었다. 개경 어딘가에, 한양 어딘가에. 조용히 있었다.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무거웠다.
나는 달을 보면서 한 가지를 인정했다.
이 설계도를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두 번째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붓을 들었다. 다시 썼다. 쓰는 것만이 내가 아는 방법이었다. 걸어온 길이 여기까지 왔다. 여기서 멈추는 것은 걸어온 길을 부수는 것이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것이 나였다.
그것이 나를 살게 했다. 그것이 나를 죽일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날 밤 달을 보면서, 알면서 모른 척했다.
혁명가의 마지막 버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