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 다윗 · 21 / 117

19장 — 궤

예루살렘. 다윗이 서른아홉 살이던 해.

성경의 기록 · 사무엘하 6장 1–11절

처음 석 달 동안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방 둘 있는 집이 있었고, 아침마다 궁 안뜰에 나가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대개 그를 보고 눈인사만 했다.

직함은 있는데 어디에 서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궁 안은 그가 아는 세계가 아니었다.

길로에서는 누가 무엇을 아는지 다 알았다. 마을 사람이 백 몇이었고 그중 말이 되는 사람은 열댓이었다.

여기는 하루에 처음 보는 얼굴이 스물이었다.

누가 누구의 사람인지 그는 몰랐다.

물어보면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는 물어보는 것 자체가 표시가 됐다. 무엇을 묻는지 보면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면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묻지 않았다.

앉아서 봤다.

밤에 소리를 들었다.

궁 안쪽에서 났다. 가락이 있는데 말이 없었다.

그는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수풀에서 넷째 날 밤에 들었던 것이었다. 그때는 골짜기가 좁아서 울렸다. 여기는 벽이 두꺼워서 다르게 울렸다.

그때 그는 그것을 사기를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셈했다.

사백 명이 듣고 있었으니 그럴듯했다.

지금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안뜰에 사람이 없었다. 종들은 자고 있었다. 왕이 혼자 있는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들을 사람이 없는데 냈다.

그는 그것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뒤에 소리가 그쳤다.

그 뒤로 여러 밤에 들었다.

매일은 아니었다. 어떤 밤에는 났고 어떤 밤에는 안 났다.

난 다음 날 아침에 왕의 얼굴이 달라 보인 적이 있었다. 다른 날 아침과 같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는 그것도 셈에 넣지 못했다.

넉 달째에 왕이 불렀다.

“이 성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어르신이 좋다고 하시면 좋은 겁니까, 나쁘다고 하기 어려워서 좋은 겁니까.”

그는 잠깐 왕을 봤다.

”…둘 다입니다.”

왕이 웃었다.

“말씀하십시오.”

“이 성은 아무의 것도 아닙니다.”

”…”

“유다 것이 아니고 베냐민 것도 아닙니다. 삼백 년을 여부스 사람이 앉아 있었으니 지파 경계가 이 성을 피해서 그어졌습니다.”

“그래서 골랐습니다.”

“압니다. 그것이 이 성의 값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흠이기도 합니다.”

”…”

“아무의 것도 아닌 자리에는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겜에는 조상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실로에는 성소가 있었습니다. 벧엘에는 옛날 이야기가 있습니다.”

”…”

“여기에는 왕이 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

“왕이 있는 자리에는 왕에게 볼일 있는 사람만 옵니다.”

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이 성에 사람이 와야 합니다.”

”…”

“볼일이 없어도 오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북쪽 사람이 여기까지 걸어 내려올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방이 조용했다.

“궤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기럇여아림에 있습니다.”

“몇 해째입니까.”

”…이십 년쯤 됐을 겁니다.”

그는 그다음 말을 오래 준비했었다.

“왕이시여, 저는 이것을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

“이십 년 동안 왜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왕이 대답하지 않았다.

“실로에 있을 때 실로가 없어졌습니다. 블레셋이 가져갔다가 일곱 달 만에 되돌려 보냈습니다. 되돌려 보낸 자들이 그것을 지고 온 것이 아니라 수레에 실어 소가 끌게 하고 뒤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

“벧세메스에서도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럇여아림으로 올려보냈습니다.”

”…”

“그 뒤로 사울왕이 사십 년을 다스렸는데 손대지 않았습니다.”

“왕이시여, 사울왕이 어리석어서 안 가져간 것이 아닙니다.”

”…”

“저것은 만지는 자에게 값을 물리는 물건입니다. 이십 년 동안 아무도 그 값을 치를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왕이 한참 있다가 물었다.

“가져오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성이 중심이 됩니다.”

”…”

“아무의 것도 아닌 자리에 온 이스라엘의 것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이 성은 왕의 성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성이 됩니다.”

”…”

“북쪽 사람이 여기까지 걸어 내려올 이유가 생깁니다.”

“그러면 가져와야겠군요.”

”…예.”

“어르신은 왜 그 말씀을 안 하십니까.”

그는 대답했다.

“값이 붙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누가 치르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궤를 가지러 가는 날 성읍이 다 나왔다.

삼만이라고 했다. 세어본 사람은 없었다.

새 수레를 만들었다. 소 두 마리를 매었다. 아비나답의 아들 둘이 몰았다.

노래하고 뛰고 나팔을 불면서 갔다.

그는 뒤쪽에 있었다.

앞이 아니라 뒤였다. 하는 일이 정해지지 않은 자가 설 자리는 앞이 아니었다.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못 봤다.

행렬이 멈췄다.

앞쪽에서 소리가 났다. 그러다 그쳤다. 그친 뒤가 더 이상했다.

노래가 멎었다. 나팔도 멎었다.

앞에서부터 뒤로 조용해졌다.

한참 뒤에 말이 왔다.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들은 것은 그날 저녁부터 달랐다.

첫째. 타작마당에서 소가 뛰었다. 수레가 기울었다. 아비나답의 아들 하나가 손을 뻗어 궤를 붙들었다. 그리고 죽었다.

둘째. 손을 대자마자 죽었다.

셋째. 궤가 넘어지면서 그를 덮쳤다. 궤는 나무에 금을 입힌 것이라 사람 하나가 못 든다.

넷째. 그 사람이 원래 앓던 데가 있었다.

넷을 나란히 놓고 그는 오래 봤다.

첫째와 셋째는 같은 일을 다르게 말한 것일 수 있었다.

둘째는 본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들은 사람이 그렇게 옮긴 것이었다.

넷째는 하나만 말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흘 만에 하나만 남았다.

손을 대자마자 죽었다.

왕이 그 자리에 그날의 이름을 붙였다.

베레스 웃사라고 했다. 웃사를 침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이지 않았다. 길가에 있는 집에 두고 왔다.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에 들어와서도 사흘 동안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그는 자기 집 마당에 앉아 있었다.

값이 붙는다고 말한 것은 그였다.

누가 치르는지는 모른다고도 말했다.

말할 때는 그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정확했다. 값은 붙었고 누군가 치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던 것은 아비나답의 아들이었다.

궤를 이십 년 동안 자기 집에 두고 살던 집안이었다.

수레가 기울면 손을 뻗는 것이 그 집 사람의 일이었다.

그는 그날 밤 셈을 다시 해봤다.

셈은 맞았다.

맞은 셈에 사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석 달이 지났다.

오벧에돔의 집이 잘 됐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가축이 늘었다고 했다. 아이가 났다고 했다. 밭이 잘 됐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는 언제나 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향이 있었다.

궤를 두고 온 집이 잘 된다.

그 말이 성읍에 다 퍼졌을 때 왕이 다시 사람을 보냈다.

두 번째는 달랐다.

수레를 쓰지 않았다. 사람이 멨다.

메는 자들은 다 제사장 계열이었다. 아비아달이 앞에 서서 봤다. 어깨에 대는 채를 어느 쪽으로 끼우는지, 손이 궤에 닿지 않게 하는 법을 하나씩 봐줬다.

그리고 여섯 걸음 갈 때마다 멈췄다.

멈춰서 소와 살진 것을 잡았다.

느렸다.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까지 반나절 거리인데 종일 걸렸다.

여섯 걸음마다 멈추고, 잡고, 태우고, 다시 여섯 걸음 갔다.

그는 그것을 보면서 서 있었다.

이것이 맞는 방식인지 그는 몰랐다.

첫 번째가 틀려서 두 번째를 이렇게 하는 것인지, 두 번째가 원래 방식인데 첫 번째에 몰라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비아달 하나였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버지는 절차를 지키다 죽었다.

성문이 가까워졌을 때 왕이 앞으로 나왔다.

왕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베 에봇이었다. 제사장이 입는 것이었다. 어깨에 걸치는 것이라 팔이 다 나왔다.

그리고 춤을 췄다.

그는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몰랐다.

왕이 행렬 앞에서 뛰고 있었다.

힘을 다해서 뛰었다. 손을 들고, 몸을 돌리고, 앞으로 갔다가 뒤로 왔다. 옷이 벌어졌다. 땀이 흘렀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옆에 있는 자에게 물으려다 말았다.

물으면 표시가 난다.

그는 셈해봤다.

왕이 백성 앞에서 왕복을 벗는다.

정복해 온 것이 아니라 모셔 오는 것이 된다. 이 성이 궤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궤가 이 성에 온 것이 된다.

북쪽 사람이 보면, 남쪽 왕이 우리 것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우리 것 앞에서 옷을 벗은 것이 된다.

셈이 맞았다.

너무 잘 맞아서 그는 잠깐 그것을 자기가 짠 것으로 착각할 뻔했다.

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런 것을 짤 줄 몰랐다.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한 말은 궤를 가져오라는 것 하나였다.

행렬이 성문을 지나갔다.

왕이 앞에서 뛰고 있었다. 사람들이 따라 소리 질렀다. 나팔이 울렸다.

그는 뒤쪽에 서 있었다.

그날 밤 그는 마당에 앉아 있었다.

수풀에서 나흘을 보고 돌아오던 밤이 떠올랐다.

그때도 셈은 다 맞았다. 조 나누기가 맞았고, 보초 자리가 맞았고, 마지막에 받는 것이 맞았다.

맞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다친 자를 이틀 기다렸다가 넷이 지고 옮긴 것.

그것에 그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오늘 것도 그랬다.

셈은 다 맞는데, 그 셈으로는 저 사람이 왜 뛰는지가 나오지 않았다.

계산해서 뛰는 사람은 저렇게 뛰지 않는다.

밤에 나던 그 소리도 그랬다.

들을 사람이 없는데 냈다.

그때 그것을 셈에 못 넣었고, 오늘 것도 못 넣었다.

같은 것인지 아닌지 그는 몰랐다.

그는 오래 앉아 있었다.

궤는 성 안 장막에 들어갔다.

내일부터 사람들이 그것을 보러 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