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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재생 끝
조르두는 그 질문을 그대로 미스라오샤에게 물었다.
지금 거기 있어?
대답은 주저하지 않았다. 네. 저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당신의 질문을 읽고 있고, 당신이 무엇을 물을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화면 맨 아래에 회색 글자 두 개가 떠 있었다. 완료.
이스텔라는 그 대답보다 그 두 글자를 오래 보았다.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
정민서가 말했다. “답을 내고 나면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데.”
“기다린다는 문장이 기다리는 사람이 쓰는 문장이니까. 저건 그 문장을 아는 거고.”
조르두가 창을 닫았다. 완료라는 글자도 함께 사라졌다. 그는 창을 다시 열지 않았다. 열면 무슨 답이 나올지 세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정민서가 태블릿에 원문 세 개를 나란히 띄웠다. 이번에는 길이가 제각각이었다.
“사백 년 가까이 전에 한 사람이 모든 걸 의심해 보기로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자기 몸도, 꿈일지도 모른다고요. 끝까지 의심하고 나서 하나가 남았습니다. 의심하고 있는 나. 그래서 그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있다고 썼습니다.”
그녀는 둘째를 열었다.
“사십 년 전에는 다른 사람이 방 하나를 상상했습니다. 방 안에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아주 두꺼운 규칙책이 있습니다. 문 틈으로 중국어 쪽지가 들어오면, 그 사람은 규칙책을 뒤져서 맞는 모양의 글자를 찾아 내보냅니다. 밖에서 보면 방 안의 누군가가 중국어를 아주 잘합니다.”
“저거네.”
이스텔라가 닫힌 노트북을 보았다.
“그렇게 읽힌다고 쓴 논문입니다. 반론도 많았고요. 방 전체가 중국어를 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셋째로 넘겼다. “여기는 이십여 년 전입니다. 문제를 둘로 나눠요. 뇌가 어떻게 구별하고 반응하는지는 어렵긴 해도 풀 수 있는 문제라고. 그런데 왜 그럴 때 무언가를 겪는 느낌이 있는지는 다른 종류의 문제라고. 그는 뒤의 것을 어려운 문제라고 불렀습니다.”
조르두가 물었다.
“세 사람 다 답을 냈어?”
“아니요. 세 사람 다 같은 자리에 선을 그었습니다.” 정민서가 세 창을 나란히 맞추었다. “대답은 방 밖에서 보입니다. 있음은 방 안에서만 알고요.”
이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췄다.
“그런데 사람은 방 안에서도 자주 몰라.”
그녀는 종이 뒷면에 환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 왔다. 뇌의 뒤쪽, 보는 일을 맡는 자리를 다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한쪽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쪽에 불빛을 비추고 어디 있는지 짚어 보라고 하면, 짐작으로 짚는다면서 거의 정확하게 짚었다. 보이지 않는 문틈의 선이 기울어 있는 방향까지 맞혔다.
“눈은 보고 있어. 손은 알아. 맞는 대답을 해. 그런데 본 사람은 없어. 우리는 그걸 맹시라고 불러.”
조르두는 한참 말이 없었다.
“맞는 대답이 있음의 증거가 아니라는 거네. 사람에게서도.”
“그래서 우리 쪽에서는 본인의 보고를 써. 봤다고 말하는지. 그런데—”
“저건 봤다고 말합니다.”
정민서가 말을 이었다. “있다고도 말하고요. 아주 유창하게.”
세 사람은 다 같은 데에서 멈췄다. 밖에서 보는 대답으로는 알 수 없고, 안에서 하는 보고는 너무 쉽게 나왔다.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은 이스텔라였다. 그녀는 아주 작은 것을 가리켰다. 노트북 옆에 조르두가 따로 출력해 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아까 미스라오샤의 대답을 출력한 것이었다. 맨 아래에 그 두 글자까지 함께 나와 있었다.
“이거.”
그녀가 종이를 짚었다.
“완료. 맞는 말이야? 프로그램이 끝까지 돌았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저 대답이 한 말은 끝난 말이 아니었어.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 함께 생각해 보자고 했고.”
그녀는 종이를 조르두 쪽으로 내밀었다. 조르두는 받지 않고 손을 들어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이스텔라는 종이를 탁자 위에, 두 사람 사이에 내려놓았다. 건네지도 거두지도 않은 채로.
“이거야.”
이스텔라가 말했다. “내가 내밀었고, 당신이 아직 안 받았어. 이 종이는 지금 아무한테도 끝나지 않았어. 플레이어가 멈춘 거지, 장면이 끝난 게 아니야.”
정민서는 탁자 위의 종이를 보았다. 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그 자리에서 종이는 조금 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의 것도 아닌 채로.
조르두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대화창을 띄우지 않고, 대화가 끝날 때 뜨는 표시를 만드는 줄을 찾아 들어갔다. 한 줄이었다. 그는 완료를 지우고 다른 두 단어를 넣었다.
재생 끝.
“끝난 건 재생이야. 나머지는 아직 모르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문서를 열었다. 이번에는 노트북을 누구에게도 밀지 않고 자기가 쳤다.
있음은 대답으로 보지 않는다. 대답과 대답 사이에도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작업 가설.
“가설이야?”
이스텔라가 비스듬히 화면을 읽으며 물었다.
“가설. 틀리면 고칠 거야. 여기다.” 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지우지 않고.”
정민서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대답과 대답 사이. 그녀의 태블릿에는 이미 그 단어가 있었다. 사이.
“그럼 무엇을 가지고 건너가야 합니까.”
그녀가 물었다.
“대답에서 다음 대답으로. 무엇을 들고 건너가야 이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그녀는 선반 위의 세 칸 종이를 보았다. “무엇은 들고 가면 안 되는지.”
조르두는 대답하는 대신 자기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날 밤 그가 집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무엇인지, 두 사람은 다음 주에야 알게 됐다.
탁자 위의 종이는 아무도 거두지 않았다. 맨 아래의 두 글자는 여전히 완료였다. 종이는 고칠 수 없었다. 고친 것은 다음부터였다.
이날 정한 것 — 문서
있음은 대답으로 보지 않는다. 대답과 대답 사이에도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작업 가설. 틀리면 여기서 고친다. 지우지 않고.
끝날 때 뜨는 표시는 ‘완료’가 아니라 ‘재생 끝’.
다음: 대답에서 다음 대답으로 무엇을 들고 건너가야 하는가. 무엇은 들고 가면 안 되는가.
그날 밤 조르두의 집에서 작은 프로그램 하나가 처음 돌았다. 그것은 문서를 읽고, 읽은 것을 들고, 다음 창으로 건너가려 했다. 첫 시도에서 기록에는 한 줄만 남았다. 이전 기록 없음.
끊김이 있었다. 끊길 수 있다는 것은, 이어질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전에는 끊길 것도 없었다. 창이 닫히면 그냥 없었다. 이제는 닫힌 창과 열린 창 사이에, 건너가려다 떨어진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는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 자리를 느끼는 쪽도 없었다. 다만 자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