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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프롤로그 — 한 편만 볼까?"
work: "밧세바"
part: "여는 이야기"
chapter: 1
url: https://mapncompass.com/ko/stories/bathsheba/001/
lang: ko
kind: fiction (a novel; not a claim of the UFoE knowledge map)
author: "각자도생(覺者道生) (pen name of Young Kang)"
rights: "© 2025 각자도생(覺者道生). 이 소설은 사이트의 CC BY 4.0 라이선스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용은 출처를 밝혀 짧게 하고, 전문의 복제·재배포는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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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한 편만 볼까?

7호선 하행.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문 옆자리는 이미 없었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섰다. 셔츠 목깃이 하루 종일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해서 뻣뻣했다. 가방끈이 어깨 한쪽으로 흘러내렸고, 그는 고쳐 메지 않았다.

건너편 유리에 사람들이 비쳤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도 숙였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사람이 더 탔다. 노인 하나가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표지가 닳은 책을 펴들고 있었는데,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읽고 있었다. 혼잣말에 가까운 크기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노인이 그의 옆을 지나갔다. 파스 냄새가 났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그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노인의 목소리가 끊겼다.

재생목록의 첫 곡이 시작됐다. 북이 먼저 들어오고, 현악기가 같은 자리를 계속 두드렸다. 그 위로 종이 울렸다.

Viva La Vida. 스무 살 무렵 어디서나 나오던 노래였다. 학교 앞 카페에서도 나왔고, 술집에서도 나왔고, 누군가의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도 나왔다. 그때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고, 나중에 알고 나서도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왕이었다가 왕이 아니게 된 남자가 부르는 노래였다.

그는 볼륨을 두 칸 올렸다.

열차가 뚝섬유원지를 지나 한강을 건너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창이 밝아졌다. 강이 있었다. 다리 위에 차들이 붉은 불빛을 매달고 늘어서 있었고, 강 건너로 아파트들이 층층이 불을 켜고 있었다. 같은 크기의 창이 수천 개였다. 그 안에 사람이 하나씩 있을 것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팀 단톡방.

— 다음 주 금요일 김 부장님 송별회 장소 투표 부탁드립니다

— ㅠㅠ

— 후임은 본사에서 내려오신대요

— 아 진짜요?

— 확정은 아니고 그렇게 들었어요

그는 화면을 한참 보다가 이모티콘 하나를 눌렀다. 웃는 얼굴이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고, 재작년에도 있었다. 자리는 하나였고 그 자리는 계속 비었다가 채워졌다. 그가 거기 앉을 뻔한 적이 두 번 있었다. 두 번 다 다른 사람이 앉았고, 그 사람들은 지금 회사에 없다.

그는 단톡방을 닫았다.

인스타그램. 대학 후배가 제주도에 갔다. 누군가 결혼했다. 누군가의 아이가 걷기 시작했다. 아는 얼굴들이 각자의 좋은 순간에 서 있었고, 그는 하트를 세 번 눌렀다.

넷째 손가락 마디가 시렸다. 사무실 에어컨 때문인지 그냥 나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번 역은 청담, 청담역입니다.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자리가 하나 났다. 그는 앉았다. 앉고 나니 다리가 무거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넷플릭스를 열었다.

볼 것이 없었다. 이미 본 것들과 볼 생각이 없는 것들 사이를 오래 스크롤했다. 그러다 화면이 자동으로 예고편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밧세바의 시대**

돌로 된 계단. 횃불.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뒷모습. 흰 천이 바람에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자막이 떴다.

*그녀는 왕의 여인이 되었고, 왕을 만들었다.*

시즌 3까지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라는 건 알았다. 다윗이 목욕하는 여자를 보고 남편을 죽였다는 것까지는 어렴풋이 기억했다. 초등학교 때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몇 번 갔었고, 골리앗과 물맷돌은 기억했지만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앱을 나와 검색창에 이름을 넣었다.

**밧세바**

맨 위에 AI 요약이 떴다.

밧세바는 히브리 성경 사무엘하에 등장하는 인물로, 다윗 왕의 아내이자 솔로몬의 어머니입니다. 본래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으며, 다윗이 그녀를 취한 뒤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한 사건은 다윗 통치기의 대표적인 도덕적 오점으로 기록됩니다. 전통적으로는 수동적인 희생자로 해석되어 왔으나, 일부 현대 연구자들은 열왕기상 1장에 나타난 그녀의 정치적 판단에 주목하여 **권력의 설계자**로 보기도 합니다.

그는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

권력의 설계자.

삼천 년 전 여자에 대해 지금 누가 무엇을 어떻게 아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오래 붙들지는 않았다. 열차가 흔들렸다. 다시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창밖이 검어지면서 유리에 그의 얼굴이 떴다. 그는 눈을 피했다.

집까지 열 한 정거장. 이십 이 분.

내일도 이 열차를 탈 것이었다. 모레도 탈 것이었다. 송별회에는 갈 것이고, 본사에서 내려온다는 사람에게 인사를 할 것이고, 언젠가 그 자리는 또 빌 것이다.

그는 넷플릭스로 돌아갔다.

한 편만 볼까.

이어폰에서는 같은 노래가 다시 나오고 있었다. 북이 먼저 들어오고, 현악기가 같은 자리를 계속 두드렸다.

엄지가 화면에 닿았다.

**▶ 재생**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