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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에필로그 — 수창궁. 1392년 7월 17일 저녁."
work: "원경왕후 민씨 — 칼과 피와 글의 나라"
part: "Part 1"
chapter: 13
url: https://mapncompass.com/ko/stories/wongyeong/13/
lang: ko
kind: fiction (a novel; not a claim of the UFoE knowledge map)
author: "각자도생(覺者道生) (pen name of Young Kang)"
rights: "© 2026 각자도생(覺者道生). 이 소설은 사이트의 CC BY 4.0 라이선스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용은 출처를 밝혀 짧게 하고, 전문의 복제·재배포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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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수창궁. 1392년 7월 17일 저녁.

<p class="sep" aria-hidden="true">◆</p>

해가 기울 무렵, 수창궁의 한 전각에 다섯 사람이 있었다.

즉위식이 끝난 뒤였다. 하례가 끝났다. 신하들이 물러났다. 짧은 침묵이 있었고, 그 침묵 속에 이 다섯이 남았다. 누가 남으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이유로 남았다. 각자의 이유로 아직 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창가에 서 있었다.

즉위복이 무거웠다. 어깨가 그것을 알았다. 그는 창 밖을 봤다. 수창궁의 뜰이었다. 아직 고려의 돌이 깔린 뜰이었다. 아까 그 위에서 절을 받았다. 신하들이 엎드렸다. 자신이 서 있었다. 그 순간을 그는 다시 떠올리지 않았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보다 지금 창 밖의 뜰을 보는 것이 쉬웠다. 손이 창틀에 얹혔다. 두꺼운 손이었다. 수십 년을 말 위에서 보낸 손이었다.

정도전은 탁자 앞에 있었다.

교서를 그가 썼다. 이성계가 오늘 읽은 말들이 그의 말이었다. 그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앉지도 않았다. 서 있었다. 탁자 위에 서찰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고, 보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입이 닫혀 있었다. 오늘 그는 말을 많이 했다. 교서를 썼고, 그 전에 의례를 조율했고, 더 전에 공양왕을 내보내는 절차를 정리했다. 그 모든 말이 끝나고 지금 그는 조용했다. 조용한 것이 이 사람에게 자연스러웠다. 말이 없을 때의 그가 말이 있을 때의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방원은 기둥 옆에 서 있었다.

전각 안에서 가장 안쪽도 아니고 가장 바깥쪽도 아닌 자리였다. 그것이 그의 자리처럼 보였다. 아버지를 봤다. 정도전을 봤다. 오랫동안 보지 않는 척 봤다. 스물여섯이었다. 이 나라가 세워지는 데 그의 손이 닿아 있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이 전각 안에 있었다. 그것이 기록에 얼마나 남을지는 아직 몰랐다. 지금 그의 아버지가 왕이 됐다. 세자 책봉은 아직이었다. 이방원은 그것을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얼굴도 아니었다.

민제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른 네 사람 중 앉은 사람이 없었다. 그만 앉아 있었다.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앉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성계와 사돈이었다. 오늘 그 사돈이 왕이 됐다. 그는 그것을 10년 전에 예상했는가. 아마도 했다. 그러나 예상한 것과 실제로 그 앞에 서는 것은 달랐다. 그는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눈이 정면을 향했다.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나라가 열렸다. 자신의 딸이 그 안에 있었다. 자신의 아들들이 그 안에 있었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위험한 일인지, 그는 오늘 하루 종일 그 경계에서 앉아 있었다.

민씨는 전각 입구 가까이 서 있었다.

스물일곱이었다. 딸이 하나 있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 오늘 시아버지가 왕이 됐다. 그것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그녀는 알았다.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아는 척하기도 어색했다. 그래서 지금 입구 가까이 서 있었다. 전각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는 자리. 이방원을 봤다. 이방원은 기둥 옆에서 정도전을 보고 있었다. 민씨는 그 옆얼굴을 봤다. 저 사람의 생각이 어디까지 가 있는지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10년 전 처음 왔을 때 걸음이 달랐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랬다. 서 있는 방식이 달랐다. 기둥 옆에 기대지 않고 서 있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저녁빛이 전각 안으로 기울어 들어왔다. 이성계의 즉위복이 그 빛 속에 있었다. 정도전의 서찰이 빛을 받았다. 민제의 손이 무릎 위에 있었다. 이방원의 옆얼굴이 빛과 그늘 사이에 있었다. 민씨가 입구 쪽에 서 있었다.

다섯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각자가 다른 길로 여기까지 왔다. 동북면의 군영에서, 나주의 귀양지에서, 개성의 성균관에서, 아버지의 서재에서. 각자가 다른 것을 원해서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같은 지점에 닿아 있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섯이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이들의 길은 갈라졌다. 어떤 길은 위로 올라갔다. 어떤 길은 잘려 끊어졌다. 어떤 길은 아래로 내려가다가 사라졌다. 그 갈라짐이 시작되기 전, 이 저녁에, 다섯은 같은 빛 속에 있었다.

밖에서 바람이 왔다.

열려 있는 입구로 바람이 들어왔다. 서찰이 가장자리가 들렸다. 정도전이 손을 얹어 눌렀다.

그것이 전부였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p class="ed-note">— Part 1 完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