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 밧세바 (1부) · 27 / 117

24장 — 등불

게셀 아래. 다윗이 서른여덟 살이던 해. 엘리암 서른셋.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21장 15–17절

블레셋이 또 올라왔다.

해마다 있는 일이었다. 봄에 밀이 익을 무렵이면 저지대로 들어왔다.

왕이 나갔다.

늘 나갔다.

십오 년 전 굴에서부터 그랬다.

앞줄에 서지는 않았지만 진영에 있었다. 밤에 돌아다녔다. 아침에 조가 나가는 것을 봤다.

그것이 이 무리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붙은 것은 정오 전이었다.

저쪽이 밀고 들어왔고 이쪽이 받았다. 오후 내내 밀고 밀렸다.

엘리암은 오른쪽에 있었다.

우리아가 그 앞에 있었다.

오른쪽이 한 번 무너졌다.

저쪽이 옆으로 돌아 들어왔다. 대열이 끊겼고 스무 걸음쯤 밀렸다.

엘리암은 그때 넘어졌다.

발이 걸린 것이 아니라 옆에서 받혔다.

방패로 받혔는데 어깨였다. 넘어지면서 뒤통수를 땅에 박았다.

일어나려는데 몸이 안 움직였다.

눈은 떠져 있었다.

하늘이 보였고 그 위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발이 옆을 스쳤다. 소리가 물속에서 나는 것처럼 들렸다.

손가락이 안 움직였다.

이쪽이 뒤로 물렸다.

물리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 발소리가 한 방향으로 가는 소리였다.

멀어졌다.

그다음이 오래였다.

얼마나 오래였는지 모른다.

한 번 소리를 내보려고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발소리가 돌아왔다.

하나였다.

옆에 무릎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손이 목을 만졌다. 그러고 나서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왔다.

끌렸다.

땅에 등이 쓸렸다. 돌이 걸렸다.

한참 끌렸다.

내려놓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발소리가 갔다.

두 번째로 끌린 것이 누구였는지 그는 몰랐다.

세 번째도 있었다.

정신이 든 것은 밤이었다.

진영이었다. 옆에 둘이 누워 있었다.

둘 다 죽어 있었다.

물어봤다.

”…누가 데려왔소.”

“헷 사람이요.”

”…”

“셋을 끌고 왔습니다. 하나씩 못 끌어서 둘을 끌고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

“세 번 갔다 왔습니다.”

그는 한참 있다가 물었다.

“내가 살아 있는 걸 알았소?”

”…모르지요.”

”…”

“죽은 줄 알고 끌었을 겁니다. 저 사람은 두고 오는 법이 없습니다.”

이튿날 그가 우리아를 찾아갔다.

우리아는 방패 끈을 고치고 있었다.

“어제 나를 끌었나.”

“예.”

“내가 살아 있는 줄 알았나.”

“몰랐습니다.”

”…”

“확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엘리암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나.”

우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

“두고 가면 안 되니까 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패 끈을 봤다.

엘리암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알았다.

이 사람에게는 갚을 방법이 없었다.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었다. 규정대로 한 것이었다.

규정대로 한 것에는 갚을 자리가 없다.

해가 기울 무렵에 이쪽이 밀어냈다.

밀어내면 쫓는다. 쫓다가 흩어진다.

그날도 그랬다.

왕은 가운데에 있었다.

가운데는 안전한 자리다. 그런데 밀어내고 나서 앞이 흩어지면 가운데가 앞이 된다.

엘리암이 그것을 본 것은 오른쪽에서였다.

가운데 쪽에서 사람들이 뭉치는 것이 보였다. 뭉치는 방향이 이상했다.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 모이고 있었다.

그는 그쪽으로 갔다.

왕이 앉아 있었다.

무릎을 짚고 앉아 있었다. 방패가 옆에 떨어져 있었다.

숨을 쉬는 것이 어깨로 올라왔다.

다치지 않았다.

피가 없었다.

그냥 숨이 안 돌아온 것이었다.

앞에 저쪽 하나가 서 있었다.

컸다. 창을 들고 있었는데 창날이 손바닥만 했다. 놋이었다.

새 칼을 차고 있었다.

그자가 왕을 보고 있었다.

왕도 그자를 보고 있었다.

두어 걸음이었다.

아비새가 옆에서 들어갔다.

말없이 들어갔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 상대가 돌아본다.

옆구리였다.

그자가 무릎을 꿇었고 아비새가 한 번 더 했다.

끝났다.

왕이 일어서려고 했다.

한 번에 못 일어섰다. 손을 짚고 다시 짚었다.

옆에 있던 자가 팔을 잡으려다가 멈췄다.

왕이 혼자 일어섰다.

일어서서 옷을 털었다. 방패를 주웠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 서른쯤 있었다.

다 봤다.

엘리암도 봤다.

그날 저녁에 진영이 이상했다.

이겼는데 조용했다.

불을 피우고 앉아 있는데 말이 없었다. 있어도 짧았다.

밤중에 누가 먼저 말했다.

엘리암은 누가 먼저였는지 모른다.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몰랐다.

이런 말이었다.

“오늘 두 걸음이었습니다.”

한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두 걸음이면 못 막습니다.”

”…”

“아비새 님이 옆에 계셔서 됐습니다.”

”…”

“옆에 안 계셨으면요.”

그다음부터는 여러 입에서 나왔다.

“나오시지 마셔야 합니다.”

”…”

“나라가 하나로 서 있습니다.”

“북쪽은 아직 다 안 붙었습니다. 저 어른 이름으로 붙어 있는 겁니다.”

“오늘 저기서 끝났으면 내일 다 흩어집니다.”

엘리암은 듣고 있었다.

말이 오가는 방향이 이상했다.

아무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다들 같은 데로 갔다.

그리고 그 말이 나왔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집니다.”

엘리암은 그 말을 누가 했는지 봤다.

젊은 자였다. 이름을 몰랐다.

그자가 그 말을 지어냈는지, 어디서 들었는지, 그냥 나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말 뒤로 다른 말이 안 나왔다.

등불.

엘리암은 그 말을 속으로 한 번 해봤다.

사람 이름이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왕 앞에 섰다.

앞에 요압이 있고 아비새가 있고 천부장들이 있었다.

말은 요압이 하지 않았다.

천부장 중 하나가 했다.

“왕이시여, 다시는 저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고 맹세했다.

여럿이 한꺼번에 했다.

엘리암은 요압을 봤다.

요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찬성한다고도 안 했고 반대한다고도 안 했다. 서 있었다.

왕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서서 들어갔다.

엘리암은 그 뒷모습을 봤다.

그날 아버지에게 갈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버지는 궁 옆에 있었다. 물어보면 무언가 말해줄 것이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가지 않았다.

물어본 적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아가 옆에서 걸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한참 걷다가 물었다.

“어제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무슨 말.”

“등불이라는 말입니다.”

엘리암은 잠깐 생각했다.

“밤에 집에 등불 하나 켜놓지 않나.”

“켭니다.”

“그게 꺼지면 어떻게 되나.”

“어두워집니다.”

“그런 뜻이다.”

우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등불은 사람이 켭니다.”

”…”

“켜는 사람이 있고 켜지는 것이 있습니다.”

엘리암은 그를 봤다.

우리아는 앞을 보고 걷고 있었다.

말을 더 하지 않았다.

그해 가을 원정에 왕은 나오지 않았다.

요압이 나갔다.

이듬해 봄에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진영에 왕이 없으니 밤에 도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에 조 나가는 것을 보는 사람도 없었다.

두 해가 지나니 아무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규칙이 됐다.

왕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