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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에필로그 — 1252년 초봄. 게르 안"
work: "소르카크타니 베키 — 기다린 여자"
part: "닫는 이야기"
chapter: 13
url: https://mapncompass.com/ko/stories/sorghaghtani/13/
lang: ko
kind: fiction (a novel; not a claim of the UFoE knowledge map)
author: "각자도생(覺者道生) (pen name of Young Kang)"
rights: "© 2026 각자도생(覺者道生). 이 소설은 사이트의 CC BY 4.0 라이선스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용은 출처를 밝혀 짧게 하고, 전문의 복제·재배포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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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1252년 초봄. 게르 안

바람 소리부터였다.

초원의 바람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소르카크타니는 그것을 알았다. 어릴 때부터 알았다. 케레이트의 바람도 그랬다. 톨루이와 함께 살던 초원의 바람도 그랬다. 허베이 영지의 바람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이 게르 안까지 들어오는 바람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숨소리였다.

가빴다. 흐릿했다.

알았다.

오늘이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눈을 뜨고 있었다.

게르의 천장이 보였다. 토노. 원형의 구멍. 그 안으로 초봄의 빛이 들어왔다.

빛이 있었다.

아직 세상은 환했다.

손을 뻗었다.

양피지였다. 베개 옆에 항상 있었다.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접힌 자국이 깊었다. 수백 번 폈다 접었다 한 것이었다.

손끝으로 느꼈다.

오래된 것이었다. 야크 감부의 손이 쓴 것이었다. 아버지의 손이. 떨리던 손이. 그런데 등은 폈던 손이.

그 손이 쓴 것이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폈다.

눈이 흐릿했다.

그런데 읽을 수 있었다.

평생 읽어왔으니까. 눈이 흐릿해도 손이 기억했다. 뼈가 기억했다.

소리 없이 읽었다.

입술만 움직였다.

두 글자였다.

*살아라.*

<p class="sep" aria-hidden="true">◆</p>

오래 보았다.

이 두 글자를 처음 읽은 날이 생각났다.

1204년 봄이었다. 테무진의 야영지에 혼자 있던 날이었다. 게르 안에 불도 없이. 어둠 속에서. 양피지를 펼쳤다.

두 글자를 읽었다.

그리고 — 처음으로 울었다. 소리 없이. 등을 펴고.

그날부터였다.

살았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살면서 본 것들이 지나갔다.

빠르지 않았다. 천천히.

아버지의 등이 지나갔다. 손은 떨렸는데 등은 폈던.

이바카 언니의 손이 지나갔다. 차가웠는데 힘이 있던.

톨루이의 눈이 지나갔다. 말 위에서 조용히 보던. 두렵지 않던.

화덕 앞의 밤들이 지나갔다. 나란히 앉아서 불을 보던. 말하지 않아도 편했던.

믿는다는 두 글자가 지나갔다.

결심한 밤이 지나갔다. 네 가지를 정했던.

찾아오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끝까지 들었던.

화덕 앞의 경연이 지나갔다. 뭉케에게. 쿠빌라이에게. 훌라구에게. 아릭 부케에게.

침묵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불이 뜨거울 때 손을 넣지 않았던.

밀사를 보낸 밤이 지나갔다. 무서웠는데 — 하지 않으면 반드시 안 됐던.

뭉케의 즉위 소식이 지나갔다. 혼자 화덕 앞에 앉아서 들었던.

<p class="sep" aria-hidden="true">◆</p>

이바카 언니가 생각났다.

그 화덕 앞의 밤이. 오고데이가 죽은 뒤에. 언니가 돌아온 어느 해에.

불을 보면서 둘이 앉아 있었다.

이바카가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 왜 있었는지 — 아직도 모르겠다.*

소르카크타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바카가 말했다.

*너는 알고 있지.*

눈이 마주쳤다.

소르카크타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 평생 가장 무거운 침묵이었다.

언니.

미안합니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말하면 안 됐습니다.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 미안합니다.

살았습니다. 언니도. 나도. 그것으로 됐습니다.

살아있으면 볼 수 있었습니다.

봤습니다. 끝까지.

<p class="sep" aria-hidden="true">◆</p>

아릭 부케가 생각났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아이였다.

뭉케에게 말했다. 그 아이를 잘 봐야 한다고.

그런데 — 자신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아릭 부케.

막내야.

어미가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뿌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 언젠가 알게 되기를.

알면 — 늦지 않는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톨루이가 생각났다.

생각났다가 — 멈췄다.

생각이 필요없었다. 그냥 — 있었다. 항상 있었다. 이 게르 안에. 이 화덕 옆에. 이 바람 소리 안에.

29년을 함께 있었으니.

20년을 혼자였어도 — 혼자가 아니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당신이 항상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침묵하는 동안에도. 밀사를 보내던 날도. 뭉케가 즉위하던 날도.

당신이 있었습니다.

됐습니다.

당신 자리에 당신의 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목숨으로 지켜준 아들이 — 당신이 앉지 못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당신이 갖지 못한 것을 — 아들들이 갖게 됐습니다.

동지.

많이 기다리셨지요.

이제 갑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양피지를 접었다.

가슴 위에 올렸다.

손으로 눌렀다.

아버지의 글씨가 손바닥 아래 있었다.

살아라.

살았습니다.

충분히.

아버지가 원한 것보다 더. 내가 원한 것보다 더. 톨루이가 부탁한 것보다 더.

살았습니다.

그것으로 됐습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눈을 감으려다 — 멈췄다.

아직이었다.

하나 더 있었다.

쿠빌라이가 생각났다.

왜를 묻던 아이. 말을 타는 것과 배를 타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르게 타는 것이라고 했던. 허베이 농민들을 보고 온 날 중국 관리로 바꾸겠다고 했던.

그 아이가 — 중국을 가질 것이었다. 알았다. 소르카크타니가 없어진 뒤에. 그런데 — 가질 것이었다.

해라 라고 했다. 그 아이에게.

그것으로 충분했다.

훌라구가 생각났다.

앞에서 싸우지 말고 옆에서 싸우라고 했던. 시험해 보겠다고 했던. 몸으로 배운 아이.

그 아이가 — 서쪽으로 깊이 들어갈 것이었다. 알았다. 막을 수 없는 방향으로.

그것으로 충분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넷이 생각났다.

한꺼번에.

처음부터 하나로 봤다.

뭉케가 원칙을 잡으면. 쿠빌라이가 흡수했다. 훌라구가 파고들었다. 아릭 부케가 — 뿌리를 지켰다. 지키려 했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 지키려는 마음은 있었다.

빈 곳이 없었다.

네 아이가 다 달랐기 때문에.

땅에 맞는 것을 심었기 때문에.

됐습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이제였다.

눈을 감았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았다. 평생 서두르지 않았다. 마지막도 서두르지 않았다.

어둠이 왔다.

그런데 — 따뜻했다.

이상하게도.

불이 꺼진 것 같은데 — 따뜻했다.

아버지가 있는 것 같았다. 등을 편 채로.

톨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불을 보는 눈으로.

이바카 언니가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내밀면서.

살아있으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봤습니다.

이제 — 볼 수 없어도 됩니다.

충분히 봤습니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바람이 불었다.

게르가 흔들렸다.

흔들렸다가 — 다시 잡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그런데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p class="sep" aria-hidden="true">◆</p>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