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 다윗 · 12 / 117
10장 — 그일라의 성문
그일라. 보리 타작 무렵. 다윗이 스물다섯 살이던 해.
성경의 기록 · 사무엘상 23장 1–13절
타작마당은 성 밖에 있었다.
성벽 안에는 자리가 없으니 어디나 그렇다. 밀과 보리를 밖에서 떨고, 떤 것을 안으로 들여놓는다.
블레셋은 그것을 알고 온다. 매년 같은 때 같은 자리로 온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절반이 실려 나간 뒤였다.
싸움은 짧았다.
블레셋은 타작마당에 진을 치고 있었다. 성을 칠 생각이 없었으니 경계도 그만큼이었다.
그는 아래쪽 마른 개천을 따라 붙였다. 개천 바닥이 낮아서 마당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가축을 몰고 나가려던 자들부터 쳤다.
그날 죽은 것은 저쪽이 삼십 남짓이었고 이쪽은 넷이었다. 넷 중 둘은 살았다.
성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나와서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이 물을 들고 나왔다. 노인 하나가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가축을 도로 몰아넣었다. 곡식 자루를 되찾아 실었다.
그날 밤 육백 명이 성 안에서 잤다.
지붕 밑이었다.
그는 오래 깨어 있었다.
굴에서는 위에서 물이 스몄다. 수풀에서는 밤에 짐승 소리가 났다. 두 해 동안 그런 데서 잤다.
여기는 벽이 넷이고 위가 막혀 있었다.
밖에서 사람들 소리가 났다. 웃는 소리였다. 술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는 누워서 그 소리를 들었다.
이튿날부터 말이 나왔다.
“여기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성벽이 있습니다.”
“성문에 빗장이 있고, 물이 안에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두 해 동안 그가 못 가진 것이 성벽이었다. 성벽이 있으면 쫓기지 않는다. 쫓기지 않으면 사람이 더 온다.
닷새째에 소식이 왔다.
왕이 군대를 소집했다는 것이었다. 남쪽으로 온다고 했다.
성 안이 조용해졌다.
부하들이 갈렸다.
“지키면 됩니다. 성벽이 있는데 왜 나갑니까.”
“육백입니다. 성벽 위에 세우면 됩니다.”
“나가면 또 굴입니다.”
반대쪽도 있었다.
“안에서 포위되면 못 나갑니다.”
“물은 있어도 곡식은 얼마 못 갑니다. 육백이 먹습니다.”
두 쪽 다 성벽 이야기를 했다. 한쪽은 성벽이 지켜준다고 했고 한쪽은 성벽이 가둔다고 했다.
그는 사람을 보냈다.
길로였다. 하루 반 거리였다.
두 해 전 기름을 팔러 왔던 사람이었다.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흘 뒤에 왔다.
나귀를 성문 밖에 매어놓고 걸어 들어왔다. 옷이 수수했다. 성읍 사람들이 그를 보지 않았다.
그는 안뜰에서 만났다.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부르셨으니 왔습니다.”
“이 성읍을 아십니까.”
“이 근방은 다 압니다.”
그는 상황을 말했다.
왕이 온다. 성벽이 있다. 육백이 있다. 성읍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한다.
아히도벨은 다 듣고 나서 물었다.
“곡식은 누구 것을 먹고 계십니까.”
”…성읍에서 냅니다.”
“며칠째입니까.”
“여드레째입니다.”
“하루에 얼마나.”
“육백입니다.”
아히도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작한 것을 되찾아주셨지요.”
“예.”
“그 되찾아준 양이, 여드레 동안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흘이면 되찾아준 만큼 먹습니다. 스무 날이면 그전보다 적어집니다.”
“그러면 성읍이 나를 원망하겠습니까.”
“아닙니다.”
”…”
“원망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렇게까지 계산하지 않습니다.”
아히도벨이 뜰의 담을 봤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 성읍에 성문이 있습니다.”
”…예.”
“성문이 있는 성읍은 왕에게 등을 돌리지 못합니다.”
”…”
“성문을 닫으면 안이 안전해 보입니다. 그런데 밭이 밖에 있습니다. 우물이 안에 있어도 밭은 밖에 있습니다. 사람이 밖에 못 나가면 그 성읍은 그날부터 죽기 시작합니다.”
”…”
“왕은 성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앉아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성읍 사람들이 무엇을 합니까.”
“셈을 합니다.”
아히도벨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 성읍에 사는 사람이 몇입니까. 삼백입니까, 사백입니까. 그 사람들에게 밭이 있고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문밖에 앉아서 한 사람만 내놓으라고 합니다.”
”…”
“그 한 사람은 지난달에 자기들을 구해준 사람입니다. 그것도 그들이 압니다.”
”…”
“그래도 내놓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저들을 구했습니다.”
“예.”
“저들이 나를 넘길 겁니까.”
“넘깁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아히도벨이 그를 봤다.
“그들이 배은망덕해서가 아닙니다.”
”…”
“성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에 그는 짐을 싸게 했다.
부하들이 물었다. 아직 정한 것이 없지 않으냐고 했다. 왕이 정말 오는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했다.
“싸두어라. 안 가면 풀면 된다.”
밤에 아비아달을 불렀다.
젊은 제사장이 에봇을 걸치고 왔다. 벽에 걸어두던 것이라 아직 흙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물어봐 주게.”
”…무엇을.”
“사울이 여기까지 내려오겠는가.”
아비아달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흔들었다. 하나를 꺼냈다.
“내려옵니다.”
”…”
“하나 더 물어봐 주게.”
“예.”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는가.”
주머니 소리가 났다.
”…넘깁니다.”
밖에 부하들이 서 있었다.
문 앞에 다 모여 있었다. 안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었다.
그가 나가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나간다.”
이번에는 아무도 성벽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히도벨은 아침에 떠났다.
성문 밖에서 나귀 고삐를 풀고 있었다.
“값을 드려야 하는데.”
“됐습니다.”
”…”
“기름값도 아직 절반 남았습니다. 그것부터 받겠습니다.”
그들은 낮에 나갔다.
육백이 성문을 통과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성읍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있었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열흘 전에는 물을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었다.
노인 하나가 문간에 서 있었다.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던 그 노인이었다.
이번에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마지막 무리가 통과했을 때 그는 돌아섰다.
성문이 닫히고 있었다.
빗장 소리가 났다. 나무가 나무에 닿는 소리였고 크지 않았다.
그는 그 소리를 들었다.
사흘 뒤에 왕이 그일라 앞까지 왔다가 돌아갔다는 말이 돌았다.
성읍 사람들이 나가서 말했다고 했다. 그가 이미 떠났다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