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 밧세바 (2부) · 50 / 117

46장 — 들에서 온 아이들

예루살렘. 다윗이 마흔다섯 살이던 해. 궁의 늙은 종.

기록의 배경 · 사무엘하 3장 2–5절 · 5장 13–16절 · 13장 1절

나는 이 집 종이다.

부엌 일을 하고 아이들 뒤를 닦는다. 예순이 넘었으니 이제 무거운 것은 안 진다.

헤브론에서부터 따라왔다.

그전에는 시글락에 있었다. 그전 일은 기억이 흐리다.

시글락이 탔을 때 나도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나흘을 걸어가서 되찾아 오셨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 나흘 동안 걸었을 뿐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때 큰 도련님이 두 살이셨다.

지금 열넷이시다.

이 성에 들어온 것이 여덟 해 전이다.

들어오던 날 나는 성문에서 위를 봤다. 성벽이 높았다.

그런데 안에 들어와 보니 성이 작았다.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이 좁았다. 헤브론이 더 넓었다.

그래도 여기는 벽이 있었다.

아이들이 물을 무서워했다.

큰 도련님이 여섯 살, 둘째가 다섯, 셋째가 셋이실 때였다.

궁에 들어와서 처음 씻기는데 물을 채워놓으니까 셋째 도련님이 우셨다.

그렇게 많은 물을 본 적이 없으셨던 것이다.

들에서는 물을 아낀다. 한 그릇으로 얼굴 닦고 손 닦고 발 닦는다.

여기는 물이 아래 샘에서 올라온다. 종이 지고 올라오니 힘들지 물은 있다.

한 달쯤 지나니 안 무서워하셨다.

두 달쯤 지나니 물장난을 하셨다.

석 달쯤 지나니 물을 흘리고 다니셔서 내가 뒤를 닦았다.

사람이 그렇게 된다.

들에서 자란 아이들과 여기서 난 아이들은 다르다.

여기서 난 아이들은 처음부터 지붕 아래에서 잤다.

들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붕 아래에서 자는 것을 배웠다.

배운 것과 원래 그런 것은 다르다.

배운 것은 잊는다.

큰 도련님은 아무것도 안 하신다.

열넷이신데 무엇을 하시는지 나는 모른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시고 낮에 뜰에 앉아 계시고 저녁에 사람들을 부르신다.

부르시면 젊은 자들이 온다.

한번은 내가 지나가다가 들었다.

”…뭐 재밌는 거 없나.”

”…없습니다.”

”…”

“성 밖에 나가보시겠습니까.”

”…나가서 뭘 하는데.”

그것뿐이었다.

들에서는 할 일이 있었다.

양을 몰고 물을 긷고 짐을 지고 걸었다.

여섯 살짜리도 할 일이 있었다.

여기 와서 할 일이 없어졌다.

종이 다 한다.

왕자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그것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왕께서 안 가르치신다.

가르치신 적이 없다.

내가 열여덟 해를 봤는데 한 번도 없었다.

야단치신 적도 없다.

재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큰 도련님이 종을 때리셨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팔이 부러졌다.

부엌에서 그 이야기가 났다.

내가 아뢰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니까 오래 있던 사람이 나를 봤다.

”…아뢰서 뭐 하려고.”

”…그래도.”

“아뢰면 뭐가 달라져.”

”…”

“작년에도 있었어. 아뢨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화도 안 내셨어?”

“내셨지.”

”…”

“내시고 끝이야.”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내시고 끝이다.

화를 내시는 것은 진짜다.

그런데 그다음이 없다.

들에서는 그것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들에서는 지나간다.

양이 죽으면 묻고 다음 날 또 센다. 사람이 죽으면 묻고 걷는다.

지나간 것을 붙들면 오늘 못 산다.

그런데 여기는 지나가지 않는다.

팔이 부러진 종이 궁 안에 있다.

부러뜨린 도련님도 궁 안에 있다.

매일 마주친다.

지나갈 데가 없다.

셋째 도련님은 다르시다.

압살롬 도련님 말이다.

열한 살이신데 벌써 사람들이 쳐다본다.

생김이 그렇다. 아버지를 닮았다는데 아버지보다 낫다고들 한다.

머리가 좋으시다. 굵고 길게 자란다.

어머니가 그술에서 오신 분이다.

그술은 요단 건너 북쪽에 있는 나라다. 그 나라 왕의 따님이시다.

그래서 그쪽에 사람이 몇 붙어 왔다. 말이 조금 다르다.

셋째 도련님은 두 해에 한 번씩 외가에 가신다.

거기는 왕의 외손이시니 대접이 다르다고 들었다.

여기서는 셋째다.

거기서는 손자다.

가셨다 오시면 며칠 말이 없으시다.

넷째 도련님은 아도니야 도련님이시다.

아홉 살이시다.

이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하나뿐이다.

왕께서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이 없다.

큰 도련님은 그래도 화를 내신 적이 있다.

이분은 그것도 없다.

무엇을 하셔도 아무 말이 없으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이 제일 나쁘다.

야단맞는 아이는 어디까지가 되고 어디부터가 안 되는지를 안다.

야단 안 맞는 아이는 그것을 모른다.

모르면 나중에 큰 데서 부딪힌다.

작은 아씨는 아홉 살이시다.

다말 아씨.

셋째 도련님의 친누이시다. 같은 어머니시다.

두 분이 붙어 다니신다.

셋째 도련님이 어디 가시면 아씨가 따라가신다. 아씨가 넘어지면 도련님이 일으키신다.

궁 안에 딸이 여럿인데 그중에 이름을 다들 아는 것은 이 아씨뿐이다.

곱다.

곱다는 말을 나는 잘 안 쓴다.

곱다고 하면 눈에 띈다는 뜻이 되고, 눈에 띄면 좋을 일이 없다.

그런데 이 아씨는 곱다.

작년 가을에 이런 것을 봤다.

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작은 아씨가 무엇을 하고 계셨고 셋째 도련님이 옆에 계셨다.

큰 도련님이 회랑에 앉아서 보고 계셨다.

한참 보고 계셨다.

나는 지나가다가 그것을 봤다.

보고 지나갔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안 했다.

이 궁에는 아이가 많다.

헤브론에서 난 분들이 여섯이고, 여기 와서 난 아이들이 그보다 많다.

어머니가 여럿이고 아이가 여럿이다.

그런데 서열이 확실하지 않다.

큰 도련님이 맏이신 것은 다 안다.

그런데 맏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맏이면 무엇을 물려받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정해놓지 않았다.

이 나라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

앞에 왕이 하나 계셨는데 그 집은 없어졌다.

그러니 앞의 예를 볼 데가 없다.

작년에 북쪽 끝 방에 계신 분이 아이를 낳으셨다.

아들이다.

시므아 도련님이라고 이름을 붙이셨다.

그분은 세 해 전에 들어오셨다.

첫아이는 이레 만에 죽었다.

그분 이야기는 부엌에서 잘 안 한다.

하다가 그친다.

나는 그분이 부엌에 자주 오시는 것을 안다.

물을 뜨러 오신다고 하시는데 종이 있으니 오실 필요가 없다.

와서 앉아 계신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그런데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앉아 계시니까, 두 달쯤 지나니 아무도 신경 안 쓰게 됐다.

저분은 원래 그러신다고들 한다.

나는 가끔 그분을 본다.

앉아서 듣고 계신다.

무엇을 들으시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