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 밧세바 (1부) · 30 / 117
27장 — 신부
예루살렘. 다윗이 서른아홉 살이던 해. 밧세바 열여섯.
기록 사이의 빈칸 · 사무엘하 11장 3절 · 23장 34절, 39절에서 확장
아버지 얼굴을 나는 몰랐다.
두 살 때 나갔다고 들었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옷자락을 잡고 마당에 서 있었다고 어머니가 말해주었다. 할아버지가 머리에 손을 얹었다가 떼고 들어가셨다고 했다.
그것도 어머니한테 들은 것이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다.
소식은 가끔 왔다.
사람이 오면 어머니가 마당까지 뛰어나갔다. 살아 있다고 하면 그날은 밥을 더 지었다.
그것이 소식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
길로는 길가에 있었다.
마을 아래에서 길이 갈렸다. 하나는 남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 저지대로 갔다.
갈리는 자리에 물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기서 쉬었다.
할아버지는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좋아하셨다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웃지 않으셨으니까.
그런데 매번 하셨다.
내가 여섯 살쯤 됐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나를 마당에 앉혀두셨다.
“거기 앉아 있어라.”
무엇을 하라는 말은 없었다.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콩을 고르거나 실을 감으면서 앉아 있었다.
손님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 여자아이가 마당에 앉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없는 것과 같다.
손님이 가고 나면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뭐라고 하더냐.”
처음에는 대답을 못 했다.
들었는데 옮기지를 못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들어가셨다.
몇 번 그러고 나서 나는 외우기 시작했다.
들으면서 속으로 되풀이했다. 그러면 옮길 수 있었다.
“그 사람이 헤브론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사흘 걸렸다고 했습니다.”
”…또.”
“밀값이 올랐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그건 안 했습니다.”
“그래.”
그다음부터는 그런 것도 들었다.
얼마나, 언제, 누구한테.
말 안 한 것도 세어두게 됐다.
열 살쯤 됐을 때 알았다.
같은 이야기를 세 사람한테 들으면 어긋나는 데가 있다.
날짜가 다르거나 사람 수가 다르거나 순서가 다르다.
한번은 그것을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저 사람 말이 아까 그 사람 말이랑 다릅니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셨다.
“어디가.”
“저 사람은 닷새라고 했는데 아까 그 사람은 이레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그럼 며칠이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닷새다.”
”…왜요.”
“길게 말하는 사람이 부풀린 거다. 짧게 말하면 자랑이 안 되니까.”
그때 나는 그것이 대단한 것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그냥 오래 앉아 있으면 알게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가르칠 생각이 있었으면 아들에게 가르치셨을 것이다.
나는 마당에 있었고, 마당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시킨다.
그것뿐이었다.
열다섯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할아버지가 왕의 부름을 받으셨다고 했다. 궁 옆에 집을 받으셨다고 했다.
기별이 왔고 우리는 짐을 쌌다.
가는 데 이틀 걸렸다.
성이 작았다.
나는 성이 더 클 줄 알았다. 왕이 사는 성이니까.
아버지를 처음 봤다.
마당에 서 계셨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컸고 손이 아주 컸다.
나를 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 뒤로 계절에 한 번쯤 오셨다.
오시면 할아버지와 방에서 이야기하시고 밥을 드시고 가셨다.
마당을 지나가실 때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을 물으신 적이 없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들은 딸에게 말을 잘 안 하신다. 길로에서도 그랬다.
겨울에 어머니가 옷을 짓기 시작하셨다.
혼인할 때 입는 옷이었다.
나는 그것으로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옷감을 사 오셨고, 밤에 등불 옆에서 바느질을 하셨고, 나에게 서보라고 하셨다.
그때 물어볼 수 있었다.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을 들어야 한다.
들으면 그다음부터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된다.
봄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군에 있는 사람이다.”
”…예.”
“아버지 밑에 있는 사람이란다.”
”…예.”
“헷 사람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보셨다.
”…너 그 사람 봤니.”
봤다.
작년 가을에 한 번 봤다.
아버지가 오셨을 때 뒤에 사람이 하나 따라왔다. 마당에 안 들어오고 문 밖에 서 있었다.
키가 컸다.
내가 물을 내가면서 봤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것이 이상했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 왜 나에게 고개를 숙이나.
나중에 알았다.
그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여기서 누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모르면 다 숙인다.
혼인은 여름에 했다.
사람이 스물쯤 왔다. 군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저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이상하다고 우물가에서 말하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시어머니가 없으니 편하겠다고 했다.
애 낳을 때 봐줄 사람이 없겠다고도 했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집은 북쪽 언덕이었다.
새로 지은 것은 아니고 고쳐 쓴 것이었다. 방이 둘이고 옥상이 있었다.
옥상에서 성이 다 보였다.
궁도 보였다.
처음 며칠 나는 옥상에 잘 올라가지 않았다.
빨래를 널 때만 올라갔다.
높은 데가 무서웠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원정에 나가면 스무 날씩 없었다. 성에 있어도 진영에서 자는 날이 있었다.
집에 있는 날에는 말이 없었다.
밥을 먹고, 마당에서 무언가를 고쳤다. 창 자루를 갈거나 신발을 꿰맸다.
나는 그 옆에서 내 일을 했다.
한 달쯤 지나서 그가 물었다.
“여쭐 것이 있습니다.”
나는 놀랐다.
나에게 여쭙는다고 했다.
”…말씀하십시오.”
“이 집에 규정이 있습니까.”
”…무슨 규정이요.”
그는 잠깐 말을 골랐다.
”…여자에게 달거리가 있을 때 말입니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레 동안 부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같은 자리에 눕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
“그리고 이레가 지나면 물에 씻는다고 들었습니다.”
”…예.”
“제가 잘못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신발을 꿰맸다.
나는 그날 밤 오래 깨어 있었다.
길로에서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는지 나는 모른다.
한 번도 그것을 말로 들은 적이 없었다.
이 사람은 배워서 알고 있었다.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대로 한다.
나는 자라면서 알아서, 대충 한다.
그 뒤로 그렇게 했다.
이레 동안 따로 잤다. 이레가 지나면 아래 샘에 내려가서 씻거나, 물을 길어 와서 옥상에서 씻었다.
옥상에서 씻는 날이 많았다.
물을 이고 비탈을 올라오는 것이 힘들어서, 한 번 길어 온 것으로 하려면 위에서 하는 것이 편했다.
그는 그것을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이레가 며칠째인지 세지도 않았다.
내가 말하면 그날부터 다시 같이 잤다.
두 해가 지났다.
아이가 없었다.
그가 그것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아직 모른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북쪽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고, 이름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물어본 적이 없다.
그도 나를 모른다.
물어본 적이 없다.
우리 둘 다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잘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