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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1장 — 어머니"
work: "원경왕후 민씨 — 칼과 피와 글의 나라"
part: "Part 3"
chapter: 25
url: https://mapncompass.com/ko/stories/wongyeong/25/
lang: ko
kind: fiction (a novel; not a claim of the UFoE knowledge map)
author: "각자도생(覺者道生) (pen name of Young Kang)"
rights: "© 2026 각자도생(覺者道生). 이 소설은 사이트의 CC BY 4.0 라이선스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용은 출처를 밝혀 짧게 하고, 전문의 복제·재배포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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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 어머니

*시점: 원경왕후 민씨. 1400년대 초,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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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내가 했다.

주상이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주상은 국사가 있었다. 아침에 나가면 밤에 들어왔다. 들어올 때는 지쳐 있었다. 그 사람이 나라를 만드는 동안 나는 아이들 곁에 있었다.

그것이 내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어머니가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오래 하다 보니 달랐다. 일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이었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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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이 처음부터 총명했다.

말을 빨리 배웠다. 글을 빨리 읽었다. 스승들이 칭찬했다. 주상도 흐뭇하게 봤다. 맏아들이 이러니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다른 것을 봤다.

양녕은 총명했다. 그런데 그 총명함이 안을 향하지 않았다. 밖을 향했다. 무엇이든 빨리 파악하고 빨리 다음으로 갔다. 깊이 앉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이 아이의 방식이었다.

그것이 문제인지 아닌지 처음에는 몰랐다.

세자가 됐다. 스승들이 붙었다. 더 많이 배웠다. 더 많이 알았다. 그런데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이 아이 안에서 무언가가 좁아지는 것 같았다. 세자의 자리가 이 아이를 누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양녕이 나에게 왔다.

공부를 마치고 온 참이었다. 얼굴이 반듯했다. 스승 앞에서는 언제나 반듯한 아이였다.

"어머니."

"오너라."

양녕이 앉았다. 한참 있었다.

"왕이 되면 어떤 것입니까."

나는 그 아이를 봤다.

열두 살이었다. 왕이 되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 무엇을 보고 싶어서 묻는 것인지. 무엇이 두려워서 묻는 것인지.

"왜 묻느냐."

"그냥요."

그냥이 아니었다. 나는 알았다.

"무거운 것이다."

양녕이 나를 봤다.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이 왕이냐."

"무거운 것을 놓지 않는 것이 왕이다."

양녕이 잠깐 생각했다.

"놓으면요."

"놓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양녕이 창밖을 봤다.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그 눈이 기억에 남았다. 창밖을 보던 눈. 무언가를 재는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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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은 달랐다.

양녕과 충녕 사이에서 효령은 종종 보이지 않았다. 맏이가 빛났다. 막내가 깊었다. 효령은 그 사이에 있었다.

그것이 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효령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정말이냐."

효령이 잠깐 있었다.

"형님과 충녕이 있으니까요."

그 말이. 형님과 충녕이 있으니까라는 말이. 이 아이는 혼자인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에 익숙한 것이었다.

익숙하다는 것이 괜찮다는 것과 같은지 몰랐다.

나는 그것을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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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녕은 처음부터 책이었다.

걸음마를 배우던 때부터 뭔가를 잡으면 놓지 않았다. 책을 주면 책을 잡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봤다. 잠들기 전까지 봤다. 스승이 걱정할 정도였다. 눈이 상한다고.

내가 걱정하면 충녕이 말했다.

"모르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 생각했다.

모르는 것이 더 무섭다.

눈이 상하는 것보다. 밥을 굶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무섭다.

이 아이에게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무섭기 때문에 더 읽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민제 아버지. 성균관에서 글을 가르치던 아버지. 아버지도 그랬다. 모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기질이 어디로 갔나 했는데 이 아이에게 갔다.

핏줄이란 그런 것이었다.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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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가르치면서 내가 한 것이 있었다.

지식을 가르치지 않았다.

지식은 스승들이 했다. 나는 다른 것을 했다.

양녕에게는 무게를 가르쳤다. 무거운 것을 놓지 않는 것. 빨리 파악하고 빨리 넘어가는 아이에게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려 했다. 얼마나 들어갔는지 몰랐다.

효령에게는 자신을 가르쳤다. 형과 동생 사이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 이 아이 자신이 있다는 것. 어디에 있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

충녕에게는 사람을 가르쳤다.

책은 스스로 읽었다. 그런데 책만 읽는 아이는 책 속의 사람만 알았다. 살아있는 사람이 달랐다. 살아있는 사람은 책처럼 쓰여 있지 않았다.

어느 날 충녕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궁 밖이었다. 주상이 알면 뭐라 했을 것이었다. 모르게 했다.

충녕은 처음 보는 것들을 봤다. 사람들이 물건을 팔았다. 아이들이 뛰었다. 노인이 짐을 날랐다. 충녕은 말없이 봤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물었다.

"무엇을 봤느냐."

충녕이 생각했다.

"사람들이 각자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는 것이 다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선을 팔고 어떤 사람은 천을 팔고. 그런데 다 바빴습니다."

"그래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봤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데 숫자를 손으로 셌습니다. 간판을 보면서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어떻더냐."

충녕이 잠깐 있었다.

"모르는 것이 불편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것이 무서운데. 그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익숙한 것 같았습니다."

"왜 그럴 것 같으냐."

충녕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모르면 바로 말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말했다.

한참 후에 충녕이 말했다.

"배울 수 없어서인 것 같습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으면 모르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아닙니까."

나는 그 아이의 옆얼굴을 봤다.

열 살이 안 됐다. 그런데 그것을 봤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이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가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어디까지 갈지 몰랐다고 했다.

나는 이 아이를 보면서 같은 말을 속으로 했다.

어디까지 갈지 몰랐다.

그런데 방향이 보였다.

이 아이는 아는 것을 혼자 갖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이 이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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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스승들이 왔다. 세자가 공부를 게을리한다고. 자리를 이탈한다고. 주상이 불렀다. 양녕이 들어갔다 나왔다. 표정이 없었다.

내가 양녕을 불렀다.

양녕이 왔다. 앉았다.

"아버지가 뭐라 하시더냐."

"더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짧은 대답이었다. 이 아이가 원래 말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것은 더 짧았다.

나는 양녕을 봤다.

이 아이의 눈이 예전과 달랐다. 총명한 것은 여전했다. 그런데 그 총명함이 지금 안을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양녕아."

"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양녕이 나를 봤다.

잠깐 봤다. 그리고 눈을 내렸다.

"없습니다."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말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이 아이가 말하지 않겠다고 하면 기다려야 했다. 그것이 양녕이었다. 다그치면 더 닫혔다.

기다렸다.

그런데 양녕이 그 다음부터 더 달라졌다. 스승들의 말이 더 자주 왔다. 주상이 더 자주 불렀다. 그 사이에서 양녕은 점점 더 반듯한 얼굴과 다른 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봤다.

이 아이가 무언가를 결심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혼자 결심하고 있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오빠들이 없어지고 나서 내가 가진 것을 셌다.

아이들이었다.

양녕. 효령. 충녕.

세 아이가 각자 자라고 있었다. 내가 준 것이 각자에게 어떻게 들어갔는지 몰랐다. 들어간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심은 것은 있었다.

심은 것이 어떻게 자라는지는 심은 사람이 결정하지 않았다.

자라는 것이 결정했다.

그것이 아이들이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